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대중 곁으로...박근태-이단옆차기 등 실력파 뮤지션 대거 참여수록곡 11곡 중 '9곡 작곡' '7곡 작사'..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면모 과시
  • 뒤에서 대기하는데 정말 떨리더라고요.
    나오는 중엔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요즘 남자 가수들 중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이승기가 내뱉은 말이다.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열린 한 공연에 게스트로 참석한 이승기는 “15집 가수 이선희의 애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예인들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데뷔 30주년을 맞기가 참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 롱런을 저의 최측근이자 멋진 선배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참석해서 영광이고요.
    방금 노래가 끝났는데도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톱스타로 자리매김한지도 벌써 수년째, 이젠 여유가 생길 법도 하지만 자신을 직접 발탁한 이선희의 앞에 서려니 여전히 오금이 저리는 모양이다.

    이승기 뿐만이 아니다. 이날 이선희의 데뷔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한 기라성 같은 가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선희의 자축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선희가 누군가? 1984년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 ‘J에게’란 노래로 대상을 거머쥐며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장본인.

    갓 스물된 나이에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폭발적인 가창력 만큼은 당대에 따를자가 없었다. 이후 ‘아 옛날이여’ ‘알고 싶어요’ ‘영’ ‘한 바탕 웃음으로’ 등 발매하는 노래마다 대히트를 기록한 이선희는 90년대 초반까지 조용필과 함께 가요계를 양분하는 ‘여제(女帝)’로 군림해 왔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7년 연속 ‘MBC 10대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을 수상한 이선희는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도 1990년까지 5년 연속 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마치 80년대 팝시장을 양분했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그랬던 것처럼, 가요 부문 시상식이 열렸다하면 대상의 주인공은 언제나 조용필 아니면 이선희였다.

  •                      이젠 가수보다 ‘이승기 키운’ 제작자로 더 유명
                    임정희-거미-윤도현 “내 우상이다” 한 목소리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가수. 그 누구보다도 가수(歌手)라는 직업에 충실했던 이선희는 유독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임정희, 거미, 윤도현 등 가창력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파 가수들이 일제히 ‘롤모델’로 손꼽는 가수가 바로 이선희다.

    30년째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며 가수들의 우상으로 군림해온 이선희에게,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그냥 가수죠. 노래하는 보컬리스트예요.
    그저 노래하는 게 좋고, 마이크를 잡는 게 좋고,
    노래로 제 감정을 표현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이죠.
    솔직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박수와 관심 속에서
    한 해를 맞았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기쁨으로 지금을 누릴 수 있는 건
    제가 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잘 있었다는 건, 그냥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고 이선희는 설명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히트곡이 나오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런 것에 의존하고 머물렀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항상 뭔가를 하려는 시도를 해왔기 때문에
    ‘이선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라는 말들을 해 주시는 것 같아요.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롱런의 비결”이라고 밝힌 이선희는 2009년 정규 14집 ‘사랑아…’ 이후 5년 만에 발매하는 신보 ‘세렌디피티’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기타로 베이스 영역을 연주해 봤고요.
    이브 몽땅 시절의 음악적 색채를 느끼고 싶어
    의도적으로 이펙팅을 가미하기도 했어요.
    ‘썸데이’라는 곡은요, 제 주변에 있는 소리들을 담아 보려고 했어요.
    그런 소음들이 자연스레 음악에 묻어나도록 만들어 봤죠.


    싱어송라이터로 잘 알려진 이선희는 이번 15집에선 편곡에까지 손을 댔다. 그야말로 이선희의, 이선희에 의한 노래가 탄생한 셈이다.

    ‘인연’이라는 곡을 낸 이후부턴
    이선희를 싱어송라이터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굳이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돼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제가 가진 목소리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선
    제가 직접 곡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속삭이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작곡가 분들은 꼭 제가 낼 수 있는 소리의
    미니멈 맥시멈에 맞춰서 주시더라고요.
    그러면 변화하기 힘들죠.



  •                     작사-작곡에 편곡까지, 싱어송라이터 면모 과시
               “섹시코드 내세운 걸그룹, 별로..” 소녀시대는 예외?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선희는 무려 100여 개의 곡을 작곡했다. 그 중에서 엑기스만을 모아 ‘세렌디피티’앨범에 담아낸 것. 멜로디 뿐 아니라 가사도 대부분 이선희가 쓴 것들이다. 가볍고 재미난 가사들이 요즘 트랜드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자신은 삶에 대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는 이선희.

    물론 듣고 흘리는 감성적인 곡들도 좋죠.
    하지만 저는 가사가 주는 힘이 큰 걸 더 좋아해요.
    곱씹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가사들이 더 많이 와닿는 것 같아요.
    ‘나에게 주는 편지’는 여전히 흔들리고 요동치고 있는
    내 자신을 노래한 곡이고요.
    ‘이제야’는 정작 자기 자신은 위로 받지 못하고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든 노래죠.”


    하지만 이번 신보가 이선희의 곡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타이틀곡 ‘그 중에 그대를 만나’는 박근태가 곡을 만들고 김이나가 작사한 노래. 이외에도 히트곡 제조기 이단옆차기와 에피톤프로젝트, 고찬용, 선우정아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이번 앨범에 참여, 완성도를 높였다. 

    팬들과 호흡하기 위해 젊은 뮤지션과 공동 작업을 했다는 이선희는 “본의 아니게 이들과 생활 패턴이 달라 적잖이 애를 먹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이 분들이 저랑 패턴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전 항상 아침에 일어나는데
    이 분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인 거 있죠?
    그래서 오후 4시를 절충선으로 잡고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대부분 잠에서 덜 깬 채로 나오곤 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맞추는 수밖에 없었죠.”


  • 이선희는 트랜디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후배들의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그가 바라보는 요즘 가요계의 흐름은 어떨까?

    평소 가요 프로그램을 자주 보고요.
    홍대에서 인디 활동을 하는 젊은 뮤지션들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남자 아이돌그룹은
    음악이 상당히 다양해 진 것 같더라고요.
    댄스 일변도가 아니라 그 안에 메탈이나 힙합 장르가
    녹아있는 걸 볼 수가 있어요.


    반면 걸그룹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대부분 ‘섹시 코드’를 내세워 활동 중이라는 것. 그러나 유독 한 그룹에게만은 애정이 쏠린다고 했으니….

    좋아하는 걸그룹요? 소녀시대? 하하.


    자신의 애제자 이승기가 소녀시대의 윤아와 사귀고 있음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음악적인 평가와는 ‘전혀 무관한’ 사심 섞인 발언일 터.

    기자들 앞에서 농담을 툭툭 내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완벽주의자’ 이선희가 아닌 ‘옆집 누나’의 포스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에 도사린 열정과 끼는 젊은 가수들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게 반전 포인트. 

    ‘아 옛날이여’는 단지 노랫말에 불과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수 이선희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 취재 =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 이미화 기자 hwahwa05@newdaily.co.kr / 후크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