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마저 피해간 제2차 연평해전 순국 병장 추모제“정신 못 차린 대한민국, 내 아들 누구 위해 죽었나?”
  • ▲ 제2연평해전 순국 장병 영정들.ⓒ뉴데일리
    ▲ 제2연평해전 순국 장병 영정들.ⓒ뉴데일리

    아들은 꿈결에 찾아왔다고 했다.
    “엄마, 나 왔어.”
    저만치에서 어두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들은 예비군복 차림이었다.
    엄마는 아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갔다. 하지만 아들은 자꾸 뒷걸음질 쳤다.
    “왜 그러고 있어? 어서 집으로 와.”
    “엄마, 나는 못 가.”
    “왜? 왜 못 오는데?”
    물러서며 애를 태우던 아들은 꿈결처럼 떠났다.

  • ▲ 고 박동혁 병장.ⓒ뉴데일리
    ▲ 고 박동혁 병장.ⓒ뉴데일리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25일 대전현충원 묘역. 전날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는 날씨 걱정을 했다.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내려오실래요? 날이 좋아야 할 텐데.”
    하늘이 뚫린 것 처럼 쏟아 부었다는 그 비가 잠시 주춤하는 오전 11시,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식이 열렸다. 대전해군부사관동지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영정들이 나란히 단 위에 모셔졌다.
    고 윤영하 소령, 고 한상국 중사, 고 조천형 중사, 고 황도현 중사, 고 서후원 중사, 그리고 아, 막내 고 박동혁 병장!
    이들은 지난 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에서 참수리 357정 함장과 승무원으로 서해 NL을 자신들의 목숨과 바꿔 사수했다.
    고 한상국 중사는 교전 수십일 만에 가라앉은 참수리 357정에서 방향타를 움켜쥔 채 발견됐다. 그리고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중상을 입은 고 박동혁 병장은 3개월 동안 병상에서 신음하다 그해 9월 20일 숨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이었어요. 말썽 한 번 부린 적 없었고. 해군 의무병에 지원했을 때도 걱정하는 엄마에게 ‘의무병은 배 안 타요’라고 안심시키던 아들이었어요.”
    부모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가?
    자식의 영정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자리에 돌아온 어머니 이경진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느 자식의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을까?
    하지만 아버지 박남준씨와 어머니 이경진씨가 겪어야 했던 박동혁 병장의 마지막 모습은 차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제2연평해전의 그날, 북한 684함이 아군 참수리 357정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던 10여 분, 박동혁은 피격당한 윤영하 정장과 이희완 부정장 등을 돌보느라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22포로 다가갔을 때 얼굴의 3분의 1이 없어진 황도현 하사가 보였다. 죽어서도 방아쇠를 놓지 않은 모습이었다.
    황 하사를 밖으로 끌어내는 순간 적탄 하나가 박동혁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허벅지를 움켜쥐고 일어났다. 그때 다시 적의 포탄 하나가 옆에서 터졌다.
    박동혁은 겨우 몸을 지탱하고 62포로 기어가 방아쇠를 당겼다. 적함으로 탄환이 날아갔다. 또 다시 적탄이 오른 팔을 때렸다. 너덜너덜한 오른 팔을 간신히 움직이며 사격을 계속했다. 62포 포신이 빨갛게 달궈졌다. 갈수록 혼미해지는 정신을 애써 추스르는 순간 '파파팍' 적탄이 온몸을 꿰뚫었다. 온몸이 누더기처럼 찢겼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국군수도병원 병상에서 만난 동혁이는 처참했다. 베드를 둘러싼 링거 병이 22개. 병원에서 빼낸 포탄 파편만 100여 개였다. 그렇게 84일을 보냈다.

    동혁이가 떠나고 추석 다음날 화장(火葬)을 했다. 그때 유골 상자와 함께 작은 상자가 전해졌다. “고인의 몸에서 나온 쇠붙이입니다.”
    상자 안에는 아들의 전신을 찢고 할퀸 총탄이며 포탄 조각들이 담겨있었다.
    병원 관계자가 말했단다.
    “쇳조각이 이렇게 많이 나온 것은 처음 봅니다. 3㎏이나 나왔어요. 3㎏.”
    어머니는 오열했다.
    ‘불쌍한 동혁아, 얼마나 아팠니?’

    입대 전 동혁이는 치(齒)기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었다.
    아버지-어머니의 치아 치료는 문제없다던 그 아들은 이제 국립현충원에 말없이 잠들어 있다.
    추모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3년째 이어진 만남으로 ‘형님-동행’으로 호칭하는 동혁이의 아버지 박남준씨와 우산을 함께 썼다.
    “형수가 마음 많이 상하셨겠어요?”
    “이런 행사가 고맙기는 하지만 한번 참석하면 집사람은 한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어요.”
    왜 아니겠는가? 가슴에 묻은 다 키운 아들인데.
    박남준씨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요즘 대학생들 보면 제대로 국가관을 가진 학생들 같지 않아요. 6.25도 모른다는 학생들이 많고 주적이 미군이라도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지나치는 학생들 보면 동혁이를 떠올릴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를 돌아보자 반듯하게 도열해있는 묘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모두 소중한 가족이 있을 사람들. 저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다 이 곳에 누웠는가.

  • ▲ 고 조천형 중사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손길로 영정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뉴데일리
    ▲ 고 조천형 중사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손길로 영정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뉴데일리
     
  • ▲ 아들의 영정 앞에 선 박남준-이경진씨 부부 .ⓒ뉴데일리
    ▲ 아들의 영정 앞에 선 박남준-이경진씨 부부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