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크라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



  • 유크라인(Ukraine 우크라이나)이 미국과 유럽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팽배하던 위기 사태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으로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유크라인 사태는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남아 있습니다.

    위기의 시작은 지난 2월 28일 러시아 군대가 유크라인 영토인 크라이미아(Crimea) 자치정부 청사와 공항을 점령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유혈 대결로 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대응책에 부심하고, 러시아의 주식이 폭락하는 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크라이미아 점령 며칠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크라이미아를 물리적으로 접수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크라이미아 점령군은 그 지역 자위군이라고 말했습니다.

    유크라인 사태의 시작은 나라의 방향을 유럽 쪽으로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 쪽으로 갈 것인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크라인이 유럽공동체(EU)와 무역 조약을 체결하고 유럽 공동체 쪽으로 편입할 수 있는 첫 걸음을 시작하려하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유크라인이 유럽공동체 쪽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푸틴은 유크라인 대통령 야누코비치에게 150억 달러의 크레딧 라인과 싼 값의 가스 공급과 여러가지 경제적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친 러시아 성향을 가졌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 정권에서 체결한 유럽공동체와의 무역조약을 파기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유크라인의 미래를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과 손잡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를 해서 90명에 달하는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굴복해 2개월 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항의 시민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해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도주를 하고 국회는 임시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소련의 크라이미아 점령의 명분은 도주한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러시아 민족주의자인 크라이미아 자치정부 수반의 군사 개입 요청입니다. 러시아로 도주한 야누코비치는 아직도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야누코비치가 합법적인 대통령이고 군사 개입을 요청했기 때문에 유크라인에 파병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크라이미아는 소련에 속해 있었으나 1950년대에 유크라인에게 양도 되고 소련 군사기지를 두도록 했습니다. 크리미아는 유크라인에 속하면서도 준 독립국가에 가까운 체제로 독자적인 자치 정부와 사법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계 인구가 60%에 달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크라이미아는 소련의 함대나 상선이 바다로 갈 수 있는 길목이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전략적인 요충지입니다. 이번에 러시아 군대가 정부 청사와 공항을 점령하자 시민들이 러시아 깃발을 들고 환영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크라이미아 반도만이 아닙니다.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에게 유크라인을 잃어버린 러시아 제국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유크라인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깊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동방 슬라브 문화와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가 태어난 산실이 바로 유크라인 수도 키에브입니다. 형제 국가라고 할 만큼 러시아의 문화와 종교 뿌리가 유크라인에 깊숙이 연결돼 있습니다. 유크라인을 서구 진영에 빼앗기면 러시아의 뿌리와 자존심을 빼앗기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유크라인은 문화와 예술, 종교, 건축, 문학에 찬란한 꽃을 피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강대국 틈에서 수많은 세월을 찢기고 찢기면서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고, 특히 러시아와 폴랜드의 분할 통치로 유크라인은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비극과 비애 속에서도 유크라인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 유크라인 사태는 바로 러시아 제국의 식민통치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국가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상실하고 유크라인은 강제로 소련에 편입되었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유크라인이 독립 국가로 탄생했습니다. 독립 국가가 되었으나 오랫동안의 식민통치와 분할통치를 거치면서 식민지 문화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인접한 지역인 동쪽 유크라인은 러시아 언어와 문화가 지배적이고 국민들 의식도 러시아를 선호하고, 유럽에 가까운 서쪽 지역 유크라인은 서방 문화와 서구적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처로 인해 유크라인 국론이 반반으로 분열되고 지역 대결 감정이 뿌리 깊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자칫하면 나라가 동서로 분단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크라이미아 반도 침략은 유크라인 분단을 위한 서곡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친 러시아 지역에서 러시아 지지 시위가 발생해 혼란이 야기되고, 유크라인 정부가 이것을 진압하면 유크라인은 내전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구실로 러시아 군대가 개입해 유크라인을 둘로 쪼개서 점령하는 시나리오가 부상되고 있습니다. 이미 러시아 의회는 푸틴 대통령이 필요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구촌은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옛 소련의 잔혹 통치 핵심이었던 KGB 비밀경찰의 책임자를 지냈던 푸틴은 무모한 성격이라는 평을 들으면서 소련이 민주화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미 옛 소련 연방이었던 조지아 침공을 통해 푸틴은 침략성을 과시했습니다. 러시아 제국 부활의 환상에서 물러서지 않는 푸틴의 야심과 도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은 격앙하고 있으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는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에 대해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수단으로는 정치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적으로 제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제재도 유럽이 입을 경제 파장으로 인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크라인에 10억 달러를 긴급 지원하게 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습니다.

    소치 동계 올림픽의 축제 기운이 마르기도 전에 푸틴은 올림픽 정신이 무색해지는 군사 조치를 취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중국은 러시아 편을 들고 있습니다.

    유크라인과 한반도의 경제적 수준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으면서도 두 나라는 공통된 역사적 함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천년 역사에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국가적 배경도 그렇고, 인접 강대국과 문화적 공통성이 있는 것도 그렇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수없이 침탈당한 비극의 역사도 그렇고, 식민지 경험도, 나라가 둘로 쪼개진 분단의 비극도, 비극의 바닥에 이념이 있는 것도, 분단으로 인한 국론 분열도 그렇지만, 바로 인접한 지역에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더욱이 이들 두 강대국 모두 공산주의 실험으로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것도, 경제 대국이 되었으나 국가적 도덕성과 국격이 뒤지고 의식의 문명성이 후진 것도 그렇습니다.

    러시아가 점령한 크라이미아 반도가 공교롭게도 38선을 그어서 한반도를 분단시킨 얄타회담의 개최지였다는 것이 강대국의 야심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분단 국가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과, 분단에서 통일, 다시 분단의 위기에 직면한 유크라인 옆에 여전히 강대국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크라인은 한국에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