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 사설 '대통령 지시라고 위법이 합법 되는 것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386 측근 안희정씨의 지난해 10월 대북 비선 접촉을 자신이 지시했다며 “북한과의 비공식대화 통로를 탐색하는 것은 대통령의 당연한 직무행위여서 정치적·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사전신고 대상 자체가 아니다”고도 했다. 대통령은 “(이번 건은) 아무 일도 (공개할 게) 없기 때문에 투명성 문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행 남북관계발전법에는 ‘대북 특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이 정권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한 뒤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하겠다며 만들었다. 안씨는 특사로 임명되지 않았다. 따라서 안씨가 대북접촉에 나서려면 남북교류협력법상에 규정된 사전 또는 사후 서면 신고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에 사전 신고 예외 조항을 만들었지만 거기에도 ‘대통령이 지시해서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들어있지 않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안씨가 미리 통일부장관과 상의했으니 신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서면신고 대신 통일부장관에게 귀띔만 하면 된다는 규정은 없다. 결국 대통령 지시를 받은 안희정씨가 북한측 비선조직과 접촉한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

    대통령이 지시했다 해서 위법이 합법이 되는 게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인치(人治)이지 법치(法治)라고 할 수 없다. 헌법학에서도 초법적인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게 통설이다. 대법원은 2004년 대북송금사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지만 대북송금 행위는 실정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법심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대북문제에서도 절차적 적법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탄핵심판때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깎아내린 데 대해 “법치와 준법의 상징인 대통령이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삼는 것은 헌법수호 의무의 위반”이라고 했었다. 지금 대통령의 행동 역시 ‘법치와 준법의 상징’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안씨가 북측과 몰래 만나) 결정된 게 없으니 투명성도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도 자기모순이다. 불과 넉 달 전에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은 국민이 남북대화를 투명하게 하라고 요구해서”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