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殺傷 투쟁' 앞에서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는

  •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안전판과 기본설정에 대한
    전면적인 무시, 능욕, 모독, 도발, 파괴, 부정(否定)의 몸짓이었다.
    이 '살상(殺傷) 투쟁'의 멘탈리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자유체제는 어떻게 해서 지켜지는 것인가를 새삼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체제 중에서 자유체제가
가장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체제라고 확신해서
그것을 우리의 국가체제, 사회체제, 생활양식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집을 지어만 놓으면 무얼 하나?
집은 가꾸어야 하고 지켜야 한다.

전체주의 체제나 독재체제는 집을 지키는 데는 악마 급(級)이다.
온갖 흉포한 짓을 다 해서라도 자기들의 체제를 지킨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벌집을 만들어 사살한 다음
시신을 화염방사기로 지져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자유체제는 어떤가?
오랜 권위주의 시절을 겪으면서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 저항적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은
 ‘민주화’란 마치 국가의 체제수호 기능과 법질서 수호기능을
극소화하는 것인 양 생각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다.
그래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겪어오면서
특히 '진보'를 자임하는 정파일수록 ‘공안기능=악(惡)’인 것처럼 배척했다.

툭하면 ‘공안통치’ ‘민주주의 후퇴’ ‘유신 부활’ 운운하면서
경찰, 검찰, 정보기관의 기능을 축소하고 폐지하려 했다.
그럴 만한 꼬투리는 물론 더러 잡혔었다.
경찰, 검찰, 정보기관이 권위주의 시절에 범했던 여러 가지
권력남용, 월권, 정치개입의 유혹과 관성(慣性)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 하나 허물어가다 보니 부작용이 일어났다.
체제타파 세력, 급진 운동세력, 이념단체, 이익단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길거리 군중도 공권력 알기를 뭣처럼 여기는 풍조가 범람한 것이다.
세태가 이렇게 되자,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할 공권력마저
정치의 눈치를 살피거나 정치권에 줄을 서는가 하면,
체제수호 세력과 체제파괴 세력을 대등하게 취급하는 게
마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인 양 생각하는 공무원 세대가 대거 출현했다.
 
 더군다나 1990년을 전후해 소련권이 붕괴면서부터는
체제 밖에서 ‘혁명’을 꿈꾸던 지식청년들이 대거 체제 안으로 들어와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통과해 중앙부처 공무원,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었다.
이들은 대학시절에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나 마르크스 레닌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로서,
비록 ‘혁명’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에 가졌던
“대한민국 정통세력은 모두 친일파 내지 친(親)독재 세력” 어쩌고 하는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중앙부처와 사법부의 중견으로 성장해 있다.
 
 이들 세대 구성원 모두가 하나같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 부처가 도대체 왜 저러나, 저 재판부가 도대체 왜 저러나, 하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사례 가운데 적잖은 부분은 아마도
그런 ‘전혀 다른’ 공무원 세대의 출현과 연관된 게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좌파정권 10년'이 박아놓은 대못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여전히 뽑아지지 않은 탓도 아마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 문화부 통일부의 상황이 과연 어떤지 한 번 들여다볼 만하다.    
 
결국, 민주화 이후의 국가기강의 쇠퇴, 사회질서의 혼란, 공권력의 약화,
공무원의 기회주의적 처세, 그리고 일부 공무원의 공공연한 이념적 편향 등은
국민과 공무원과 정치권과 이익집단 및 운동세력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작품’인 셈이다.

이 기강 해이현상이 장차 어디까지 갈 것인가?
자유체제는 자기수호 기능을 한없이 이완(弛緩), 약화, 방치하고서도 지탱될 수 있을까?
 
 왜 이런 물음을 던지는가?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엔 구멍이 나도 너무 많이 나있었다는 게 명백하게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술해도 나라의 나라다움이 유지될 수 있을까?
도대체 아무도 지키고, 살피고, 경계하고, 챙기고, 사전에 막는 기능이라곤 없었다.
그런 기능을 강화하자고 하면 대뜸 돌아올 소리는
아마 “민주주의 후퇴‘ ’유신 부활‘일 것이다.

새누리당이란 위인들은 이 소리가 두려워서
해묵은 ’테러방지법안‘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법도 10년을 썩히고 뭉개고 있다).
무슨 이런 ’좌파 아닌 여당‘이 있나? 
 
 자유국가도 무장을 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
이 무장은 물론 전체주의나 독재체제의 무장과는 다른,
정당한 법률에 의한 질서유지라야 함은 물론이다.
 9. 11 테러 이후의 미국은 그 이전의 미국과 다르다.
정신 바짝 차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천안함’ ‘연평도’ 이후에도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벽의 칼질이 일어났는데도,
그래서 그것이 국가안보의 초석인 한미동맹을 정면으로 겨눴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뭐 어떻게 되겠지...” 하고만 있을 것인가?
참, 답답한 노릇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