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탈린 딸의 죽음. 스탈린 체제를 다시 생각해보다

     “유로파 유로파”는 솔로몬 페렐이란 유태인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자기의 정체를 숨긴 채 히틀러소년단에 가입하고 나치독일 군대에서 일했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이다. 페렐은 아직도 살아있다.

    이 영화에서 스탈린의 친아들이 독일군의 포로로 잡히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이었다.
    천성이 냉혹한 스탈린은 아들에게도 애정이 없었다. 아들이 포로가 된 것에도 무관심했다. 그는 천만 명이 넘는 자국민을 학살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냉혈한이었다.
    레닌도 유언에서 스탈린의 잔인한 성격을 우려했었다.

    그는 원래 주가슈빌리(Dzhugashvili)라는 이름을 가진 그루지아(현 조지아) 사람으로 강철을 뜻하는 ‘스탈린’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의 공포시대는 무작위적인 국가주도의 테러가 난무했다. 테러 대상과 범위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했기에 더 무서웠다. 소비에트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와 스탈린의 개인적 잔인함이 결합돼 생겨난 세계사적 비극이었다.

    니키타 미할코프(Mikhalkov) 감독·주연의 “위선의 태양”(원제 "태양에 입은 화상"  1994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일상 속에 내재(內在)된 스탈린 시대의 공포를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한 걸작이다.

    그러나 이런 스탈린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인 유일한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외동딸 스베틀라나(Svetlana)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부인 나데즈다가 의문의 자살을 하고, 유태인 영화감독 카플레르는 스베틀라나와 사랑에 빠진 죄로 스탈린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히틀러보다는 훨씬 덜한 수준이었지만 스탈린도 유태인을 혐오하고 탄압했다. 볼셰비키혁명 지도자들의 대다수가 유태인이었기에, 그는 권력투쟁과정에서 유태인 정적들을 참혹하게 제거했다. 볼셰비키 혁명의 리더이자 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츠키와 코민테른 의장을 역임한 지노비에프가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아무리 스탈린이 사랑했어도 스베틀라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녀는 이름도 자살한 엄마의 성인 알릴루예바(Alliluyeva)로 개명하고, 1967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스탈린의 딸 미국으로 망명” 냉전당시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녀는 이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펴내 아버지와 소비에트 체제를 비난했다. 1984년 다시 조국인 소련으로 돌아갔지만 정착에 실패하고 2년 만에 소련을 떠나 유랑하면서 살아갔다. 그런 그녀가 며칠 전 세인들의 망각 속에 미국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돌이켜보면, 겉보기엔 멋있어도 근본적으로 치명적 결함을 가진 공산체제 중에서도 최악의 버전이 스탈린체제였다. 이 체제에 대한 충성에서 끝까지 헤어나지 못 한 이들도 있었고, 현실을 자각하고 뛰쳐나온 이들도 있었다. 스탈린주의자였다가 공산주의 비판가가 된 “한낮의 어둠”의 작가 아서 쾨슬러(Koestler)가 후자의 대표격이다. 더욱이 자신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스탈린체제에 대한 존경과 환상을 가진 사르트르나 조지 버나드 쇼같은 “쓸모있는 얼간이들”(레닌의 표현)도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스탈린체제의 변용(變容)이 나타났다.
    모택동, 폴 포트, 김일성-김정일은 스탈린처럼 타고나길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통치가 못지않게 참혹했던 것을 보면 개인의 성격보다 체제의 성격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모택동(마오)체제를 보자. 대약진(大躍進)운동만 해도 무려 4500여만명을 희생시켰다.(디쾨터 "마오의 대기근" 2011). 그런데 이런 체제를 이상사회로 예찬한 리영희같은 “얼간이”들도 많았다. 그에게 마오체제는 상상 속에서 그려낸 허구의 세계였을 뿐이다.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정권은 자국민의 무려 4분의 1을 학살했다.

    한반도에선 스탈린, 마오, 그리고 전통왕조체제와 일본 천황제의 기묘한 혼합체가 북쪽에 존재한다.
    남쪽엔 신영복 박성준 등이 가담했던 통혁당이나, 자신도 인정했듯이 1973년 북한노동당에 비밀입당한 송두율같은 북한체제에 대한 광신자들은 물론이고, 북한체제에 아부·기생하는 윤이상 류의 “얼간이”들도 넘쳐났다.

    남한에 존재했던 권위주의(authoritarian)체제와 북한식 전체주의(totalitarian)독재도 구별 못하는 “헛똑똑이” 얼간이 아류들도 “지식인”이라는 허울을 쓰고 살아간다. 그게 멋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NL파 인민민주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건강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미미한 소수를 이루고 있기에 한국좌파의 앞날은 어둡다.

    스탈린 딸의 사망으로 인해 그녀의 굴곡진 인생을 돌아보면서 전 세계적 스탈린체제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녀를 보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가문의 “아이들”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들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그들 중 스베틀라나와 같은 “이탈자”는 생겨나지 않을 것인가. (동아일보, 12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