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신문선진국 영국도 벤치마킹
  •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피로 피를 씻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12.12, 5.18 형사 항소심에서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서글서글한 눈매,
    사람 좋은 웃음,
    꼿꼿한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온화한 미소.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권성(71) 위원장의 첫 인상은 선비를 연상케 했다.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12.12, 5.18 사건 항소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량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할 때도
    그는 기품을 잃지 않았다.

    [소신법관]이란 별칭답게
    그는 한국 사법사상 가장 유명한 판결이유를 통해
    보복의 정치, 악순환의 정치적 폐단을 과감하게 깨트렸다.

    그는 법관으로서 언제나 원칙을 지켰다.

    [미스터(Mr) 소수의견]이란 명예로운 표현은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는 그의 지사적 풍모를 잘 보여준다.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재판에서도 그는 원칙을 지켰다.

    비록 이 판결로
    무수히 많은 이들로부터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렸지만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소신은
    후일 친일파 재산의 국가 환수를 규정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지면서,
    결실을 맺는다.

    만약 당시 그가
    들끓는 여론의 압력에
    원칙에서 벗어난 판단을 내렸다면,
    친일파 재산의 국가 환수는 위법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 호주제에 대한 위헌심판에서도
    그는 언제나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소수의견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되곤 했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알기 쉬운 판결문과
    보기 드문 명문(名文),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원칙과 소신.

    법관으로서 그의 생애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국 사법사의 한 시대를 풍성하게 만든 그는
    이제 언론중재위원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08년 4월, 언론중재위원장에 취임한지 만 5년.
    [판결을 통해 세상을 바꾼] 법관의 눈에 비친 한국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

    권성 위원장을 만나
    법과 인생, 언론을 화두 삼아 대담을 가졌다.

    1941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권성 위원장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67년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69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관의 길을 걸었다.

    대전·서울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연구실장,
    청주지방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등을 거쳐
    2000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돼 2006년 퇴임했다.

    퇴임 후 2년간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 4월부터 언론중재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본지 인보길 대표와 권성 위원장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인>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권> 권  성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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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날이 매우 무덥다. 건강은 괜찮으신지 걱정이다.

    <권>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몸의 왼쪽에 마비가 왔었다.
    다행히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인> 언론중재위원회는
    국민과 언론사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위원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권> 언론중재위원회는 1980년대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방편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그것이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 중에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해다.
    일선 언론계에 몸담으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정말 좋은 제도다.

    소송으로 갈 사건이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해마다 늘고 있다.

    언론의 보도로 피해를 입은 국민 입장에서는
    신속한 조정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언론사 입장에서도
    소송으로 인한 부담을 크게 더는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위원회의 조정 과정이
    언론사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인> 출범 당시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위원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권> 지금은 그런 시각이 거의 사라졌지만
    처음에는 언론들이 위원회를 삐딱하게 봤다.

    다행히 지금은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사도
    기사와 관련해 양쪽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인> 언론중재위원회는
    [세계에서 유일한 법정기구]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어떤 점이 다른가?

    <권> 언론의 보도와 관련된 분쟁 조정방식을 보면,
    법률적 효력을 가진 [법정기구]가 중재를 맡는 경우는
    우리가 유일하다.

    다른 나라는
    모두 민간자율기구가 언론 분쟁 사건을 맡는데 거의 유명무실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기존의 민간자율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한국과 같은 법정기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언론중재위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다.
    해외에 수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수출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권> 매년 열리는
    <유럽연합 언론평의회연맹>
    (AIPCE, Alliance of Independent Press Councils of Europe) 연차 총회를

    우리나라에서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언론중재 제도를 적극 홍보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
    2008년 4월부터 지금까지 위원회를 이끌고 계신다.
    만 5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다.
    특히 3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법복을 입으셨는데
    법관의 눈에 비친 한국 언론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권> 한국의 언론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늘 언론에 고마움을 느낀다.

    언론은
    국민을 바른 길로 이끄는 계몽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지사(志士)적 풍모 역시 언론이 가진 특징 중 하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언론의 모습이 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사적 풍모보다는, 멋쟁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멋쟁이들이 인기를 끌기 위해 치장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언론도 언젠가부터 인기에 너무 집착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 같은 생각이다. 언론이 겉멋이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권> 언론이 상업적인 측면에
    너무 매몰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점들이 아쉽다.



    <인> 트위터를 비롯한
    SNS 상의 게시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이 사실상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새로운 논란을 빚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들이 트윗 반응 등을 바탕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SNS와 관련된 기사도 문제가 많이 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장으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권> 큰 문제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상
    SNS는 아직 언론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상의 게시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직접 중재의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SNS 상의 게시 글이나 사진 등을 인용한 언론 보도가
    중재 대상이 되는 경우는 매우 많다.

    무엇보다 언론이 오보를 내지 않도록 정말 잘 해야 한다.

    언론이
    SNS 게시 글의 내용을 확인·검증하지도 않고 보도를 하면,
    국민은 기사내용을 진짜로 알 수밖에 없다.



    <인> 언론이 스스로
    오보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보도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SNS에서 떠도는 사실무근의 주장들을 중계하는 측면이 있다.

    <권> 언론의 자긍심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인용해 보도를 하는 경우,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 접근을 했으면 좋겠다.



    <인> 근본적인 대책은 없나?


    <권> 대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기술적인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상의 사사로운 대화까지
    법의 잣대로 규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인> 위원회의 조정건수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만큼 언론의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아진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국민들이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을 참지 않는다.



    <인>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학교 내 갈등해결을 위한 직무연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연수 내용이 궁금하다.

    <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이 늘면서
    관련된 기사들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학교나 교사들은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취재부터 거부하는 경향이 많다.
    취재거부와 비협조로 사건 보도가 더 선정적으로 흐르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교사들에게 무조건 취재를 거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취재에 대응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노하우도 교육한다.



    <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이사장도 맡으셨는데
    활동 내용 좀 소개해 달라.

    <권> 지금은 이사장직을 그만 뒀다.
    단체가 출범한지 30년이 넘었는데
    주로 소외된 저소득층 가정을 돕는 일들을 하고 있다.

    연탄보일러도 설치해 주고
    비가 새지 않도록 낡은 천정을 개보수하는 사업도 한다.

    예전에는 소외계층의 학생들에게 일기장을 나눠주고
    사랑의 일기를 쓰는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호응이 대단이 좋았다.

    한 가지
    제가 이사장이 되면서 새로 시작한 일이 있는데
    6.25 참전 용사들을 뒷바라지 하는 일이었다.

    6.25 참전 용사들은 전국적으로 1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 분들 중 많은 경우 생활이 매우 열악하다.

    연탄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쌀을 갖다 줘도 해먹을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좋지 않은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보수가 필요한 곳들 고쳐드리고 쌀과 김치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인> 특별히 6.25 참전 용사들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는가?

    <권> 6.25는 어느새 잊혀진 전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 됐다.
    심지어 6.25를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전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까지 있다.

    월남전을 비롯해 다른 국가유공자들과 비교해도
    유독 6.25 참전 용사들에 대한 홀대가 심하다.
    거의 방치 수준이다.
    이분들이 받는 원호급여는 충격적일정도로 적다.

    국가가 당신들을 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당신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희망을 전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인> 책 이야기 좀 하겠다.
    얼마 전에 일반인을 위한 판례 해설서를 펴내셨다.
    <결단의 순간을 위한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판결 읽기>라는 제목을 붙이셨는데,
    책을 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권> 법관 생활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재판을 많이 맡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12·12, 5·18 항소심 사건이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내가 맡은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책으로 내고 싶었다.

    그런데 헌법재판관을 끝내고 나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초대 원장을 맡게 됐다.

    이때 제 조교를 했던 제자(신정현 변호사)가 책 발간을 적극 권했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들을 잘 정리하면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논술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제자의 도움을 받아
    제가 재판장과 헌법재판관으로 있으면서 맡았던 사건 중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례와 결정문, 소수의견 및 별개의견 등을 모아
    책으로 펴내게 됐다.



  • ▲ 올해 초 권성 위원장이 인하대 로스쿨 원장 시절 제자인 신정현 변호사와 함께 펴낸 '결단의 순간' 표지 사진.ⓒ 연합뉴스
    ▲ 올해 초 권성 위원장이 인하대 로스쿨 원장 시절 제자인 신정현 변호사와 함께 펴낸 '결단의 순간' 표지 사진.ⓒ 연합뉴스


    <인> 책 제목은 누가 붙였나.
    그 안에 담긴 뜻도 이 기회에 말씀해 달라.

    <권> 처음에는 출판사에 모든 것을 맡겼는데,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결단의 순간>이란 표현을 쓰자고 했다.

    법관은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문을 작성할 때까지
    수업이 많은 고뇌를 거듭한다.

    결국 판결은 법관이 한 결단의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책에 소개된 주요 사건들이
    어떤 고뇌를 통해 판결에 이르게 됐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런 제목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 위원장님께서 맡은 판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사건이다.

    당시 1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한 단계 낮췄다.
    판결문에서 [항장불살]이란 표현을 쓴 일화가 유명한데
    그때 얘기 좀 해 달라.

    <권> 당시 국민적 분위기는
    모두 “죽여야 한다”,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는데 “죽이는 것”을 당연시했다.

    피로써 피를 씻는 악순환만은
    되풀이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분위기가 “죽여야 한다”는데 모아져 있어,
    판결을 선고하고 나면 비난이 엄청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반발이 크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는데,
    선고 다음날 광주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광주에서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홍남순 변호사였는데,
    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런데 이 분이 내게 전화를 해서
    “참 어려운 결단을 하셨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인> 정권을 잡으면 정적을 죽이는 역사를 막으셨다.
    정말 대단한 결단을 하셨다.
    이것이 바로 [국민통합]의 첫 걸음이란 생각이 든다.
    판결 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받았나?

    <권> (웃으며) 한 번도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 ▲ 2006년 8월, 권성 헌법재판관이 퇴임식을 마친 뒤 직원들의 박수를 뒤로 한 채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 2006년 8월, 권성 헌법재판관이 퇴임식을 마친 뒤 직원들의 박수를 뒤로 한 채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인> 최근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살려 준 재판관의 입장에서 한 말씀 해 달라.

    <권> 전후 사정을, 내막을 잘 모른다. 드릴 말씀이 없다.



    <인> 헌법재판관으로 계시면서 소수의견을 참 많이 내셨다.
    그런데 그 소수의견 하나하나가 사회발전의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간통죄 위헌판결인데
    그때 유림들 데모가 대단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소신 지금도 변함이 없나?

    <권>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애정문제, 인간 마음의 문제인데
    그것을 법률로 재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간통뿐이 아니라
    이혼으로 인한 행복과 불행은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이지,
    국가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다.

    참고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도 위헌 의견을 냈다.



    <인>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위헌심판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7대1 혹은 8대1로 합헌 판결이 났다.
    당시에도 내 판단은 소수의견이었다.

    그런데 그 후 형법이 개정되면서 혼인빙자간음죄는 결국 법전에서 사라졌다.



    <인> 다시 한 번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서셨다.
    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이 따로 있고,
    물론 법의 영역도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간통죄는
    18세기 주홍글씨가 나오던 시기에나 성립할법한 것인데
    이런 후진적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위원장님이야 말로 진짜 진보다.
    좌파의 깃발을 들어야만 진보가 아니다.

    더구나 법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치적 지향점을 떠나
    무엇보다 합리성을 중시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위원장께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권>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가변적이다.
    수시로 바뀌는 감성에 의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감성보다는 이성이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말하는 합리성은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다.

    시대와 장소 혹은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하는 보편성이다.

    후배법관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 준다.



    <인> 알기 쉬운 판결문, 명문장으로도 유명하신데
    최근 법관들의 막말 파동 때문에 사법부가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권> 이런 뉴스를 대할 때마다
    저도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도 요즘은 도를 넘은 것 같다.
    국민의 신뢰감을 깨트리는 행위라는 사실을 법관들이 자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부터 수행해야 한다.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늘 좋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인> 인간적 수양의 문제도 있지만,
    법관들의 사상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전교조를 비롯한 시국사건 판결이나 <우리법연구회> 논란 등
    일부 법관들이 이념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 사법부가
    국가의 정체성과 법통을 지켜낼 수 있을지 염려된다.

    <권> 그 점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전에 비해 법관 수가 크게 늘다 보니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사법부의 주류는
    여전히 사상적 측면에서 건전하다고 확신한다.
    후배 법관들에게 공자의 말씀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고 되돌아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
    법관 임용에 앞서
    인간적 소양 외에 사상적 측면도
    검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을 심판해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검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 기법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인> 독일의 제도를 참고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독일은 법관 임용에 앞서
    [나치-공산주의-전체주의]와 관련된
    과거의 행적이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이력까지 검증한다.

    <권> 대표님 조언을 듣다보니
    우리도 바로 법관 임용을 하지 말고, 

    검사와 변호사로 10여년간 활동을 한 뒤

    임용 대상자의 과거 언행을 검증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 헌법재판관 시절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 과정에서
    편파 시비에 휘말린 일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권> 피고(노무현 전 대통령)측 지지자들이
    재판을 편파적으로 진행한다고 비난하면서
    인터넷에 저를 비하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올라온 적이 있다.

    사실이 아닌데
    오해가 사실처럼 퍼지면서
    별별 욕을 다 들었고, 위협도 많이 받았다.

    원고의 신청이유 중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법관은 재판을 심리하면서
    원고나 피고측에 석명(釋明)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법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다.

    [석명권 행사]는
    민사나 형사재판에서도 자주 있는 일로 통상적인 것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인사들이
    원고쪽을 도와준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인터넷에 이와 관련된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긴 내용들이었는데,
    대부분 저를 욕하는 글들이었다.

    하도 내용이 심해
    정신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 ▲ 2004년 3월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관련 평의에 참석하는 권성 헌법재판관의 모습.ⓒ 연합뉴스
    ▲ 2004년 3월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관련 평의에 참석하는 권성 헌법재판관의 모습.ⓒ 연합뉴스


    <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정말 큰일을 많이 하셨다.
    앞으로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

    <권> (웃으면서)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판사들의 막말 문제를 언급하셨지만,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닦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저부터
    불완전한 인격을 완성된 인격으로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인> 새로 책을 내실 계획은 없나?

    <권> 쓰고 싶은 책이 한 권 있긴 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



    <인> 역대 정권이 [법치]를 만들어 놓지 않아 걱정이다.

    <권>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 관한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四世有勝(사세유승)은 非幸也(비행야) 數也(수야)]

     <순자>가 진시황 이전 진나라를 둘러보고
    돌아와 남긴 말인데 이런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대에 걸쳐 진나라가 부강해 진 것은 요행이 아니라 운명(필연)이다"

    당시 중국사람들은
    진나라를 싸움만 잘하는 미개한 원시집단정도로 폄하했다.

    그러나 <순자>는
    진나라가 4대 임금에 걸쳐 부국강병을 이룬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진나라가 강대국이 된 근본적인 이유를
    순자는 [법치]에서 찾고 있다.

    즉, [법치]가
    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법치]가 안 돼 있으면
    한때 운이 좋아 잘 나갈 수는 있어도 영원할 수는 없다.

    15세기 전반까지 중국의 문명 수준은 서양보다 높았다.
    그러나 그 뒤 중국은 서양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서양이 중국을 앞설 수 있었던 이유도 [법치]에 있다.

    한때 전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이 힘을 잃은 것도
    [법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스페인의 뒤를 이어 패권을 잡은 영국은 [법치]를 통해 힘을 길렀다.

    권력자라고 봐주고 눈치를 보면
    결코 [법치]를 할 수 없다.

    우리도 강국이 되기 위해선
    엄정한 [법치]를 실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