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야드 교수 '한국고지도의 역사' 출간
  •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조선은 그 직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새로운 천문도와 더불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제작했다.

    이 두 지도 제작에 깊이 관여한 유학자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후자의 지도 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천하는 아주 넓어 안으로 중국에서부터 밖으로 사해(四海)에 이르기까지 그 거리가 몇천 몇만 리인지 알 길이 없다. 이를 줄여 몇 자(尺) 되는 화폭에 천하를 그리려 하다 보니 상세하게 만들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혼일강리역대국지도가 나옴으로써) 문밖에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권근은 "지도를 살펴보면 지역 사이의 거리를 잘 알 수 있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한국학을 가르친 개리 레드야드(79) 석좌명예교수는 천문과 지리를 대표하는 이 두 지도의 제작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면서 "새 왕조의 우주론적인 정통성을 증명하고자, 하늘과 땅 자체가 조선 왕조의 문화혁명 틀 안에서 다시 정의되고 선언한 일"로 간주한다.

    한국고지도 전공인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완역해 최근 소나무 출판사를 통해 선보인 레드야드 교수의 '한국고지도의 역사'(원제 'Cartography in Korea')는 이처럼 한국 전통지도를 철저히 그 시대정신의 산물로 본다.

    한국고지도 통사로 기획해 1994년에 초판이 선보인 이 책의 이런 특징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기술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레드야드는 1861년에 목판 인쇄본으로 나온 대동여지도를 서구열강으로 대표되는 외부위협의 산물로 간주한다. 이런 측면은 방대한 대동여지도를 1장짜리로 만든 '대동여지전도'에 부친 김정호 자신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곳집(天府)이요, 쇠같이 단단한 성(金城)이니 참으로 억만 세 동안 끝없는 번영을 누릴지니, 오호라 위대한진저!"
    이런 까닭에 대동여지전도는 위협에 처한 조선인의 사기 진작을 위한 포스터 같은 성격을 얼마간 지녔다고 레드야드 교수는 평가한다.

    나아가 그는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를 풀기도 했다. 김정호가 조정에서 모진 탄압을 받았다느니, 발로 뛰어다니며 백두산을 일곱 번 오르내리며 지도를 제작했다느니 하는 '신화'가 거짓임을 밝혀낸 것이다.

    영어 원서는 흑백도판이지만 번역자는 이번 한국어판에서 도판 대부분을 원색으로 교체했다. 한국어판이 단순한 번역본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판본이 된 것이다.
    406쪽. 3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