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떨어져 나와 신판 [팍스 차이나]에 사대(事大)하라”고?

  • 習近平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중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이채진(李彩珍) 박사.
    그 분은 나의 대학 1년 선배다.
    그 이(李) 박사가,
    외통부 산하 국립외교원 초청으로
    7주 동안 외교관 인턴들에게
    [강대국들의 외교정책]
    을 강의하기 위해
    한국에 머물러 왔다.
    6월 28일, 필자의 대학 입학동기회가
    선배를 오찬모임의 [게스트 스피커]로 초청해
    習近平(시진핑)의 한국방문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기로 했다.


  • ▲ 황하(黃河) 문명의 주역 한족(漢族) 대표 習近平이 한국을 방문한다. 빗살무늬 토기의 요하(遼河)문명과 홍산문화의 주역인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 황하(黃河) 문명의 주역 한족(漢族) 대표 習近平이 한국을 방문한다. 빗살무늬 토기의 요하(遼河)문명과 홍산문화의 주역인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이채진 박사의 결론은,

    중국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북한을 좋아하진 않지만,
    망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중국은,
    한국을 자기들 페이스대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유혹 당하는 척은 하더라도,
    유혹 당하진 말아야 한다.”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대충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채진 박사의 경고는
    그것을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중국학자의 입으로
    직접 재확인한다는 의미를 띠었다. 

    그러자 KBS 고위간부였던 이덕주 동기(同期)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胡錦濤(후진타오)에 비하면,
    習近平(시진핑)은 한반도 현실에 대해

    무언가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는 것,
    그래서 그 두 사람 사이의 차이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이의(異意)였다.

    필자는,
    이 두 다른 견해를 이렇게 하나로 종합하기로 했다.

    이채진 박사의 경고는,
    중국이란 나라가 그리고 있는
    제국(帝國) 디자인의 큰 틀(pattern)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덕주 동문이 던진 이의는,
    그 큰 틀 속에서나마
    중국의 현(現) 지도자가
    전임자(前任者)에 비해 현저히 다르게 행동하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적잖은 변화를 쌓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쩌랴?
    둘다 맞는다고 할 수밖에.

    불변의 틀과 가변적인 모멘텀들,
    이 둘은 처음엔 서로 모순된다.
    그러나 가변적인 모멘텀들이 자꾸 반복되고 축적되다 보면
    언젠가는 그 큰 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설정해 보자
    ...고
    하는 것이 필자의 실험적 관점이다.

    큰 틀이 불변이라 해서,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무런 실험도 하지 않는 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게 바로,
    자꾸 굴러 떨어져도 산(山) 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푸스의 도전]이다.

  • ▲ 황하(黃河) 문명의 주역 한족(漢族) 대표 習近平이 한국을 방문한다. 빗살무늬 토기의 요하(遼河)문명과 홍산문화의 주역인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이 가설에 기초해서,
    필자는,
    중국을 너무 순진하게 믿고 그 궤도(軌道)로 흡입되지는 말되,
    그러나 그런 중국을 상대로
    우리 나름의 능동적인 게임의 전략-전술마저 구사하지 않거나 못하는
    무위(無爲)-무책(無策)으로 임하진 말자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한반도 정책 중 하나는,
    “약한 소국, 그래서 중국의 보호를 받는 한반도가 되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필란드 화(化)인 것이다.

    조선왕조는,
    이를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여 사대교린(事大交隣)을 했다.
    이것으로 그나마
    종묘사직, 문화, 풍속, 언어의 “듕궉과 달아...”를 유지할 수 있었노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과연 국격(國格)이랍시고 내세울 만한 것인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국은 우리를 향해
    “미국에서 떨어져 나와
    신판 [팍스 차이나](Pax China)에 사대(事大)하라”

    요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친중(親中) 남노당]이 접수하지 않는 한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내심 그렇게 되길 바라는 [친중 남노당]적 좌익분파가
    우리 내부에 [전혀] 없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지만...

    결국 대한민국이,
    본연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둥북아시아 국제정치에서
    중국-일본 패권주의의 종속변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런 나라로서
    이 지역의 안정과 협력과 번영에 기여하는 독립변수가 되려면,
    우리로선 역시
    미국과 지속적인 가치의 공유-군사 동맹-지역경영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 최선일 것이다.

    이래야 중국도 일본도 우리를 깔보지 못한다.

    중국과 일본은,
    상대방을 깔볼 수 없을 때라야 할 수 없이 정중하게 나온다.
    이건 수천 년이 지나도록 불변의 상수(常數)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등 주변지역에 대해 무례하고 오만하고 교활했다.
    지금도...
    그러나 베트남은,
    같은 공산국가면서도 자존의 힘을 발휘함으로써
    중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중국을 미국의 대안으로 간주한다든지,
    미국과 중국을 똑같은 상대방으로서
    등거리(等距離)에 두고 대한다든지 하려는
    일부의 발상은,
    그래서 중대한 단견(短見)이자,
    실수가 될 것이다. 


  • ▲ 우리에게 [팍스 차이나] 편에 서서 사대교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중국의 속셈이다. 우리보고 핀란드처럼 살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그런 시진핑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 우리에게 [팍스 차이나] 편에 서서 사대교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중국의 속셈이다. 우리보고 핀란드처럼 살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그런 시진핑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황하(黃河) 문명의 주역 한족(漢族) 대표
    習近平
    의 방문에 즈음해서
    우리는 그보다 앞서,
    그와는 다른 문명으로서 발흥했던
    빗살무늬 토기의 요하(遼河)문명과 홍산문화의 주역으로서
    그에게 일단 우호와 친선의 의사를 표하도록 하자.

    그러면서 그를 만나 김에
    우리가 할 말은 분명히 전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이,
    북한이라는 불량국가를 동방 초소(哨所)라 하여 비호하는 것은,
    더 이상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쾌하게 표현해 주어야 한다.
    특히 언론이라면...

    안보분야에선
    “우리는 한미동맹을 국가안보의 초석 중 하나로 삼는 국가”임을
    분명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한-미 사에에 쐐기를 박을 생각일랑 말라는 것이다.  

    중국 당국의 소위 [동북공정]이란 이름의 역사왜곡을
    양국 학자 사이의 엄밀한 학문적 논의에 회부할 것을 제의하자.
    일본의 역사왜곡만 안 되고,
    중국의 역사왜곡은 괜찮은가?

    말과 행동과 의전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주변이 손님대접은 빈틈없이 하되,
    과공(過恭)의 실수도 없기를 당부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g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