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그제 미국 하원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 정부가 예비역을 포함해 370만 명인 병력을 2020년까지 200만 명 수준으로 줄이려는 데 대해 “북한군이 비슷한 규모로 줄이지 않는 한 신중히 고려(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병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서도 “전력(戰力)의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방개혁 2020’의 허점을 지적한 것으로, 한국 정부 사람들에게서는 들어 보기 어려운 ‘한국 걱정’이다.

    첨단 전자전에서도 지상군은 전력의 핵심이다. 북은 8만 명에 달하는 특수군을 보유하고, 250문의 장사정포와 지상군 병력의 60%를 휴전선 일대에 전진 배치해 놓고 있다. 핵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이다.

    더구나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한국이 단독행사하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제대로 증파될지도 불확실하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방한 중인 피터 브룩스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센터연구소장도 한 강연에서 “병력 감축과 군복무기간 단축이 미국은 물론이고 북한에도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벨 사령관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정치 군사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를 속여 온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북의 평화의지를 과신하지 말라는 충고다. 그는 또 “북핵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으면 2009년까지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해 핵무기 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핵이 방어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노무현 정권의 안이함을 비판했다.

    벨 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어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 그가 작심한 듯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노 정권은 장밋빛 자주(自主) 논리로 국민 안보의식을 둔화시키고, 이를 비판하면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 안보 장사 하지 말라”는 억지 주장으로 깔아뭉개려 한다. 벨 사령관도 ‘안보 장사’를 하고 있단 말인가. 안보의 뿌리를 흔들어 놓은 잘못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