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4일 사설 <‘과거·현재·미래의 핵’ 다 폐기해야 안심할 수 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베이징 6자회담이 타결됐다. 북한은 핵 폐기를 위한 초기 이행조치에 들어가고, 그 대가로 나머지 5개국은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행계획 합의서가 채택됐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이 언약 수준의 합의문이었다면 이번 성명은 구체적 행동계획을 담고 있어 제대로 이행만 된다면 북한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에 합의한 ‘불능화 조치’가 핵 폐기의 직전 단계로 사실상 ‘폐기’나 다름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영변, 태천 등의 핵 시설을 사용 불능으로 만든다 해도 북이 이미 보유 중인 핵무기나 플루토늄은 그대로 남는다. 미국 핵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작년 10월 핵실험 직후 북한을 다녀와서 “북이 이미 6∼8개의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40∼50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이 확실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시발점이 된 고농축우라늄(HEU) 시비도 아직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협상 대상에서 빠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이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네바합의 때도 그 이전에 생산된 플루토늄은 건드리지 못함으로써 북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을 허용하고 말았다.

    우리에게 날아올 ‘북핵 청구서’도 문제다. 일본을 제외한 4개국이 중유와 에너지 지원 비용을 공동부담하기로 했다지만 우리 부담은 n분의 1로 끝나지 않는다. 9·19성명에 따라 정부는 중유 말고도 북이 핵을 포기할 경우 200만 kW의 전기를 공급하고, 경수로 건설까지 지원하도록 돼 있다. 향후 9∼13년 동안 총 6조5000억∼11조 원이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 프로젝트다. 앞으로 지원이 재개될 것이 분명한 연간 50만 t의 비료와 30만 t의 식량은 별도다.

    북한의 과거와 현재의 핵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는 한 장의 이행계획서를 위해 과연 이만 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평화비용’이라고 하지만, 북핵에 잘못 대응해 물지 않아도 될 비용까지 물게 되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되짚어 봐야 한다. 이를 햇볕정책의 성과로 포장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기만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다. 북핵이 그동안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나,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북-미, 북-일 관계의 정상화, 동북아 다자안보의 실험 등에 가장 큰 장애였고 보면 앞으로 이들 부문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정말로 핵 없는 한반도가 구현될 때 가능하다. 이행계획 합의서 채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적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경우 한미동맹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부터가 문제다. 북이 핵 폐기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높다. ‘아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이런 문제들에 대비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