• 노무현이 박정희를 누른 여론조사가 의미하는 것
     
     최근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누르고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올라섰다.
    이승만 대통령의 순위는 맨 꼴찌였다.

    이걸 보고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중사회’라는 것의 종잡을 수 없는 속성이다.
    대중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고, 일관성이 없고, 비(非)논리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변덕, 비(非)일관성, 비(非)논리성은 대중 자신의 자가발전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외부의 영향을 받은’ 현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금이라도 만약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박정희 산업화 대통령의 공적(功績)을
방방곡곡에서 대대적으로 선전선동 해댄다면
그들의 인기(人氣) 순위는 확실하게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 시절의 공안기관의 횡포에 대해
방방곡곡에서 대대적으로 선전선동 해대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 악화될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순위도 훨씬 더 뒤로 밀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만약 노무현 대통령을 추켜세운 영화 ‘변호인’을
방방곡곡에서 대대적으로 무료상영 해댄다면,
아니면 반대로 노무현 대통령과 그 가족의 돈과 관련되었던 검찰 피의사실을
방방곡곡에서 새삼 대대적으로 까발려댄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순위는 아마 위로 갔다 밑으로 갔다 요동을 칠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히트를 치면 야당이 유리해지고,
영화 ‘국제시장’이 히트를 치면 여당이 유리해진다.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로 우리 현대사를 배운 학생들과,
교학사 역사교과서로 우리 현대사를 배운 학생들은
대한민국 67년사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아마 꽤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여론조사’나 ‘인기도(度) 조사’라는 것의
허망함, 위험성, 천박성이 새삼 재확인된다.
길거리와 광장의 대중, 군중이 “어제 보니까 이런 것 같아요”
“오늘 보니까 저런 것 같아요” 어쩌고 하는 평이란
정말 얼마나 경박하고 얄팍한 것인가는
이미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중의 변덕스러운
‘여론’에서 생생하게 목격된 바 있다.
그들은 그 날 그 날의 권력의 조작(操作)과 음모꾼들의 선전선동에 휩쓸려
예수 그리스도와 바랍바의 인기 순위를
하루가 다르게 엎치락뒤치락 바꾸곤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대중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오늘의 권력은
대중문화와 그 전달매체다.
이 자산(資産)에 있어 “대한민국은 태어나길 너무 잘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우고 발전시킨 세대와 그때의 정치-경제 리더들은
미증유의 대(大) 성취자들”이라고 믿는 진영은,
그 반대편의 적대적인 진영에 비해 역량이 한결 덜 미친다.
그러기에 위대한 성취물인 자유, 민주, 공화의 대한민국을 세운
지도자에 대한 평가와 인정(認定)이 그처럼 꼴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
‘6. 25 전쟁영웅은 민족반역자“라고 하는 진영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여전히 문화권력의 고삐를 쥐고 있는 탓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왜 문화권력을 여전히 탈환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이 관(官)보다는 시민사회의 소관이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측면이 물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교문(敎文) 정책과 행정을 누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사정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시민사회의 문화권력이
대거 '민중' 운운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정권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과거의 정통주의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무총리가 바뀌고 문공부와 문화부 장관이 바뀌니까
문화부의 국장, 과장들이 바뀔 수밖에 없고,
그들이 바뀌니까 문화관련 산하단체들의 수장(首長)이 바뀔 수밖에 없고
예산집행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문화행정 전반의 고삐가 기성주류와는
전혀 다른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던 것이다.
‘싹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그런 ‘싹쓸이’는 고사하고
반타작도 못하는 것 같은 양상이다.
왜? 자신이 없어서다.
청와대, 국무총리직, 장관직은 국민이 싸워준 덕분에 어찌어찌 횡재를 했지만,
각 부처, 특히 문화부, 교육부, 통일부의 국장, 과장급들은
‘싹쓸이’를 했다가는 혹시 ‘반란(?)’이라도 날까 두려웠던지
도무지 갈아치우지를 못하거나 안 했던 모양이다.
 
 이래서 ‘비(非)좌파’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교문 관계 부처들이 하는 짓을 보면
어떤 때는 정권교체가 정말 되었는지를
회의(懷疑)할 수밖에 없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민화협이라는 이상한 물건이 있어가지고 무슨 행사를 한답시고 하다가
김기종 같은 자에게 칼부림 칠 공간이나 마련해 준 것부터가
그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도 ‘문화융성’을 내세우긴 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래의 ‘민중 운운 쪽에 호의적인’
문화관료들의 대못이 여전히 뽑히지 않았다면
그 예산이 전혀 엉뚱한 데 쏟아 부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혼 없는 기회주의적 관료 또는
왼손잡이 관료들의 정체성 없는 교문정책이 가셔지지 않는 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저 꼴찌에서 계속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 채 있을 것이다.
이런, 제 뿌리도 모르는 나라와 국민이
제아무리 잘 먹고 잘사는 축에 낀다고 한들
그게 무슨 자랑이 될까?
그렇다고 그의 공(功)만 말하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도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영혼이 마취된 좀비 대중이 되지 않고,
올올하게 깨어있는 영혼으로서 산다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