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레드』 작품 소개서

     1. 이야기 소재 (Motive)

    ⇨ 고등학교 때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의 단편소설 『레드』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어린 마음에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소설의 소재를 찾던 중 우연히 그 『레드』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레드(Red,빨강)>의 함축된 상징적 의미와 심리적인 속성을 찾았다. 그리고 빨강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감정인 ‘피, 불, 생명, 힘, 정열, 사랑, 흥분, 강렬함, 자극, 욕망, 화, 죄, 폭력, 공포, 전쟁, 북한’ 등을 하나의 소설구성으로 묶으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했다. 소설 『레드』는 바로 그 모든 이미지와 감정의 통합체이다.

    2. 스토리 구성(Plot)·시놉시스(Synopsis)

    ※ 주제 (수정)
    ⇨ 북한 최고 권력층은 2천만 북한주민의 기아와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비밀통치자금과 61조의 가치가 있는 금을 비롯해 막대한 부존자원(賦存資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자금을 북한주민들이 아니라, 오로지 극소수 최고 권력층의 독재정권을 위해 사용한다. 이는 국가권력이 자국민을 상대로 저지르는 지구촌 최악의 ‘인위적 기근에 의한 학살(홀로도모르,Holodomor)’이다.

    ※ 기획의도
    ⇨ 통일이라는 염원 때문에 우리 국민들 중에는 북한 권력층의 악행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고, 무심하며, 미화하는 경향까지 있다. 하지만 통일은 이상이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특히 독재정권의 노동개미로 전락한 북한주민의 기아와 인권은 타협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영구동토의 북한주민에게 희망의 빛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 집필의도
    ⇨ 북한 내부의 문제를 소재로 한 소설은 서점에서 선뜻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소설은 문명세계에서 떨어져나가 ‘갈라파고스(Galapagos)’가 된 북한을 본격적으로 문학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설로, 일반인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차후 더욱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 창작방법
    ⇨ 소설 『레드』는 픽션의 그늘 아래서 창작이라는 미명아래 작가 임의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훼손해 대중의 눈을 멀게 하는 비논리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소설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蓋然性)과 현실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순간도 눈에서 놓치지 않고 논리와 사실에 근거해 서술했다. 또한 창작방법은 <구조론(構造論)>에 입각한 서술이 아니라, 시나리오작법 중 하나로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마인드 매핑(Mind mapping)>이라는 창작방법을 활용해 유연하게 서술했다. 때문에 공식이나 틀에 짜맞춘 듯 도식적(圖式的)이거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가 아니라, 끝까지 반전의 연속이며 입체적인 나선형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전체줄거리
    ⇨ 이 소설은 북한 최고 권력층의 사라진 비밀통치자금을 둘러싼 국정원과 국가비밀국 요원, 그리고 북한의 친정부세력(국가안전보위부)과 반정부세력(정찰총국) 간의 권력암투를 기본줄거리로 하는 <북한첩보액션스릴러물>이다. 하지만 북한의 극악한 인권상황과 기아, 그리고 탐욕스런 권력이 한 소녀의 삶을 처참하게 유린하는 잔인하며 안타까운 이야기를 영화처럼 그렸다.

  • 3. 주요 캐릭터 또는 등장인물 소개 (이미지 캐스팅)

    ▶ 나현우 -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고, 그 이상을 행동하라!’
    ⇨ ‘살아있는 유령’으로 일명 ‘키스(KSS:Korea Secret Service)'로 알려진 ’국가비밀국‘의 블랙옵스(Black Ops) 팀인 Task Force 333 소속의 최정예 비밀요원.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현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 기질, 그리고 두둑한 배짱을 가짐. 현실 속에선 해외유명브랜드의 기술을 도입하여 남성의류를 제조·판매하는 <나반(那般,NABAN)>의 감사팀장. 중문과 출신. 미술, 건축, 문학은 물론 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높으며, 강한 자기 신념을 가진 남자. 경찰이던 아버지가 은행강도의 칼에 찔려 순직한 아픈 과거사가 있음.

  • ▶ 최정원 - ‘쉬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 국정원 해외파트산하 특수작전팀 팀장. 가명 유상준. 경영학과 출신. 높은 코에 깊은 눈을 가짐. 섬세하며 생각이 깊고, 인간적인 인물로 똑똑하고 지적인 외모를 가짐.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넘치며 사자의 가슴과 여우의 머리, 독수리의 눈을 가진 인물. 또한 놀라운 정신력과 숭고한 신념이 이성적 사고판단을 뛰어넘는 인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설득력이 아주 강함하고 중독성 있음. 또한 조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리더십과 동물적인 운동신경, 냉철한 판단력을 소유.


  • ▶ 윤지원 - ‘여신인가 악마인가. 세상의 모든 판타지는 그녀로부터 시작된다.’
    ⇨ 국가안전보위부 5국(구35호실) 소속의 공작원(직파간첩). 꽃배달전문 화원운영. 윤지수와 일난성 쌍둥이(언니). 북한의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대표적인 영재양성 고등중학교인 평양 제1고등중학교에서 1등만 하던 수재. 명석한 두뇌와 빼어난 미모를 소유. 중국에서 대외무역과 외화벌이사업을 총괄하던 아버지 윤일현이 간첩혐의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히자 윤지원의 운명도 바뀜. 또한 엄마 성혜경과 윤지수가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남한으로 망명한 사실을 알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낌. 그리고 복수를 다짐.


  • ▶ 피오기 ⇨ ‘영혼이 죽은 자’
    ⇨ 공작조의 실질적인 조장(부조장).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최우수 졸업생. 화원의 화환제작기사. 국방위원회 정찰총국 1국(작전국) 소속의 요인암살 전문 전투원(무장간첩). 평소의 시선과 표정에 다혈질의 호전적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남. 사악·잔인·잔혹·표독·야만적이며, 예측불가능하고, 파괴적인 성격. 이력을 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김정남(국방위원회가 지원)을 추종하는 세력. 온몸에 흉터가 많음. 윤지원을 짝사랑. 윤지원의 마음이 나현우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고 강한 질투를 느낌.


  • ▶ 리홍화 - “꽃은 저항하고, 유혹하며 계략을 꾸미고, 숙명과 맞선다!”
    ⇨ 가명 곽세희. 국방위원회 정찰총국 2국(정찰국) 소속의 여성정찰요원(일명 ‘모란꽃소대’) 출신으로 요인암살 전문 전투원(무장간첩). 피오기의 그림자. 아마조네스형으로 도발적이고, 섹시한 일급 킬러. 아버지 리명수가 북한 내 반정부세력의 수장임.

  •           작가 한서화

    ▶ 성 명 : 한서화 ( 韓瑞花, 본명 : 한상욱 )
    ▶ 약 력 : 청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사) 한국 문인협회 회원
    ▶ 수 상 : 제3회 청주방송(CJB) TV백일장 장원
                 
    제1회 빈여백 동인문학상
                 
    제8회 토지문학제 하동소재문학상

  • 작가의 말

    앞서 소개했듯 프로필은 일천(日淺)합니다. 중앙지의 신춘문예 출신도, 그렇다고 그럴듯한 대학교수 직함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지방 공모전에 당선되고, 별 볼일 없는 문예지로 등단한 게 프로필의 전부입니다.

    사실 소위 말하는 스펙(Spec)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현실적인 벽입니다. 그리고 갖지 못한 자에겐 특별 인센티브(Incentive)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펙이 첫인상과 다름없기에 신문사에서 요구하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스펙이 창작을 향한 불타는 열정과 비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스펙이 아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10년을 하루처럼 투자한 작가로서의 열정과 그 열정이 펼쳐나갈 내일의 비전을 순수한 눈으로 보아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실 스펙이 없는 무명의 신인작가도 충분한 노력과 열정만 있다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이번에 소설 『레드』를 출간한 것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높은 벽이 있지만, 때론 그 벽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높이를 낮추어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출판사가 연재문제를 협의했을 때 감히 선뜻 동의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오늘의 열정과 내일의 비전이 바로 현재 제가 가진 능력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진정한 무한가치(無限價値)의 스펙입니다. 이번에 이런 저의 생각과 바람이 다시 한 번 입증되는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구나 2005년 출범한 <뉴데일리(New daily)>는 뉴라이트 노선을 표방하며 슬로건이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체제가 보장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즉, 형식적인 스펙이 아니라, 열정과 노력, 그리고 자기개발이 그 체제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뉴데일리>만큼은 저의 이런 순수한 생각과 열정, 그리고 노력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뉴데일리>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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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제1회>
    한서화 장편소설/ 북한 첩보 액션스릴러


  • 발행일 | 2012년 9월 10일
    지은이 | 한서화
    펴낸이 | 한기홍
    펴낸곳 | 도서출판 시대정신
    110-045 서울시 종로구 체부동 18-5번지 1층
    전화 | 02-732-8650 팩스 | 02-732-8651
    http://www.zeitgeist.co.kr
    값 15,000원

     
    <1> 4월의 마침표

    ‘비어 고글 이펙트(Beer goggles effect)’.
    알코올이 뇌를 흥분시켜 이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종의 착시현상.
    봄의 향기엔 그런 비어고글이펙트가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길가에 떨어진 맑은 햇살 한 줌을 매단 작은 꽃망울은 언 입을 녹여 탄성을 만든다. 봄의 부활은 그렇게 옅은 초록으로 겨울의 마법을 깨트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봄날, 서울 외곽의 2층짜리 전원주택에선 집주인이 무거웠던 피부 톤까지 환하게 만드는 베이지색 원피스로 자신만의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에 작은 사파이어가 총총히 박힌 이어링을 하는 것으로 봄의 날개도 달았다. 이제 여인은 장미와 라벤더향으로 조향한 ‘플로랄 타입(Floral type)’의 향수를 옷자락에 살짝 뿌렸다. 그 순간 창조신화에서나 발견되는 새로운 질서가 여인의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오마니(어머니). 이거 가져가야지!”
    “아, 맞다!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다니까.”

    오늘 아침의 현관 앞 계단 밑은 어제와 분명 달랐다.
    세상이 잠든 동안 어둠이 홀로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웠다. 하지만 성혜경은 그 해맑은 미소에 눈길 한 번 제대로 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얼마나 서둘렀으면 오늘 스타일링의 핵심포인트로 정해둔 스카프도 그만 깜박했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아둔 스카프를 황급히 챙겨 뛰어나온 건 지수였다. 그제야 지수의 허리 뒤에 숨어 고슴도치처럼 털을 바짝 세우고 살포시 쳐다보는 여린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성혜경은 너무 귀여워 얼른 그 미소 한 자락을 마음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얇은 윗입술 끝에도 살짝 묻혔다.

    “지수야, 꽃 배달 들어오면 잘 적어놓고, 주문 빼먹지 않도록 잘 체크해. 알았지?”
    “오마니. 지금 누가 누구보고 체크하라는 거야.”
    “계집애는 서두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참! 생활광고지에 배달기사하고, 꽃꽂이 강사 모집광고 낸 거 너도 알지?”
    “응.”
    “어제 전화 몇 통 왔었거든. 혹시 모르니까 이따 전화 오면 다음에 다시 전화하라고 해. 지난번처럼 괜히 툴툴거리지 말고 정중하게.”
    “급여가 약하다면서 먼저 시비를 걸잖아.”
    “그래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출발이나 하셔. 이러다 정말 늦을지도 몰라!”
    “듣기 싫으니까 등 떠밀기는. 아참! 그리고 제발 그 핑크색 후드티랑 검정색 트레이닝팬츠 좀 그만 입어라.”
    “왜? 데려갈 남자 없을까봐?”
    “어쩜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쏙 뽑아 할까.”
    “으이구! 정말 못 말린다니까. 잘 나가다 막판에 꼭 한번 사람 속을 밑바닥까지 확 뒤집는다니까.”
    “계집애. 그렇다고 금방 입이 삐죽 튀어나오기는. 나 정말 간다.”
    “헉! 오마니 내비게이션 찍고 가야지!”
    “아, 맞다!”
    “으이구! 저 건망증.”

    메마른 들판을 가득 채운 들꽃 같은 웃음소리가 골목을 따라 빠르게 번져갔다. 그리고 이내 큰 도로에 접어든 성혜경의 차가 시야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지수가 홀로 남겨진 골목길엔 눈부신 햇살이 가득했다. 심지어 어디선가 때 이른 팝콘냄새까지도 나는 것 같았다. 지수는 코를 벌름거리며 여기저기 시선을 두며 네발 달린 짐승처럼 킁킁거렸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팝콘냄새로 흥건했기 때문이다.

    순간접착제로 고정시킨 듯 딱딱한 운전자세는 의식을 극도로 단순화시킨다. 그래서 장시간의 여행은 누구나 피곤하다. 성혜경이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맨 처음 반갑게 맞이한 건 청주의 가로수길이었다. 플라타너스가 어깨를 맞대고 촘촘히 늘어선 ‘영상의 숲’이었다. 숲은 성혜경이 지나갈 때마다 출렁거리며 특유의 습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출렁거림 속에서 떨어지는 신록(新綠)의 푸른 결정체들이 성혜경을 환상으로 이끌었다. 성혜경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일상을 벗어나는 환영을 보았다. 그야말로 조용하고, 평범한 삶이 새롭고, 자유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복순이네 집앞을 지날 때 이 가슴 설레어 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 휘휘휘~. 호호호~. 휘휘호호호. 휘휘휘~. 호호호~. 휘휘호호호.”

    갑자기 성혜경의 눈가가 알 수 없는 물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른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스치는 바람에 물기를 하나씩 날려버렸다. 성혜경에게 있어 과거의 기억은 순간순간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드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었다. 유리조각은 처음 맞을 때보다 몸을 찢고 빠져나갈 때 그 예리함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물론 몸에 남아 매순간 감각을 짓밟을 때는 그 아픔이 상상을 초월했다.

    “여보. 미안해요. 지원아.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기다려줘. 내가 꼭 갈게. 꼭 안아줄게.”
    “이거 어쩌지. 공군사관학교까지 가려면 적어도 30분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가로수길이 그 끝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어느덧 청주 도심의 외곽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차량들이 성혜경을 에워싸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더구나 덩치 큰 덤프트럭이 아까부터 계속 뒤따라오며 성혜경의 신경을 자극했다. 성혜경은 라디오볼륨을 높였다. 순간 공군사관학교 입구까지 3km를 남겨두었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히유~! 그나마 너무 늦지는 않겠구나!”

    “빵! 빵! 빵!”
    성혜경이 안도하는 눈빛으로 이마의 땀을 막 닦으려는 순간이었다.
    맞은편에서 날아든 커다란 음폭의 경적소리가 의식을 찢을 듯 할퀴었다. 동시에 안전벨트가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그녀를 굶주린 늑대처럼 성난 이빨로 파먹었다. 다시 찰나의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방향에서 그 어떤 무기보다도 날카로운 금속조각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쾅! 쾅! 끼이익! 쾅!”

    결국 성혜경의 차는 도로에서 밀려나 가로수 사이에 모래자루처럼 집어 던져졌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뒤따라오던 덤프트럭이 다시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은 차의 신경과 관절을 모두 끊었다. 이제 성혜경은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갈기갈기 해부된 채 심장만 뛰었다.

    “성혜경 동무.”
    “!”
    성혜경은 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더욱 억세게 움켜잡았다. 하지만 통제가 가능한 건 파리하게 떨리는 눈썹과 부릅뜬 눈뿐이었다. 제멋대로 꺾인 팔과 다리는 이미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침착하고, 당당하던 성혜경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마치 현실의 원통함과 운명의 불쌍함이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힌 피카소의 추상화 같았다.

    “조국의 반역자 성혜경 동무. 그렇게 살려고 ‘아글타글(온 힘을 기울여)’ 발버둥치지 마시오.”
    “으으으.”
    “당과 조국을 배신하고 ‘혈붙이(피붙이)’까지 버렸을 땐 동무도 이만한 처벌쯤은 충분히 예상했을 거 아니오. 아니 그렇소?”
    “…….”
    “그래, 일신의 향락과 안일을 찾아 남조선으로 뺑소니쳐 보니 어떻소. 그렇게 좋았소?”
    “동무. 난 하루도 북조선을…….”
    “그렇겠지. 아무튼 민족의 반역자, 조국의 배신자를 이 정도로 가볍게 처분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시오.”
    “동무. 나는 지금 죽을 수…….”
    “이 반동 간나! 도통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지금 지옥에서는 당(黨)과 인민의 반역자가 동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이제 내 말 알겠소?”
    “헉! 그럼 그이가…….”
    “그렇소. 이제 결단이 서시오?”
    “불. 쌍. 한. 사. 람.”

    사내는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잔인했다. 아니, 잔인함에 대한 감각도, 죄의식도 없었다.
    하지만 햇살은 어제의 그것처럼 따가웠다. 그리고 그 햇살로 대지를 골고루 익히려는지 바람은 연신 제 몸을 뒤집으며 지나갔다.
    이제 바람을 가득 머금은 스카프가 성혜경의 목에 매달린 채 무녀(巫女)의 하얀 무명수건처럼 흩날렸다. 그리고 그 흩날림은 무음(無音)으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성혜경의 영혼을 구슬프게 불러냈다.
    눈을 감지도 못한 성혜경의 고개가 힘없이 한쪽으로 떨어졌다.
    성혜경은 원(怨)과 한(恨)을 안고 눈물자국을 따라 영혼의 세계로 그렇게 들어갔다. 성혜경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자 다시 맑은 바람이 불어 세상에 남은 그녀의 흔적을 조용히 지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