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 출신 重用(중용)의 문제점

趙甲濟   

   朴槿惠(박근혜) 대통령도 교수출신을 重用(중용)한다.
과거 정부를 돌이켜보면 교수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성공한 예가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뜻 생각나는 사람은 南悳祐씨 정도이다).
   한국처럼 교수 출신이 고위 官職(관직)에 많이 발탁되는 경우는 드물다. 교수는 으레 장관으로 가야 한다는 通念(통념)이 있다.

   일본은 교수들을 거의 고위 공직자로 쓰지 않는다.
미국은 교수를 많이 쓰는 경우이다.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나 키신저 및 브레진스키처럼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은 드문 경우이고, 세계적 명성을 지닌 하버드 대학 교수가 정부의 국장급으로 가기도 한다. 
   
   교수가 한국에서 重用되는 이유는 선비, 즉 학자들이 정권을 잡았던 조선조의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高麗(고려)가 과거제도를 도입한 이후 한국은 두 번의 예외를 빼면 학자그룹(선비, 사대부, 양반, 문민)이 권력을 독점해왔다. 軍人(군인)이 정권을 잡는 것이 정상적으로 여겨졌던 일본, 유럽과는 다르다. 이런 전통으로 해서 한국에서 교수들은 과대평가되고 과도한 대접을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복잡한 행정조직이 복잡한 國政(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교수들이 고위 공직자가 되겠다면 계장이나 과장급에서 출발하는 것이 순서이다. 정부의 기능을 이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공무원 사회 안에선 바깥에서 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비판자와 실천자의 관점은 하늘과 땅 사이이다. 
   
   학자의 일과 공무원의 일은 많이 다르다.
학자의 습성과 사고방식을 公職(공직)생활에 적용하면 실패한다.
교수 출신 高位(고위) 공직자가 실패하는 이유가 있다. 
   
   1. 교수들은 이론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이론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면 정책의 왜곡이 일어난다. 좌파정권하에서 특히 교수들이 많이 중용되었다. 이들이 선진국 수준의 한국사회를 농경사회처럼 취급하여 여러 가지 이론을 실험하려다가 國政을 망쳤다. 兩極化(양극화)를 과장하고 이를 해소한다면서 세금폭탄을 터뜨렸다가 자신들이 얻어맞았다. 

   2. 교수들은 사물을 분석적으로, 비판적으로 본다. 실천적 대안과 방법론이 약하다.
公職은 실천과 생산과 건설의 세계이다. 교수들은 시간에 별로 쫓기지 않는다.
公務(공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3. 교수들은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데 약하다.
高位공직자의 가장 큰 임무는 人事(인사)와 조직 관리이다. 

   4. 교수들은 자존심과 아집이 지나치게 강하다.
고위공직자는 국가이익이나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을 희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5. 公職을 그만두어도 돌아갈 데가 있는 교수들은 과오를 잘 인정하지 않고 반성이 약하다.
정부는 과오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公務는 자존심을 세우는 대상이 아니다. 

   6. 관념론에 강한 교수들은 위선적 도덕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행정과 정치에선 이것이 재앙이다. 
   
   7. 교수직은 치열한 경쟁을 일상적으로 하는 경험이 약하다.
생산성, 실천력, 돌파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군인 출신, 기업인 출신, 언론인 출신, 법률가 출신에 비교하면 실천력이 대체로 떨어진다. 경쟁이 약한 곳에서 자란 이들은 逆境(역경)에 처했을 때 쉽게 무너진다. 

   8. 교수들은 참모로서는 適格(적격)일 수 있으나 고독한 결단이나 승산이 확실하지 않는 도박도 해야 하는 지휘관으로선 不適格(부적격)인 경우가 많다. 자문역이나 참모로 쓰면 좋지만 장차관급 등 책임자로 쓸 때는 검증이 된 인물을 뽑아야 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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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士大夫(사대부)와 한국 지식인들 비교 
  
   -자기 나라, 자기 역사를 모른다. 자존심이 없으니 자주국방의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최악의 위선이고 부패이다. 
   
   
   1.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잘 몰랐다.
오로지 아는 것은 성경지식뿐이었다. 그리스-로마의 찬란한 문화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사람들보다도 이슬람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았다. 이들이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賢人(현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것을 유럽 지식인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해서 읽기 시작한 것은 12~13세기 무렵부터였다. 르네상스의 모토는 로마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잊은 로마를 다시 연구하여 인간해방의 원리를 찾으려는 운동이었다. 
   
   2. 朱子學(주자학)이 지배하던 조선왕조 선비들은 新羅(신라)에 無知(무지)했다.
 김유신을 아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그들은 신라가 唐(당)과 결전하여 삼국을 통일하고 민족통일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의 위대성을 알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목동까지도 金庾信을 잘 안다고 했으나 조선조에선 최고 지식인이란 이들도 김유신을 몰랐다.
김유신과 신라의 위대성을 깨닫지 못한 선비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다.
그리스-로마를 모르는 중세 지식인들이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던 것과 비슷하다. 
   
   3. 최근 '위대한 만남, 서애 柳成龍'(지식마당)을 쓴 宋復(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조선의 士大夫들은 柳成龍(유성룡)의 전쟁회고록 '懲毖錄'(징비록)을 읽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읽으려 안했고, 읽어도 몰랐고, 알아도 감동이 없었다. 그리고는 제갈량의 出師表(출사표)를 들먹이며, 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내 나라 개념이 없고 내 나라 의식이 없었다. 인조 이후 효종 연간을 지나면서 오직 망한 明만 그리워하고 숭모하면서, 제 나라 망각증은 깊을 대로 깊었다. 우리 역사는 역사로 생각지 않았다. 오로지 아느니 중국인물이고, 읽느니 중국역사였다. 그것이 조선이란 나라의 士大夫며 지식인이었다>
   
   4. 宋復 교수가 비판하고 있는, 제 나라를 모르고 외국만 아는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에도 지금 살아 있다. 신라의 對唐(대당)결전을 잘 모르면서,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한 사대세력이라고 욕만 한다. 李承晩(이승만)의 건국정신을 모르면서 金九(김구)만 숭배한다.
三國史記(삼국사기)는 읽지 않고 자본론과 國富論(국부론)만 좋아한다.
자신의 실존적 뿌리인 신라의 민족통일국가 건설과 이승만의 국민국가 건설을 부정하는 이는
결국 자신의 뿌리를 자른다. 자기부정인 것이다. 
   
   5. 자기 나라, 자기 역사를 모르니 자부심도 건강한 비판의식도 생기지 않는다.
자기를 부정하는 자는 자존심이 없다. 맹목적인 저항의식과 맹목적 굴종심을 보인다.
편향되고 비비꼬인 심보엔 균형감각과 교양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6. 자기나라, 자기역사를 모르면 자신의 뿌리를 모른다.
자부심과 정체성이 생기지 않거나 있다면 남의 정체성이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신라를 미워했을 것이다. 부모 같은 나라인 중국을 배신하여 삼국통일을 했다고. 그런 조선의 선비나, 신라와 대한민국을 욕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사대주의자이다. 지식은 있으나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7. 사대주의자들은 외세에 의하여 조종되는 자들이다.
김정일 집단은 외세인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교조적 논리에 의하여 조종당하고 있다.
외국인이 만든 이론에 충성하다가 제 나라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
남이 이미 버린 남의 논리에 목숨을 거니 죽어나는 것은 현실이고 삶이고 민중이다. 
   
   8. 조선조와 한국의 사대적 지식인들은 자주국방을 모르는 일종의 내시들이다.
자기 나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는 자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 조선조와 좌파정권의 비극이었다.
자기 나라를 모르고 자기 역사를 모르니 자기를 모르고 그러니 자부심이 생기지 않고
 大國(대국)을 무조건 숭배하면서 자신들의 생존문제, 즉 안보문제마저 외국에 맡겨놓고 군대도 키우지 않았다. 이들은 安保(안보)무임승차를 즐기면서 자기들끼리는 권력투쟁만 했다.
지식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最惡(최악)의 위선이고 자기기만이었다. 
   
   9. 사대주의자들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도 모른다.
노예들은 굴종만 하지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는다. 진정한 恩人(은인)에게도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는 자존심이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10. 임진왜란 때나 한국전쟁 때 조선과 한국은 明軍과 美軍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두 동맹국에 대한 미안감이라도 있었다면 조선과 한국은 자주국방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했다. 조선은 가난해서 그렇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자주국방할 수 있는 富國(부국)이다.

 한국은 국방에 돈을 쓰지 않으려 하고, 일부 한국인들은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하고, 핵무장한 主敵(주적)과 맞서지 않으려 한다. 主敵과 전쟁불사론으로 맞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으면 柳成龍처럼 규탄당한다.
자위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살찐 돼지의 모습이다.
이것이 한국 지도층의 가장 큰 부패이다. 조선조 士大夫는 아직도 살아 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