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낙하훈련 사망 사고가 한국군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 ▲ 조갑제 대표ⓒ
    ▲ 조갑제 대표ⓒ

    윌리엄 C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월남전 때 미군 사령관으로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 뒤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몇 년 전 사망했다.
    그는 <한 군인의 보고서>(A Soldier Reports)라는 회고록을 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정치와 언론이 월남전을 망쳤다고 분개하는 한 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미군이 戰場(전장)에선 지지 않았는데 언론의 反戰(반전)보도와 여론의 변화, 여기에 영향을 받은 미국 국가 지도부가 전쟁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한다.
       
    1968년 베트콩의 舊正(구정)공세는 그들의 大敗(대패)로 끝났지만, 이것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미국의 안방 여론을 反戰(반전)으로 돌렸다.
    존슨 미국 대통령부터 전쟁의지를 상실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산당측과 협상을 제의했던 것이다.
    자유월남이 망한 것은 그 7년 뒤였다.
    웨스트모어랜드(별명이 웨스티) 장군은 회고록에서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했다고 평했다.
    회고록을 읽어보면 미국의 군사문화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생긴다.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 ▲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의 회고록 'A Soldier Reports' 표지ⓒ
    ▲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의 회고록 'A Soldier Reports' 표지ⓒ


      
    1958년 웨스티는 미국의 정예부대인 101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켄터키주 포트캠벨에 본부가 있었다. 부임한 직후 낙하훈련이 있었다.
    낙하지점에 나간 장교가 풍향과 풍속을 잰 다음 녹색 연기를 뿜었다.
    낙하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을 포함한 502 연대 장병들이 낙하했다.
    웨스트모어랜드가 着地(착지)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강풍이 낙하산을 몰고 갔다.
    그는 수백 미터를 끌려가다가 다른 장병들이 낙하산을 주저앉혀 다치지 않았다.
    이 强風(강풍)에 걸려 일곱 병사들이 사망했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단장은 악조건을 이유로 훈련을 중단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
    전쟁은 원래가 악조건 하에서 치러지는 것이므로.
    다음날 그는 훈련 강행을 명령했다.
    다만 낙하훈련의 경우엔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바람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다른 사병들은 대기하도록 한 뒤 사단장이 혼자서 뛰어내렸다.
    전날처럼 강풍이 불어 웨스트모어랜드는 着地(착지)한 뒤 한참 끌려가다가 설 수 있었다.
    그는 낙하훈련을 중단시키고 육상훈련만 하도록 했다.
    이 사고를 분석한 미군은 着地(착지)한 뒤 낙하산을 빨리 분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일곱 명이 낙하훈련중 죽는 사고가 한국군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