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도 [종북] 아니라며 소송 걸면 모두 패소할 형국"
  • “종북이라는 단어는,
    조선노동당 등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대한민국의 헌법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


  • ▲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필자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쓴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손해배상액 1,500만원을 물리며 정의 내린 개념이다.
    약 1년 간 진행된 2심 재판에서,
    대한민국 법원이 [종북]이란 개념을 저렇게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판결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
    재판부는 재판 내내 [종북]의 개념을 알려주지 않았고,
    필자 등에게 “당신들은 종북을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사회당 원용수 대표가 만든 [종북]이란 단어, 외적 정치와 정책의 개념


    [종북]이란 개념은 2001년 12월 민중민주 계열인 사회당의 원용수 대표가
    "6·15 남북공동선언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 선언의 한 당사자인 김대중 정권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것"이라며
    "이들이 바로 종북세력이며 이들과는 당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게 바로 [반조선노동당의 의미]"라고
    처음으로 정리했다.

    [종북]이란 단어를 만든 사람이,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세력”

    즉, [종북]이 내적 이념이나 사상이라기 보다는
    외적으로 표현되는 정치·정책의 개념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그 이후 2008년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으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주로 민중민주 계열의 인사들은 민주노동당의 주류세력에 대해 수시로 [종북세력]이라 비판해왔다.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은,
    “현재 민노당 위기의 핵심은 [김일성주의자들]이 당의 안방을 차지한 것”이라며
    “이제 자주파와 노선 정리를 끝내고 제2의 창당이 필요하다”고 비판했고,
    민주노동당 소속의 조승수 전 국회의원은,
    공개적으로 당내 종북주의 노선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민주노동당 내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묵념하는 주사파들이 들어왔다”고 폭로했고,
    이정희 통진당 대표에 대해서도 “언니는 평양스타일”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렇게 민중민주 계열 인사들이 민주노동당 내 주류세력을 비판한 [종북]의 개념을
    애국우파 진영에서 차용하면서,
    [종북]은 외적인 정책 혹은 정치세력 개념으로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다.
    필자는 1심 재판부에서 요청한 [종북]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출하였다.

    “99도4027 판례 등에서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와 함께
    연방제 통일을 북한의 對南(대남)적화통일노선이라고 판시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 통일 등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따르고 있다면
    종북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고소인 이정희가 소속된 통합진보당의 경우,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에서
    미군철수-국가보안법 폐지-코리아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한 뒤
    한 번도 이를 수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노선 자체가 종북세력입니다.


    그러므로 피고소인이 주장한 [종북]의 개념은,
    고소인 이정희가 속해 있는 정치세력인
    통합진보당,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종북세력인 것이지,
    이정희 개인이 [종북주의] 이념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를 따진 것이 아닙니다


    2012년 총선 때 야권연대로 확장된 [종북], 김한길 체제 이후 다시 좁혀지는 등 변화


    문제는 민주노동당 주류를 종북세력이라 비판하고 나갔던 노회찬·조승수·심상정·진중권 등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과 다시 결합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하고,
    제 1야당이었던 당시 민주통합당이 이들과 연대를 하면서
    정치세력으로서의 종북개념은 대폭 확장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2012년 총선당시 야권연대 세력을 [친노종북](친노와 종북의 결합)이라 부르게 되었고,
    종북세력의 존재를 알고도 이들과 손잡은 현 정의당 세력,
    이들과 연대한 민주통합당 및 외부세력까지
    친노종북 세력으로 포괄해버린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렇게 [종북] 개념이 확장된 현실을 인정해주었다.

    “종북은 상황에 따라서
    북한과 연관됐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예컨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옹호하나
    동시에 북한의 대내외 정책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우”,
    “나아가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종북이란 표현만으로는
    이중 어떠한 범주의 사람 또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최근에는 김한길 체제 이후의 제 1야당이
    2012년 대선 이후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애국진영도 [친노종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종북의 개념은 다시 좁혀졌다.
    [종북]이란 단어는,
    사회당 원용수 대표가 만들었듯이
    정치세력 간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개념이 확장되기도 하고 좁혀지고 하는 등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종북][극우], [친일] 등과 달리
    공식적인 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에도 없는 정치-언론의 개념이다.

    이런 정치적 개념을 2심 재판부처럼
    [조선노동당 등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종북]이란 단어를 쓴 사람은 무조건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어있다.
    이정희는 물론 RO조직을 건설한 이석기조차
    외부에서 “저 사람이 조선노동당을 추종한다”는 걸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종북] 개념이라면 애국진영은 쓰지 않았다


    만약 대한민국 법원이,
    종북이란 저런 식으로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입증할 수 있는 단어로 규정한다면,
    필자는 물론 애국진영 그 누구도 종북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종북이란 단어가 문제가 된다면,
    어차피 종북은 좌파진영이 만든 단어이니
    북한 정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을 규정,
    [수북](守北)세력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

    발언하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에서 통합진보당과 종북이라는 키워드 검색을 하면,
    1만 8,000여개의 뉴스기사가 잡힌다.
    또한 [이정희와 종북]으로는 무려 110만여개의 게시글이 검색된다.
    특히 2012년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과 내분 사태, 이석기 RO조직 검거 당시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 모두,
    통합진보당과 대표 이정희 등등을 비판하며 수시로 [종북]이란 단어를 사용해왔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국어사전에도 백과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란 단어를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단 한번의 토론도 없이
    [조선노동당을 추종하는 세력]이라며
    외적으로 절대 입증할 수 없는 개념을 설정한 뒤 손배를 매긴다면,
    통합진보당은,
    기사 1만건만 해도 건 당 1,000만원씩 무려 1,000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남는 장사가 어디 있는가.

    그 통합진보당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위헌정당"
    이란 이유로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2심 재판에서,
    필자의 트위터를 인용한 언론사들도 손배를 물게 되었다면,
    대한민국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이유를 보도한 언론사들도
    모조리 손배를 물게 될지도 모른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맞는지 정부와 법원, 국민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