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세어라 끝까지, '국제시장' 세대여
  
좀 늦었다. 오늘(1/2)에야 ‘국제시장’엘 가보았다.
내가 국제시장을 처음 본 것은
1950년 말~1954년 초 기간의 부산 피난시절이었다.
비록 영화 속에서였지만 오랜만에 국제시장을 다시 보니
만감이 스쳤다.
“쯧쯧쯧 또 저 얘기...” 하고 비웃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래 어쩔래? 내 맘이다.”라고 해주겠다.
 
내 맘이란 딴 게 아니다.
주인공의 끝 맘이 곧 내 맘하고 같다는 뜻이다.
“아부지예, 지 참 힘들었어예...” 하기야 인생 자체가 힘든 것이고,
나만, 우리 세대만 힘든 건 아니다.
스펙 쌓느라 죽을 둥 살 둥, 낑낑대고 사는 요즘 세대라고
왜 삶이 팍팍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우리 세대 여기까지 참 힘들게 왔다.

 
  • ▲ sbs 유튜브 캡처
    ▲ s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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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살 안팎 소년들이 전쟁을 만나고, 이산가족이 되고, 찢어진 가난을 겪고,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되고, 월남전에서 죽다 살아나고,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하고...
    고비 고비 더듬다 보면 참 말이지 두 번 살라면 못 살 인생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느냐? 이게 내 운명이고 팔자니까 이러는 거지”
    라고 소리친다.
     
    동감이다. 즐거워서 산 것보다는 죽지 못해 산 부분이 반 이상이었으니까...
    요즘 같았으면 게임기나 들고 있을 나이에 구두닦이 통을 들고 산 10대를 거쳐,
    온갖 시대적 격동으로 얼룩진 20~40대를  살면서
    심신에 만신창이가 나도록 상처를 입은 게 국제시장 세대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보람을 일군 성취의 세대이기도 하다.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찾아오면
    “아이고 내 새끼들...” 하며, 껴안고 둘러싸이는
    오늘의 대한민국 실버 세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뭐가 나쁘다고 야단들이냔 말이다.
    “너흰 이걸로 만족하라느니...” 어쩌고 악담들을 퍼 부우면서 말이다.
    마치, 이런 사연을 왜 자꾸 상기시키느냔 듯, 야단들이라니...
    알 만하다. 저들은 이 현대사가 망각되길 바란 것이다.

    이 현대사가 쫄딱 망하는 역사였으면 아마 안 그랬을 것이다.
    이 현대사가 지들이 보기에도 지금 현재 ‘해피 엔딩’으로 가는 ‘성공 스토리’로 보였기에,
    이게 자꾸 조명되고 또 재조명되고 하는 게 아마 더럽게도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 ▲ sbs 유튜브 캡처.
    ▲ s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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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은 ‘학생인권조례’라는 걸 만들어
    우리 현대사를 나쁜 역사, 망한 역사, 망해야 할 역사라고 주입받은 홍위병 세대를 찍어내려 한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와, 청소년들에게 “아부지예... 지도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지예?” 하는
    긍정(肯定)의 사관(史觀)을 심어주는 게 되게 싫었을 것이다.
     
    뭐?  "영화가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역사를 자기들의 이념의  틀 속에서만 파악하라 이 말이지?
    역사는 열심히 식구 먹여살리는 '덕수(주인공)'들의 애환 속에서 진국처럼 울어나는 것이지,
    별로 우수하지도 않은 '의식분자'의 머리 속에서 짜맞춰진 '관념의 도식(圖式)'이 아니다.   
    저들은 지금까지 문화권력을 틀어쥐고 
    수많은, 설익은 좌파상업주의 영화들을 양산해 극장가를 독식해 왔다.

    그런데 ‘국제시장’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명량’이 나왔을 때도 “어, 이건 우리 것 아닌데...” 했다가
    이번에 ‘국제시장’을 보고선 결정적으로
    “야, 이 친구들 봐라, 영화는 우리 판인데...” 하고 눈살을 찌푸렸던 것 같다.
     
    좌파상업주의의 장본 CJ 엔터테인먼트가 과연 어떤 '돈' 타산에서
    이런 영화에 손길을 뻗치게 됐는지는, 그 뱃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돈'에 윤리적 가치관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애국심 같은 건 더더군다나 ‘노 웨이’다.  
    돈이 안 된다 싶으면 거뜰떠보지도 않는 게 ‘돈’의 생리다.
    그런 ‘돈’이 대한민국 자수성가 세대의 보람 스토리를 영화화 했다?
    ‘돈’의 초(超)정밀 촉각이 무슨 '돈 되는 트렌드'라도 새로 읽었다는 뜻일까?
     
  • ▲ sbs 유튜브 캡처.

  •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에 ‘보수층’이랄까 하는 유권자들,
    특히 기성세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한 이정희 후보의 섬뜩한 모습을 보고서.
    그 이래 통진당 해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자수성가 세대는
    “이대로 놔둘 순 없어!”라며 분기탱천 한 바 있다.

    2014년 한 해만 해도 광화문  광장이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이에 넌덜머리를 낸 자수성가 세대가 오늘도  상영관 안을 꽉 메웠다.
    지팡이 들고, 며느리 부축 받으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한극장에서 벤허 본 뒤 극장은 처음인데” 하면서.
    이들은 오늘날 유권자의 다수파다.
     
    사람은 진정 무엇으로 사는가?
    처음엔 고생해도 나중에 흐뭇하게 여기는 맛에 산다.
    국제시장 세대는 그런 삶을 산 세대다.
    이 세대가 아들 딸 하나씩이라도 비슷하게 키운다면,
    그리고 그들이 또 아들 딸 하나씩이라도 비슷하게 키운다면
    대한민국이 후까닥 넘어갈 일은 없으련만,
    글쎄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