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이 쓴 '김정일이나 김정남이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베이징 6자회담에서 도출된 ‘2·13 합의’는 한 고비를 넘길 만한 가능성은 제공했다. 북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에, 숱하게 약속을 어긴 북한이지만 이번만은 지킬 것으로 믿으며 비록 돈이 들더라도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라는 제목의 ‘기초적 합의’가 이끌어 낼 결과에 기대를 걸어 보자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어서면 과연 희망이 보일까. 핵을 휘둘러 중유 전기 쌀을 우려먹게 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 말대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일까.

    가난한 집에 웬 풍악소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일로 다가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5세 생일이 예고하는 북한의 미래는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북쪽에선 5주년과 10주년을 ‘꺾어지는 해’로 성대히 기념하는 관례에 따라 지상 최대의 생일잔치가 벌어질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백두산에서 대규모 생일 축하 결의대회가 열리는 등 북한 전역에서 축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선군(先軍)조선의 위대한 태양’ ‘절세의 애국자’ ‘희대의 천출(天出) 명장’ ‘조선의 영광 민족의 자랑’…. 북한 관영 매체와 권력자들은 낯 뜨거운 칭호를 쏟아 내며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 경쟁에 여념이 없다. 쌀이 떨어졌다, 땔감이 모자란다며 이웃에 손을 내밀던 가난한 집안에서 난데없이 풍악소리가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6자회담 결과를 끌어들여 남한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서 ‘축하 선물’을 보냈다고 선전 공세를 펼칠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손바닥만큼이나마 제대로 된 구석이 있는 나라라면 지금쯤 ‘통렬한 자아비판’ 소식이 들려와야 옳다. 잔치판을 벌일 때가 아니다. 사리분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김일성 부자(父子)가 62년째 권력을 잡고 있는 세습독재의 결과가 초래한 비극을 절감하고 반성하는 것이 정상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부터 따져도 벌써 13년째 집권하면서 국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든 지도자에게 보낼 것은 찬사가 아니라 저주다.

    핵을 매개로 외세와 가파른 대결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이란을 같은 계열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란은 북한에 비하면 정상적인 국가에 가까우니 그런 대접에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다. 이란에선 나름대로 국민의 선택과 비판이 힘을 발휘하고 지도자의 통치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독불장군처럼 보이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이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다. 4년 임기가 끝난 뒤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는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마디네자드는 핵 개발을 관철하기 위해 유엔 총회장에 나가 소신을 밝혔다. 이슬람 혁명 28주년이던 11일에는 거리로 나가 국민 앞에서 핵 개발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미국 CNN 방송의 생중계도 허용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하루 뒤에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를 활용해 미국의 이란 비판에 대한 반격을 육성으로 미국인들에게 들려줬다. 이란의 대결 정책에 대해 찬반 의견이 갈릴 수는 있으나 당당한 내치와 외교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이란이 부럽다

    이란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북한 지도자는 비겁하다. 이란 국민이 살아 있다면 북한 주민은 죽어 있다. 그런 북한의 지도자에게 휘둘려서는 북한을 변하게 할 수 없다.

    최근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마카오와 베이징에서 언론에 포착되면서 후계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등장했다. 가까운 장래에 김 위원장이 권좌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없지만 언젠가 김정남(혹은 김정철이나 김정운)에게 권력이 넘어간들 북한에 무슨 질적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래서 희망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