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통진당 해산 결정을 주시한다
     
     
    김영환은 1985년에 '강철 서신'이란 문건을 발표해 주사파 운동을 일으켰다.
    1990년 전후엔 종북(從北) 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만들었다.
    그런 그가 반(半)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본 직후에 전향했다.

    노회찬은 초기 민주노동당에 참여했으나

  • 주사파가 밀고 들어오자 진보신당을 만들어 뛰쳐나왔다.
    주대환 역시 초기 민노당에 참여했다가
    주사파가 싫어 탈당하고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이 세 좌파 운동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1980년대 이래 좌파 운동의 핵심부에 있었다는 점,
그래서 좌파 운동의 족보를 훤히 꿰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래서 전향을 거부해 온 주사파를 향해
"나는 지난여름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귀신과 공안 검사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운동을 함께했던 나를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산증인이다.
그런 그들이 최근 헌법재판소 증언과 저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통합진보당 이석기와 그 일파에 관해 자신들이 아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들의 진술은 이렇다.

"이석기와 그 일파는 아직도 민혁당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진당 몇 사람은 김영환이 북에서 가져온 공작금으로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통진당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석기 지하당, 경기동부연합이 있다.
여기서 오더(order)를 내리면 다 관철했다.
언론계와 정계의 486 '먹물'들은 주사파가 있다는 걸 다 알았으면서도 놀란 척한다.
이번에 폭로된 것은 주사파의 민얼굴만이 아니라
지식인과 언론의 부정직성(不正直性)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근현대 정치사상사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근현대 정치사상은 프랑스혁명의 자유·평등·박애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신은 온건파(지롱드)와 과격파(자코뱅)로 분화했다.
과격파의 흐름 속에서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사회주의는 민주적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로 분화했다.
공산당의 전체주의, 일당독재, 폭력혁명은
애초의 자유·평등·박애 본연의 가치를 저버린 타락이었다.
그리고 타락했기에 소멸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도 비슷하게 흘렀다.
4·19 이래의 자유·민권·정의가 유신 체제와 신군부를 거치면서 급진주의를 낳았다.
급진의 끝자락에서 주사파가 생겼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섬긴 주사파는 민주화 운동 본연의 자유·민권·정의를 저버린 타락이었다.
타락은 소멸해야, 아니 소멸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수뿐 아니라 진보 출신 김영환·노회찬·주대환 같은 운동가들도
이석기 현상에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의 '노'는 "무엇이 참 진보냐?" "진보의 적(敵)은 무엇이냐?"에 관해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보를 자유·평등·박애의 왼쪽 날개로 이해할 때
진보의 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체주의, 일당독재, 1인 독재,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다.
보수는 보수이기에 당연히 반대하지만 진보는 진보이기에 이에 더 민감하게 반발한다.
예컨대 유럽에선 진보가 보수보다 더 앞장서 북한의 반(反)인권 범죄를 단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어찌 된 셈인지 북한인권법에 반대하는 게 마치 진보인 양 행세하고 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주대환은 그것을 '반미(反美) 민족주의' 탓이라고 했다.

8·15광복 당시 남로당 등 좌파 통일전선은
자신들의 과제를 '반제(反帝) 반봉건(反封建) 투쟁'이라  불렀다.
'반미 민족주의'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한·미 동맹, 국제 협력, 세계시장 덕택에
봉건적 후진 사회에서 근대적 선진 사회로 비약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나간 북한은 세계 최악의 황무지로 전락했다.

이런데도 그들의 2000년대 후배들은 여전히 한국을 '식민지 종속국'이라고 뻗댄다.
이 부류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실전운동론'이란 지하 교재는
선군(先軍) 사상, 진보적 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무장 투쟁, 혁명 조직(RO)으로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자유인들은 이제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
자유 체제는 그것을 '깰 자유'까지 방임해야 하는가?
자유 체제는 나치와 볼셰비키까지도 품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불러야 진짜 민주주의"라고 한 VIP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자살 민주주의'다.
통진당 해산 청구 심판의 결정을 앞둔 헌재(憲裁) 재판관들은
지금쯤 어떤 자유, 어떤 민주주의를 그리고 있을까?
자유는 지킬 때까지만 자유이지, 잃은 다음엔 자유가 아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