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행·협박을 통한 부부간의 강제적 성관계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항소심 법원으로는 최초로 강간죄 성립을 인정했다.

    2009년 부산지법에서 처음으로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지만 이후 피고인이 자살함으로써 부산고법에서는 실체적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공소기각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에 대해 추후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질 지 주목된다.

    25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이 법원 형사9부(최상열 부장판사)는 흉기로 아내를 찌르고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로 기소된 A(40)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혼인관계는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법률상 부부 사이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침해여부는 제3자에 대한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며 "배우자의 의사에 어긋나는 성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강간죄의 성립은 혼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형법에서는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지 않은 이상 법률상 부인이 모든 경우에 당연히 강간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는 없다"며 부부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어 "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 등으로 반항을 억압해 강제로 성관계할 권리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그 같은 경우에는 (성관계에 관한) 부인의 승낙이 추인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 4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다투다 흉기로 찔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뒤, 더 때릴 듯이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1970년대 대법원이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부정한 이후 장기간 별거하는 등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 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는 강간죄 성립이 인정되지 않았다.

    2009년 부산지법이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에 `혼인 중인 부녀'가 제외된다고 볼 근거가 없고, 아내도 법이 보호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며 처음으로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았지만, 피고인의 자살로 2심에서 공소기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