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참전시 핵폭탄 사용 약속을 지켰다면?
  • 거제에 세워진 김백일 장군의 동상이 좌파들로 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있다. 제 2의 맥아더 동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떠올린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한국을 구한 장군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실행한 대도박이며 그 덕분에 적화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맥아더를 전쟁광으로 몰아붙이는 선전-선동이론이 재야 운동권을 중심으로 나타나더니, 386 운동권 출신들이 국가운영의 중심에 선 후부터는 그 이상한 이론이 더욱 힘을 얻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년 전에 있었던 맥아더 장군 동상철거 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 ⓒ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박사
    ▲ ⓒ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박사

    맥아더 장군을 폄하하는 그룹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
    맥아더는 한국인들의 안위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전쟁의 승리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는 것 이다.

    그들은 이에 대한 증거로 맥아더 장군이 전쟁에서 수십 개의 원폭을 투하하고 방사능 물질인 코발트를 사용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한다. 이 주장은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가 언급한 것으로, 맥아더 사후에 나온 생전의 인터뷰 내용에서 출발하는데, 그가 인용한 내용은 이렇다.


    <맥아더는 그 계획이 10일 내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맥아더는 "나는 만주의 목줄을 따라 30여 발의 원자탄을 투하 하려 했다. (…) 50만여 명의 자유중국 군을 압록강에 투입하고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능 대를 만들어 방사능 코발트 지역 만들려고 했다. 60년 내지 120년 동안 존재하기에 방사능 코발트를 살포했을 것이다. 최소 60년간 북한의 침략은 꿈꿀 수 없고, 소련은 (이 전쟁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계획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브루스 커밍스가 인용한 이 인터뷰는 역사학자인 카롤 퀴글리(Carroll Quigley) 글에서 2차 인용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인터뷰 내용상 이상한 점이 보인다. 연합군 총 사령관이 인터뷰 하는데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 특히 마지막 부분의 식은 죽 먹기란 속어적 표현을 보면 역사학자의 발언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맥아더가 코발트를 사용하려 했다는 주장은 이 인터뷰 내용 말고는 드러난 자료가 아무 곳에도 없다. , 교차검증이 되지 않은 자료인 것이다

     

    1. 코발트 사용의 가능성.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맥아더가 방사능 코발트를 쓰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터뷰 내용처럼 코발트를 뿌리려고 한다면 코발트로 포장한 핵폭탄을 사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코발트 수소폭탄은 최초로 실험한 것이 1952년이고 항공기에 탑재할 수 있는 완제품이 나온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이라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 코발트 폭탄을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당시 코발트 핵폭탄이 구상단계에만 머무르고 실제로 개발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등재되어 있다
    .

    그렇다면 코발트 폭탄이 아닌 일반 코발트 물질을 사용해서 방사능 오염지대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엔 방사능 코발트 (코발트60)는 원자로에서 아주 소량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연구용 원자로 몇 기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거기서 어떻게 다량의 코발트를 얻을 수 있을까?

    결국 이북 지역을 수십 년간 오염시킬 만큼 일반 코발트 물질을 다량으로 구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코발트 60의 반감기가 5.2년 정도에 불과하므로 수십 년 지속되는 방사능 오염지대를 만든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코발트 폭탄이든, 일반 코발트 물질이든 간에 맥아더가 한반도에 수십 년간 지속되는 코발트 오염 지대를 만들려고 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 ▲ ⓒ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박사

     

     

    2. 맥아더의 핵무기 사용

     

    맥아더가 한국전에서 핵무기를 쓰고 싶어 했다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도 나온 것이니 그것은 거짓은 아닌 듯 하다.  

    다만 운동권들의 주장처럼 그가 한국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승리에만 눈이 멀어서 핵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맥아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원폭사용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었다. , 원폭 사용은 맥아더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생각이기도 했다.

     

    맥아더가 30여 개의 원폭을 한반도에 사용하려고 했다고 치더라도 당시 미국의 원폭 재고량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로 맥아더가 원폭을 사용했다면 30여 개가 아니라 많아야  3~4개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은 1951년 양양전선 시찰에서 잘 나타났다. 당시 맥아더는 함께 있던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중공군에게 원폭을 쓰자는 나의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살지 않는 만주의 허허벌판에 한두 발을 떨어뜨려 적들을 위협하자는 것인데...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 여러분들이 원폭사용을 바라고 계시고 나 역시 대통령께 중공군 참전시 원폭을 쓰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구려. 대통령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주시오."

     

    물론 1~2발의 원폭이라도 우리 민족에게 재앙이 될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폭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 되었는가 생각해보라. 그 두 도시는 지금도 사람들이 별 일 없이 살고 있다. 따라서 몇 개의 원폭이 사용된다고 해서 한반도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오염지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맥아더를 공격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엔 핵물질의 장기 오염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일부 핵물리학자, 화학자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사능문제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이 방사능 오염에 대해 제대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선 뒤다.


    그 이전에는 수소폭탄 실험을 한 직후 장병들이 그 일대를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드나들거나, 아니면 아예 멀리 원폭이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들이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필자는 한국전쟁에서 맥아더가 원폭사용을 고려한 것을 가지고 한반도 불모화 운운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겨우 1~2개의 원폭을 쓴다고 해서 그 지역이 불모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를 통해 알고 있으며, 더구나 당시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잔류 방사능에 대한 문제를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맥아더는 한국전쟁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일본을 패퇴시키고 한반도의 해방에 공헌한 인물이 분명하다. 또한 한국전에서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낙동강 이남까지 밀려나 곧 사라질 위기의 대한민국을 다시 살린 공훈을 세운 영웅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존경할만한 인물이며 동상을 세워 기릴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점령군 괴수, 전쟁광 운운하며 폄하하고 그의 돌상을 철거하자고 난리를 부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공산화 직전까지 갔던 대한민국이 맥아더 장군에 의해 가까스로 다시 살아난 것을 매우 원통하게 생각하는 부류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