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도서관의 무료복사 규정을 유료로 바꾼 계기됐다고 자화자찬한 박원순 변호사
  • '공유지의 비극', '아너코드', 박원순

    류성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미국 UCSB 생물학과 가렛 하딘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지에서 발표되었고, 경제학을 포함한 많은 분야의 논문과 저서에서 즐겨 인용할 만큼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100 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는 제한된 공유지에서, 100 마리 이상의 양을 기르면 결국 목초지는 과도하게 풀이 뜯겨 재생산이 되지 못하고 점차로 황폐해져 간다는 것이다. 축산업자들은 너도 나도 공유지를 이용할 것이고, 자신의 부담이 들지 않는 공짜이기 때문에, 공유지에 양을 계속 풀어 놓기만 하지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풀이 없어진 초지에는 양을 기를 수 없어 축산업자들 전체가 손해를 보게 된다. 결국 개인들의 이익 추구에 의해 전체의 이익이 파괴되어 공멸을 자초한다는 개념이다. (위키백과 '공유지의 비극')

    복지정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중 하나가 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공동체를 위해 공유되어야 할 복지재원은 구성원들이 '공짜'라는 심리로 마구 쓰기 시작하면 금새 고갈되고, 야심차게 시작한 복지정책은 여기저기 제약이 가해지면서 누더기가 된다.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시장선거를 보면서 양쪽 후보를 더 알고 싶어서 여러 정보를 살펴보다가 이 '공유지의 비극'을 보여주는 인상깊은 글을 마주치게 되었다. 시장후보로 나선 박원순 후보가 유학시절의 경험담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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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순닷컴 캡쳐
    ▲ ⓒ원순닷컴 캡쳐

    미국의 풍요는 나에 대한 대우에서도 드러났다. 한 방에 여러 사람이 쓰기는 하였지만 객원연구원에 불과한 나에게도 책상이 하나 배당되었다. 비밀번호를 하나 주더니 복사기에 그 번호를 누르면 마음대로 복사할 수 있고 공짜라고 하였다. 완전히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날부터 바로 옆에 있는 법률도서관, 중앙도서과, 신학도서관 등을 다니며 하루에도 몇십 권씩 복사를 해댔다. 복사를 몇 시간만 계속하면 기관지가 고장날 정도로 몸에 해로운 중노동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낮에는 사람들이 오가니 아예 저녁에 출근하여 밤새 복사를 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자는 올빼미 생활을 했다. 1992년 보스톤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눈태풍('블리자드')가 몰아쳐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은 낮에도 복사기는 내 차지였다. 그런 날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일기예보에 폭설이 내린다면 즐거워하곤 했다. 드디어 너무 많은 분량을 복사한다고 느꼈는지 법대 당국에서 1인당 월 2천 장까지만 공짜, 나머지는 장당 2센트는 내도록 조치하였다. 나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쌌다.  (출처: 박원순 공식 홈페이지  wonsoon.com/3380 )

    수십년간 특별한 규정 없이도 예산범위내에서 적절히 소모되기 때문에 부드럽고 명예롭게 유지되어 왔던 하버드 도서관의 무료복사규정이 유료복사로 바뀐 것은 "그래도 쌌다" 하고 단순히 치부할 해프닝이 아니다. 하바드 도서관 공동체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아너 코드(Honor Code)' 하나가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 시민운동을 한다는 분이 유학시절의 무용담이랍시고 자랑스럽게 풀어놓을 만한 얘기가 아니고 진정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식대에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다. 대부분 끼리끼리 모여서 회사 주변의 식당들에서 알아서 먹고, 그중 한 명이 몰아서 내고 자기 이름을 적은 영수증을 청구용 서랍에 넣어두면 다음 달 월급를 받을 때 그 사람 통장으로 지급되는 시스템이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야식이든, 얼마짜리를 먹든, 몇명이서 먹든, 어디서 먹든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양심껏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만큼 먹고 청구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은 공동체와 구성원간의 믿음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식사비영수증을 지출한다면? 혼자서 비싼 밥을 먹고는 여러명이 함께 먹은 것처럼 제출한다면?  구성원 중 한명이 시스템을 속이려고 들자면 쉽게 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자선회사가 아니고 소위 사회적 기업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매달 식대로 지출되는 금액이 직원수대비  적정액수를 넘어가는 순간, 하버드 도서관 공동체에서처럼 이 '아너 코드' 기반 식대 지급 시스템은 깨질 것이다. 다행히 모두가 이 '아너 코드'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고, 쉽게 망가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종종 혼자서 식사하고 영수증을 깜빡 잊고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 권리만 따지자면 매달 월정액의 고정 식대를 제공해주는 대부분 회사의 시스템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불리하지만, 그래도 난 이 '아너 코드' 시스템이 더 마음에 든다. 훨씬 더.

    하버드 도서관 공동체의 유서깊은 '아너 코드'를 깨뜨리고, 그걸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적고 있는 박원순씨가 아직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그런 분을 시민운동의 지도자로 받들어 온 시민단체들이 모두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 이해가 된다. 당장 내 옆자리의 동료로 복사광 박원순씨 같은 이가 들어와서 이런 저런 '아너 코드'들이 다 폐기되고 복잡한 규정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상상만 해도…. 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