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保守의 원칙과 용기를 상실한 '박근혜·새누리'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최근 몇 주 사이 또 한 번 내리막길로 곤두박질 쳤다.
    '박근혜 잘하고 있다'가 40%(서울에선 37%), '잘못하고 있다'가 48%였다.(한국갤럽)
    시진핑과 펑리위안의 '찬조 출연'이 반짝했지만,
     그 효과도 7·30 재·보선에 묻혀버렸다.
    김명수 교육부총리 후보자 인사(人事)도 참사(慘事)로 가고 있다.
     다른 장관 후보들도 위태위태하다.

  • 집권 불과 1년 반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몰리고 있다.
 
 좌(左)쪽은 애당초부터 썰물,
즉 지지표에 넣을 수 없는 머릿수였다.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캠프는
'대통합'이란 야무진 꿈을 걸었다.
좌·우를 아우르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될성부르지도 않은 소리였다.
좌쪽을 향해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러브레터였지만
아무리 그런대도, 아무리 '이준석'을 내세운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아첨을 해도, 좌쪽은 박근혜·새누리를 절대로 봐주지 않게 돼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는 이 숙명적인 짜임새를 정말 몰랐다는 말인가?
 
 좌쪽 다음으로 등을 돌린 게 이른바 '중도(中道)'를 자임하는 사람들이다.
연령적으로는 주로 40대라고 하는데,
특정한 정치적 소속감 없이 그때그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는 이들의 표(票)도 큰 몫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다시 '박근혜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세월호 참사 때 드러난 '타락 관료+악덕업자'의 마피아가
그들의 부아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폐부를 찌른 것은 믿었던 브루투스다.
시저는 칼에 찔려 죽는 순간 무엇이 가장 뼈 아팠을까?
믿었던 브루투스가 돌아선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절규는 "브루투스, 너마저도!"였다.
그러나 브루투스의 입장에선 그의 행위는 공화정(共和政)을 위한 고뇌의 결단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브루투스는 누구인가?
언론은 그들을 '보수'라고 부르지만
본인들은 '우파' '자유민주' '헌법 수호' 등 여러 표현으로 자신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문창극 총리 후보 파동에서 보인 KBS의 거두절미(去頭截尾) 방송과
그것이 오도한 여론(?) 앞에서 박 대통령이 그렇듯 허약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새누리당의 서청원·김무성·이인제·김상민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선
지진(地震) 나기 직전 생물들의 탈출을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 '아, 그동안 우리가 순 짝퉁 보수를 밀어줬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박근혜·새누리가 처한 위기는 바로 이것이다.

정치적·이념적 반대자들이 "박근혜 하야(下野)하라"고 하는 건
으레 그런 것이기에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당연한 반대자들이 공격을 해댈 때도 "그래도 박근혜를 보호해야…" 하며
그를 받쳐주던 보수 우파마저 '박근혜 굿바이'를 한 것이
이번 집권 측 위기의 가장 심각한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문제다.
원칙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기준에서는 우선 박근혜·새누리는
 거짓의 '쓰나미'에 결연히 맞설 '원칙+진정성'의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무엇을 모색해나가야 할 것이다.
진실은 불편해도 마주쳐야 한다.
보수→진보→보수로 정권이 교체된다 한들
그게 짝퉁 보수, 깡통 진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는 진짜가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이럴 용기가 없는 정권은 5년 내내 그저 '가장(假裝)무도회'나 열다가 땡 칠 뿐이다.
박근혜·새누리가 그 길로 가고 있다.
 
 박근혜·새누리에는 '우리를 뽑아준 이유를 위해 온몸을 던지리라' 하는 개념 따윈 없어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잘 모르는 것 같고,
좀 안다 해도 그걸 위해 몸을 던진다는 덴 더더욱 '미쳤냐?'는 표정이다.
그래서 이런 오렌지 보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자유지성의 더 시급한 과제이다.
 
 최근 어떤 사석(私席)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재·보선과 차기 총선에서 보수가 질까봐 가짜 보수의 손이라도 자꾸 들어주는 건
그만하기로 하자." 그러자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라는 반론이 뒤따랐다.
보수가 지금의 보수 정권, 보수 정치, 보수 정계에 '세게' 충격요법을 써야만
다음 대선에서 더 큰 '보수의 재난'을 막을 수 있으리란 분위기였다.
 
 충격파(波)는 보수 사회 전반으로도 파급돼야 한다.
탐욕스럽고 추하게 노는 자들까지 일괄 '보수' 행세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ticismclub)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