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 사설 '미·북 관계정상화 회담을 보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미·북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이 열린 뉴욕에서 ‘스타’였다. 그가 체류한 5일 동안 마치 미국의 외교 촉각과 언론의 눈길이 김 부상 한 사람에게로 쏟아지는 듯했다. 미국 입국 과정과 일정, 경호도 국빈급 대우였다. 미국외교정책협회는 김 부상을 위한 비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셔먼 전 대북정책 조정관,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 이 자리에서 김 부상과 5시간을 함께 했다. 카트먼 전 KEDO 사무총장, 프리처드 대북 특사 등도 김 부상과 따로 만났다.

    미·북 회담은 북한 영변 원자로의 폐쇄와 그 다음 단계인 핵프로그램의 신고와 ‘불능화’도 논의했다. 미·북관계의 급진전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다음 단계는 미국이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빼는 것이다. 지금의 속도, 방향, 분위기라면 북한 희망대로 연락사무소 단계를 생략한 채 곧바로 미·북 수교로 이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양측은 평화체제를 논의할 기구를 만드는 문제도 논의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한·미·북의 정상이 한자리에 앉아 평화 협정 서명식을 갖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미·북 수교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거쳐 가야 할 단계다. 흥분할 것도 없고, 불안해 할 것도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미래가 희생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선 북핵문제의 본질은 한반도의 남북 7000만명 동포가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미국 역시 장기적으론 북한이 핵 보유국 대열에 끼어들어 핵 확산이 가속화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단기 대책은 북핵이 또 다른 불량 국가나 불량 집단에 넘어가 미국 국민이 핵 테러의 공포에 떠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뉴욕에서 벌어진 김계관 부상의 ‘원맨쇼’는 미국의 북핵 해법이 장기적·본질적 접근에서 단기적·대증요법 식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선 급한 불길을 잡고 불씨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제거해야겠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사태의 수렁에서 쉽게 발을 뺄 수 없는 처지이고, 이란의 핵 보유 시도를 막을 뾰족한 해법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북핵문제의 본질적 해결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으냐”는 미국 관리들의 발언은 이런 미국의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이런 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 대한민국 정권도 싫어할 턱이 없다. 오직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만 돌보는 사람 없이 내팽개쳐진 것이다. 미국이 각본·연출을 맡고 북한은 무대에서 주연 행세를 하고, 중국은 공동 제작에 참여해 일을 성사시킨 것이 김계관의 뉴욕 쇼다.

    바로 이때 대통령의 정무특보인 이해찬 전 총리가 평양에 가서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교환”한다고 한다. 이 특보가 평양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지 아니면 ‘이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것은 이 정권과 북한이 다음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지금까지 동일했고 앞으로도 동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북의 핵 포기가 진실이기를 그저 두 손 모아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