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國民에게 희망을 준 李承晩의 '북진(北進)통일론'

    韓民族이 경험한 위대한 초인(超人)

    金泌材 
        
          

  • 6.25전쟁 중 국군이 평양에 입성한 1950년 10월31일 평양시민환영대회의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국군 장병들의 모습/사진출처:국가기록원
     
    “이북동포 여러분 나와 같이 결심합시다. 공산군이 어디서 들어오든지 그것이 소련이건 중공이건 들어오려면 들어오너라. 우리는 죽기로 싸워서 물리치며 이 땅에서는 발붙이고 살지 못할 것을 세계에 선언합시다.” (이승만, 1950년 10월29일 평양 연설)

    “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을 오늘에 와서 검토해 보면 대단히 뛰어난 정치기술의 하나로 북한의 중·소 군사동맹과 같은 한·미사호방위조약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철승 前 신민당 총재, 1988년 <신동아> 10월호 인터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제주도에서는 ‘제주4.3사건’(자유진영에서는 4.3폭동으로 규정)이 발생했고 5.10 총선거 방해를 비롯, 전국적으로 남로당의 무력 투쟁이 빈번히 발생하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정부수립 2개월 만에 국군 14연대는 여수와 순천에서 반란(여순반란사건)을 일으켰고, 대구에서는 국군6연대 일부 장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오대산·태백산·지리산 등 산악지역에서는 북한에서 내려온 인민유격대가 무력투쟁의 거점을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내전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전 국토가 공산화될 수도 있다는 위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이 대두된 것이다.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편승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말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 어째서 북진통일론이라는 당시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을까?

    미군정으로부터 이어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는 공산당의 갖가지 폭력도발로 민심이 매우 흉흉했고, 경제적인 핍박까지 겹쳐 국민은 도탄에서 벗어날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참담한 상항이었다.

    해방 후 당시 한국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적자재정과 통화증발, 인플레이션으로 혼란스러웠는데 당시 물가 동향은 1946년 37%, 1947년 81.8%, 1948년 62.9%, 1949년 36.8%, 1950년 56.2%로 치솟았다.

    또 여순바란사건으로 국방과 치안에 막대한 경비가 지출(예산의 24.5%~40% 차지)됐으며 국고 수입의 부재로 정부재정의 외부차입 의존도가 49.5%에 달했다.

    이처럼 암울한 시기에 등장한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은 국민에게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고, 대공(對共)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던 군경에게는 더 없이 큰 위로와 애국심을 고취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북한의 공산학정을 버리고 남하한 수많은 실향민들과 반공(反共) 청년들에게는 소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용기를 심어준 ‘북진통일론’은 그의 호전적인 성품에서 나왔거나 혹은 국민을 기만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국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향용이라 볼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폭동·방화·살상 등을 일삼으며 남한을 적화시키려 했다. 이 때 북진론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적화폭동을 자제케 하는 한편 자유진영으로 전향케 하는 효력을 발휘했다.

    둘째, 국민홍보용이라 볼 수 있다. 당시 국민생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군의 사기도 떨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반공(反共)청년들에게는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진통일의 기치는 매우 큰 대국민 홍보로 자신감과 용기를 일깨워주었다.

    셋째, 외교용이라 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고 사실 철수했다. 그렇다면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무기가 지원되어야 했고, 중국과 소련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심어주는 심리전이 되기도 했다. (이종오, 「변질되어가는 한국 현대사의 실상, 1989 인용)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은 호전성(好戰性)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교·정치·사회·국방 등 다양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에 대해 반공(反共)보수 성향의 정창인(前 육사교수) 자유통일포럼 대표는 최근 칼럼을 통해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택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한 상태에서 전(全)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남한만이라도 자유 민주국가를 수립하고 때를 기다려 북한을 해방하고 통일하는 전략을 택하는 수밖에 달리 선택이 없었다. 따라서 국부 이승만 대통령은 분단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을 운명에서 반쪽을 구해낸 영웅으로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정 대표는 이어 “우리는 북한으로 자유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북한동포를 최악의 독재자로부터 해방하고 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이 주도해 통일을 달성하여야 한다”면서 “이것이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이다. 우리는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반드시 북진통일, 자유통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8월23일자 보도)

    조갑제닷컴 김필재/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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