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사실 있었던 그대로 말했다고 마구 인신공격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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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이사장은 역사적 사실을 말했을 뿐
- ▲ 류근일 본사 고문ⓒ뉴데일리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역사상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성역(聖域)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자료와 양심에 입각해서 특정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긍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히는 권리는 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해서도 이점은 예외일 수 없고 예외여서도 안 된다.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실(fact)을 사실대로 지적하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백범은 위대한 민족주의 리더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이었다.
이건 사실이고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권리가 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북한에서는 [김 씨 왕조] 이외의 인물을 [민족의 리더 급]으로 숭모하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그것을 100% 보장하고 있다.
이인호 이사장은 그 헌법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이인호 KBS 이사장이 22일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똑같은 차원에서 김구 선생이 [단독정권(대한민국)수립 반대 또는 수립 유보요청]을 했다는 사실도, 있었던 그대로 진술하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이인호 이사장이 그렇게 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니, 그럼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야 하나?
“김구 선생은 이승만 박사의 대한민국 건국 노선에 [찬성했으나 반대] 했다”고?김구 선생은 해방 직후에는 남노당 등 극좌계열에 의해 [반동]의 수괴 중 하나로 몰렸다.
필자 자신도 초등학교 시절 이승만, 김구를 한 데 묶어서 악당으로 그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청소년층을 상대로 한 좌익 프로파간다 물(物)이었던 듯싶다.그러던 김구 선생이 어느 날 아침, 경교장 뒷문으로 나와 북행(北行) 길에 올랐다.
정문 앞에선 우익청년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팔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분단을 막겠노라”라는 비장한 결의와 함께.- ▲ 1948년 4월 총선직전에 김구의 한국독립당등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에 간 백범 김구가 김일성과 회담하려 뒤를 따르고 있다.(자료사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때부터 좌익 세력이 “우리가 김구 선생을 언제 반동으로 몰았더냐?”며 시치미를 딱 떼더니, 그분을 대한민국 건국세력, 대한민국 건국노선, 특히 이승만 박사를 배척하기 위한 정당화의 거목(巨木)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참 교활하기 짝이 없는, 얄팍하고 속보이는 표변이었다.우익 민족주의를 [부루주아 민족주의]라고 매도하다가도, 필요하다 싶으면 한 순간에 태도를 바꾸어 그것을
[민족 부루주아]라며 한껏 치켜세우는 게 바로 해방공간에 등장했던 극좌 세력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전략전술이었다.
이런 표변은 조지 오웰의 <1984>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이인호 이사장은 1948년의 건국 전후에 있었던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그 분을 그렇게 전술적 단위로만 소모하려 한 사실을 지탄한 것뿐이다.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 그렇게 말 하지 않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공산당이 김구 선생을 전술적으로만 대한 것은 오늘에 와서 볼 때 참 잘되고 좋은 일이었다”고 해야 하는가?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주필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