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2일 사설 <“김계관은 굉장히 진실한 사람”이라니>입니디.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일 위원장은 총명하고 지도자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독재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그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김정일은 정상적인 지도자’라는 것이었다. DJ는 김 위원장의 환심을 사 둬야 남북 정상회담도, 햇볕정책도 가능해지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이런 평가는 우리 사회의 대북 경계 태세를 무너뜨리는 ‘주술(呪術)’로 작용했다. ‘김정일도 이성적인 지도자인데 설마 동족을 향해 미사일이나 핵을 사용하겠느냐’는 환상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김정일 재평가’ 작업에 나서고, 재작년에 발간된 국방백서에서 주적(主敵) 개념이 삭제된 데서도 드러난다. 북에 대한 총체적인 무장해제였던 셈이다.

    그런 가운데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그제 불교방송에 출연해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는 굉장히 진실한 사람이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칭찬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매우 부적합한 언사다. 북측 대표단은 어떤 회담에서도 결정권이 없어 평양의 훈령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남북대화의 상식에 속한다. ‘전령(傳令)’에 불과한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이런 찬사를 보내는 것은 인사치레라고 해도 남북 양측 대화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살 만하다.

    ‘2·13 베이징 합의’는 북핵 폐기로 가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그마저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이미 10년 전에 쓸모가 없어진 영변 핵 시설 폐쇄의 대가로 중유 100만 t을 주겠다고 약속한 셈”이라고 말했다. 어제 나온 미국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도 “북한의 행동은 아직 변한 게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수준의 합의를 하고서도, 무엇이 그리 고마워서 협상 상대방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가. 우리 정부는 자존심도 없는가. DJ 정권에 이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저자세와 맹목적 민족공조 강조가 북에 대한 환상만 더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