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실장이 느닷없이 親李 차명진 전 의원에게 전화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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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떨어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는 대통령의 지지율.

    각종 현안을 둘러싼 논란과 세월호 참사에도 40%선을 굳건히 지키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지난해 말 불어닥친 청와대 안팎의 인사(人事) 문제 때문이었다.

    √. 정윤회씨와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는 친박계 인사들에 대한 비선실세 의혹.

    √. '좌파 세력의 트로이목마'라는 악명이 붙은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의 청와대 입성 파문.

    √. 여기에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총괄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인사검증 실패론까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을 확대해석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청와대 곳곳에서 인사(人事) 문제가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도울 인사들을 검증해야 할 프로세스는 이미 구멍이 났고, 음(陰)과 양(陽)으로 청와대를 이끌어야 할 김기춘 비서실장은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여론의 눈치가 보이는지, 김기춘 실장은 대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한 채 내부 교통정리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어쩌다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이렇게나 망가져버렸을까?

    다음은 헛발질에 여념없는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 차명진 전 국회의원. ⓒ뉴데일리 DB
    ▲ 차명진 전 국회의원. ⓒ뉴데일리 DB

     

    #. 2014년 11월 17일 오후

    '따르릉~ 따르릉~'

    차명진 전 국회의원(17-18대)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모르는 번호다. 일단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차명진 전 의원이 전화를 받자 의문의 남성이 자신의 소개를 한다. "김기춘입니다."

    그는 김기춘 실장이 자신에게 왜 전화를 했는지 의문이 든다. '김문수 지사 때문인가?'

    그러자 김기춘 실장이 말한다. "방위사업청장을 맡아주세요."

    방위사업 분야에 문외한인 차명진 전 의원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나한테 왜...'
    (차명진 의원은 국회 예결위-기재위-환노위-국토위에서 활동했었다.)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전문가보다는 깨끗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건가? 아니면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쓰려는 건가?'

    당시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합동수사단을 꾸려 방산(防産) 비리와의 전쟁에 들어간 상황.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차명진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위사업은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닙니다."

    김기춘 실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윗분에게 다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내일 청와대로 오세요."

    차명진 전 의원은 고민을 거듭하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상의해 보겠다"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김기춘 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읇조렸다. "김문수는 무슨..."

    그러더니 "아, 전화를 잘못 걸었다"며 뚝 끊었다.

    차명진 전 의원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다음 날 청와대는 방위사업청장에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 장명진 전문연구위원을 임명했다.

    김기춘 실장이 차명진과 장명진을 혼동해 잘못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동아일보의 16일자 보도와 차명진 전 의원의 확인을 재구성]


  •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만사가 아닌 망사"라는 비아냥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김기춘 실장의 잘못 건 전화를 두고, 물론 단순 해프닝일 수 있지만 현 정부 인사시스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한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지도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차명진-장명진' 두 인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김기춘 실장이 그저 연락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만 하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청와대는) 인사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의 메시지부터 제대로 짚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억장이 무너질지 모른다. 바꾸랄 땐 언제고 바꾸기만 하면 이리 떼처럼 물어뜯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나름의 승부수였다. 비서실장을 바꾸라고 했더니 총리를 바꾸겠다고 나섰다.그게 또 패착이었다. 화려한 스펙의 총리 후보자는 결정적으로 할 말, 못할 말을 구분 못했다. 야당 대표도 생뚱맞게 여론조사로 총리를 뽑자며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여론이 득달같이 사람을 바꾸라고 한 건 그들에게 큰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대통령을 올바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을 지라는 거였다. 다시 말해 인사 참사, 정책 혼선으로 표출된 국정 난맥 속에서 박 대통령을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인사 교체 요구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박 대통령의 변화다."


    [콘크리트 지지층]인 집토끼(보수층)들의 이탈(離脫) 현상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을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그간 누적돼 온 청와대의 인사(人事) 문제.

    '문고리 3인방', 비선실세와 십상시(十常侍) 의혹', '김기춘 실장 유임'

    여기에 극단적 상대주의와 무정부적(無政府的) 사고관을 가진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의 기용 문제가 더해지면서, TK(대구-경북)와 50~60대 이상 장년층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