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承晩의 인상: "百獸(백수)를 호령하는 老獅子(노사자)"

    <위엄이 몸에 붙은, 鐵의 의지를 가진 達人이었다.
    가까이 가면 나보다 키가 작아 보였는데, 떨어져서 보면
    뼈대가 굵어 백발의 몸이 나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악수를 해보니 굵은 손아귀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듯하였다.>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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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초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日帝 총독부 관료 출신인
    任文桓(임문환) 씨를 농림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任씨는 차관엔 일본 고등문관 시험 同期인 李泰鎔(이태용)씨를 임명하였다. 任씨는 국회에 인사차 갔다. 국회는 그가 親日派라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국회에서 돌아온 그를 李 대통령이 불렀다.

       任씨는 회고록에서 가까이서 본 李 대통령을 이렇게 평하였다.

       <老志士(노지사)라기보다는 百獸(백수)를 호령하는 老獅子(노사자)의 인상이었다.
    위엄이 몸에 붙은, 鐵(철)의 의지를 가진 達人(달인)이었다.
    가까이 가면 나보다 키가 작아 보였는데, 떨어져서 보면 뼈대가 굵어 백발의 몸이 나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악수를 해보니 굵은 손아귀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듯하였다.>
      
       대통령이 물었다.
       "君은 오늘 국회에 갔다가 인사를 거절당했다면서?"
       "그렇습니다. 친일파라고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런 걸 알면서 차관까지 친일파를 임명, 世風(세풍)을 거스르겠다는 건 신중하지 못해. 다른 사람으로 바꾸세요. 李泰鎔은, 姓名(성명)을 보니 우리 집안인 듯한데, 그건 별개 문제요."
      
       그런 말을 하는 대통령의 표정은 손자를 타이르는 자상한 할아버지 같았다. 자존심이 강한 任 장관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격한 얼굴로 돌아온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하와이에 있는 나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건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듯해. 그러나 그런 개인문제는 옛날에 잊었어요. 지금 내가 일본과 러시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그러나, 공산당이기 때문에 어떻든 민주주의에 지게 되어 있어요. 그 정도로 알고 주의만 하면 되어요. 일본은 다릅니다. 미국에 밀착하여 민주주의와 함께 번영할 것입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 본 일본은 산 꼭대기까지 저수지를 만들고, 비탈도 논이었습니다. 밤에 지날 때 내려다 보니 전등불이 끊어지지 않고 산과 평야에 이어졌어. 저렇게 좁은 땅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오래는 잘 살 수가 없어. 머지 않아 장사나 무엇이든 이름을 빌려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로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일본을 잘 알고 있는 당신들 親日派가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일단 自重(자중)하시고, 시험대에 오른 君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는 데 전념하셔야 해요."
      
       任 장관은 '놀라운 술회였다'고 썼다.
       <그때 謹嚴(근엄)하기 짝이 없던 노인의 자세와, 저 멀리 바라보던 노인의 眼光(안광)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일본인과의 대결에 親日派의 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日帝시절 그들이 맡았던 곡예사로서의 努苦(노고)를 알아준 부탁이 아닌가? 친일파를 일본의 개(犬)라고 보았다면 일본인이 다시 올 때 그들이 原주인에게 다시 꼬리를 흔들 것이 분명하므로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길 리가 없다.>
      
       滿軍(만군) 장교 출신 박정희는 정권을 잡자, 日帝 관료-군인 출신들을 요직에 등용, 경제개발과 국가 근대화 사업을 맡긴다. 이들이 일본을 줏대 있게 잘 다루고 일본도 이들을 믿고 한국을 도왔다. 李 대통령의 예언대로 知日派(지일파)로 변신한 親日派 출신들이 한국을 일본에 예속시키지 않고 발전시키는 데 중심이 되었다. 앞으로 5년이면 한국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능가한다고 한다(IMF 예측). 식민지였던 나라가 宗主國(종주국)을 따라잡는 것이다.
      
       任文桓 씨처럼 식민지 관료 생활을 하면서 日帝와 동포 사이에서 곡예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음고생을 기억함과 동시에 이들이 그때 익힌 기술을 국가 발전에 쓸 수 있도록 도와준 李承晩과 朴正熙의 위대한 안목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李 대통령이 소련은 공산주의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의하여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무초 미국 대사는 李 대통령을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한 분"이라고 극찬하였는데, 이념적이고 신앙적인 확신이 세계사의 흐름을 장악하게 만든 것 같다.
  •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의 이승만연구소가 펴낸 [이승만 다시보기] 표지.(기파랑)
    ▲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의 이승만연구소가 펴낸 [이승만 다시보기] 표지.(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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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초 대사의 李承晩 격찬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趙甲濟 
          
       李承晩이 독립운동과 建國期(건국기)에 민족의 지도자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한국은 공산화되어 우리는 지금 김정일 治下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李 대통령은 독립운동기엔 좌익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했고(金九와 함께), 건국기엔 미국의 左右합작 움직임과 공산당 세력의 선동을 저지하고 反共자유민주 국가를 건설했다. 萬難(만난)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해내도록 그를 몰아붙인 힘은 이념적 확신이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콜레라균 정도로 보고 자유민주주의를 민족의 희망, 미국과의 동맹을 국가의 생명줄이라고 믿었다. 당시는 東西 이념전쟁, 즉 냉전이 시작된 시기였다.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라는 말이 李承晩에게 해당된다. 李 대통령의 뛰어난 세계정세觀은 이념적 自覺(자각)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당시 駐韓 미국대사 무초의 이승만 평이 재미 있다.
      
       '李 대통령은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사로 단련된 성격을 국가원수가 되고나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적일 때는 훌륭한 역사적 이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되면 그는 독립투사 시절의 본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으나 위기 때 일처리를 잘 했으며 자신의 뜻을 고급 영어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습니다. 그는 '제퍼슨식 민주주의자'임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부인(注: 프란체스카 여사)이 그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초의 평 중에서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라는 말은 미국의 프로 외교관이 약소국의 지도자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李承晩은 韓民族史上 2대 외교관이다. 羅唐(나당)연합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金春秋(김춘추)와 韓美동맹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을 만든 李承晩.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 레이건, 대처 같은 이념형 지도자는 국가 대전략을 구사할 줄 안다. 그들은 확고한 이념과 전략을 바탕으로 외교, 안보, 법치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여 그 속에서 경제가 잘 되도록 유도한다.
      
       東西냉전의 핵심은 이념대결이었다. 마가렛 대처는 '서양이 냉전에서 이겼다는 의미는 진실, 정의, 자유를 지켜냈다는 뜻이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냉전은 가치관의 싸뭉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선 아직도 그 이념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념의 시대는 갔습니다'라고 외치는 李 대통령은 노선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보, 외교, 法治(법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안보가 실패했는데 경제만 성공할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