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이두아 변호사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불행하게도, 모두 날마다 새삼 깨닫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외부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늘 북한이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를 퍼줘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북한은 12월 대통령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비료와 쌀을 퍼 나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돈을 벌고 세금을 내기 위해 얼마나 피땀 흘려 일해야 하는지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투다.

    이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한국의 경제지원을 “결국 남는 장사”라며 미국의 ‘마셜플랜’에 비유했다. 대북지원이 퍼주기가 아니라 결국은 한국에 도움이 되는 투자라는 주장이었다. 마셜플랜은 미국이 2차대전 후 서유럽 16개국에 114억달러를 지원, 유럽 경제부흥의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큰 선(善)순환 효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되는 정책이다.

    노 대통령의 마셜플랜에 대한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 회의에서 그는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다른 안보상의 우려 요인을 제거한다면 북한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보상으로 노 당선자가 “북한판 마셜플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지금 북한은 핵개발을 하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대북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고집한다.

    ‘마셜플랜’의 정식 명칭은 ‘유럽 재건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었다. 이 계획을 주도한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1947년 6월에, 만약 유럽 국가들이 “협력적인 장기적 재건 계획(a cooperative, long-term rebuilding program)”을 마련한다면, 미국은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마셜플랜은 단기적 목적과 장기적 목적을 아울러 이루었으니, 서유럽 국가들은 공산주의 정권의 출현을 막았고, 산업 생산은 전쟁 전 수준보다 35% 높아졌으며, 서독은 민주주의 정치와 재건된 경제를 누리면서 소련 세력의 확장을 막는 보루가 되었다. 그리고 원조 자금의 집행을 맡았던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1961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발전적 변환을 했다.

    마셜플랜의 특질을 살피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마셜플랜은 미국의 우방 국가들에 대한 원조였다. 다음엔, 원조는 경제 재건의 의지가 있는 국가들에 제공되었다. 정권의 유지에만 급급한 독재자에게 제공된 것이 아니었다. 셋째, 원조 자금을 쓸 ‘유럽경제협력기구’를 먼저 설립하고, 모든 원조 자금은 그 기구를 통해서만 집행되었다. 넷째, 원조 자금의 집행을 미국이 철저하게 통제했고, 원조 자금의 집행 내역은 공개되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경제 개혁이나 개방을 할 의도가 없고, 오직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는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동안 우리가 북한에 제공한 원조는 막대했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기구적 틀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원조 자금의 집행을 통제할 길도 없다.

    6자회담 과정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이 2005년 한국의 ‘중대제안’을 거론하면서 전력지원을 한국이 맡으라고 요구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노 대통령의 로마 발언은 큰 전략적 실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대북 마셜플랜을 위해서는 비핵화와 국제개방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풀려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비핵화는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원조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 및 보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제공될 자금을 마셜플랜에 비긴 것은 적절치 못하다. 상황을 제대로 살펴야,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 그저 그럴 듯하다고 성공한 정책을 들먹이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판 마셜플랜’을 입안한 정책기획자들이나 노 대통령은 셰익스피어가 ‘헨리 8세’에게 남긴 말에서 적절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과오는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 그들의 덕성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