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 전선과 한나라당의 보수 퇴역

    허문도(전 통일원장관)

    ‘낙동강 전선이 뚫렸다. 대한민국은 종말이 가까웠다.’ 한나라당 논법대로 분당 보선 결과를 평한다면, 이 같은 표현이 될 것이다.
    여당 한나라당 진영은 이번 선거를 ‘좌파와의 낙동강 전투’라면서 ‘대한민국을 흔드는 세력과 끝까지 싸워 이기겠다.’고 했었다. 패배하고 말았으니 ‘낙동강 전선이 뚫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당 진영이 선거 후에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작은 “낙동강 전선이 뚫려” 나라나 당이 절체절명의 벼랑 앞에 섰다는 실감은 당 주변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거들었다면 당락이 뒤집혔을 실력자는 유유히 비행기를 탔고, ‘낙동강 전선’은 다급한 체제 보수가 선거판에 동원한 레토릭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은 동원된 이상은 녹녹치 않다. 피한방울 흘릴 각오 없는 보수를 ‘낙동강 전선’은 받아주지 않았다.
    뭐가 피 한 방울이냐?
    대결 상대의 좌파성을 폭로하는 노력이 피 한 방울이다. 그 동안 한나라당은 좌파의 반 대한민국 성을 폭로하는 것을 주저하고 회피하려 들었는데 이는 피 한 방울 흘리려 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피 흘리려 드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낙동강 전선’이 지켜지겠나. 분당이 아무리 보수의 문전 옥답이라도 불로소득과 무위도식은 받아주지 않음을 한나라당의 ‘낙동강 전선’은 알려준다.
    분당의 ‘낙동강 전선’은 대한민국이 살아 남기 위해서 보수가 해야 할 일을 눈 뜨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극명히 드러냈다.

    천안함의 교훈- 응징만이 재발 막아

    3월 말로 천안함 사태 1주년이 되어, 그 동안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 취한 조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실행에 들어갔음이, 몇 가지 반성과 함께 신문지면에 보인다.
    작전지휘체계의 개편, 병기화력의 고도화, 교전규칙의 적극적 운용지침 등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일년이 더 지난 지금도 보완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하나는 천안함의 공격주체를 확정하는데 시간이 걸려, 응징공격의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다. 나아가서 이를 통해 총사령관의 유화성이 적에게 읽혀버린 일이다.
    공격주체인 적의 확정은 현장 지휘관인 경우는 최악일 때라도 상황발생과 동시에 제6감으로라도 순간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보고를 받는 순간까지 적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최고사령관이 수행해야 할 리더십의 가장 핵심적 사항은 적방을 지적하는 일이다. 대통령인 최고사령관은 평소의 대국장악력과 통찰력에 바탕하여 빈약한 초기정보 만으로도 적을 확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일순의 판단지체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적의 기습까지 사전에 예기할 수 있어야 만전을 기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이미 닥쳐온 공격이 적의 것인지를 확정하는데, 주저함이 있고 시간이 걸린다면, 그 군대는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라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천안함 사태는 우리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국민들이, 그 동안 평화중독증에 빠져 있었음을 여지 없이 드러낸 일이다. 평화 시에는 평화중독증에 걸려 있어도 평화중독증에 눈뜨지 못하는 것이 평화중독증이다.
    평화중독증이 무엇인가?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 평화를 지탱하는 군사력의 존재에 국민들이 무감각해지고, 전쟁문제를 돈으로 풀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되어, 전쟁을 피하는 것이 현자의 길이라고 믿는 고착된 심정이 국민 위에 자리 잡으면 평화중독증은 이미 깊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직후 “(사고 원인에 대해) 예단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대통령의 이 말 만큼, 스스로의 평화 중독증을 드러내면서, 국민의 평화중독증을 심화시키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일순이라도 빨리 적을 향해, 대응조치를 결단해야 할 총사령관이 적 판단을 유보하려는 의지가, ‘예단하지 말라’ 속에는 들어 있는 것이다.

    언론도 평화중독증

    대신문의 천안함 사태 보도는, ‘북의 연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청와대 인사들의 직감을 크게 제목으로 앞세웠다. 이 제목 속에는 대응 공격에 손대기 싫어하는 청와대 주변의 공기가 배어있다. 이 공기를 부각시켜 천안함 사태를 국민에 알리는 한국 주축 언론 역시 평화중독증의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천안함 사태는 한마디로, 나라를 지키는 최고책임자인 총사령관이 고유권한인 적 확정판단을 미룸으로써, 피침 당한 적 기습에의 대응문제로서가 아니라, 해난사고를 당한 상선의 가해자를 규명하는 문제쯤으로 내려앉았다.
    적을 규명하는 작업이 온 나라와 전세계 앞에 학술세미나 하듯이 까발려졌다. 이 공간에 적방의 프로파간다가 끼어들었다. 본질이 색깔 싸움인 공방이 과학논쟁으로 둔갑하여, 국민대중을 손쉽게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과학논쟁으로 끼어든 적방의 프로파간다를 폭로할 센스가 없는 곳에, 오늘의 보수여당의 평화중독증은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 해야 할 것이다. 과학논쟁 뒤에 있는 색깔은 눈 감은채, 폭침 일년이 지나서도, 과학 대 비과학으로만 문제를 풀어헤치는 주축언론의 감각 역시 평화중독증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천안함 사태와 연관하여 국민들의 평화중독증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작년의 6.2 지방선거를 통해서였다.
    보수여당은 북적에 의한 폭침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단결할 것을 믿고 미리부터 ‘승전’무드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보수여당의 참패였다. 더욱 통일의 날까지 분단현실에서 사라질 수 없는 색깔싸움의 고지인 다수 교육수장을 좌파에게 넘기고 말았다.

    혁명구호- 전쟁이냐 평화냐

    레닌 이래의 혁명 구호인 ‘전쟁이냐, 평화냐’가 노무현 정권 등장의 고비에 이어, 천안함 후의 지방선거 전야에 휘둘려진 것은 절대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군에 간 아들들까지 가담한 ‘여당 찍으면 전쟁 난다’는 흑색선전에, 국민의 천안함 단결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던 것이다. 좌파는 전쟁이라면 안방을 내줘도 피하고 보자는 국민의 평화중독증에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천안함 폭침과 46용사의 희생을 국민의 평화중독증 각성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대통령과 보수여당이다.
    적침의 위기 앞에서 ‘예단하지 말라’는 명령어지만 총사령관의 유화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예단 밖에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예단 말라’는 적을 확정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응징공격을 미루겠다는 지휘행위이고, 있을 수 있는 전투행위는 원천봉쇄하고 보겠다는 의향을 압축한 표현이다. 이처럼 위기 앞에 모습을 보인 대통령의 유화성은 절대로 국민의 평화중득증을 깨울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역사에도 최고지도자의 유화성이 국민을 단결시킨 적은 없다.

    보수 여당의 지도부는, 침몰원인을 규명한 합동조사단의 결과에 의문이 많다며 한 좌파단체가 유엔기관에 서신 낸 것을 “반국가적 이적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왔다. ‘반국가적 이적행위’라 했으면, 이것이 말만하고 말 사안인가. 국가의 자위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정부여당이 ‘이적행위’를 말만하고 마니까 국민의 평화중독증은 깊어만 가는 것이다.
    투쟁과 액션을 기피하는 보수여당이 국민의 평화중독증을 깰 수는 없는 것이다. 적침 위기를 당하고도 이를 깨우지 못한 후과는 중대하다.

    여당은 그들이 텃밭이라고 믿었던 분당의 보선에서 ‘좌파와의 낙동간 전선’이라며 고단위 처방을 썼건만, 평화중독증에 잠겨있는 유권자들한테는 무력했다.
    피 흘릴 생각 없는 한나라당 관념 보수의 무임승차 체질만 두드러졌다.
    한나라당은 스스로가 설정했던,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더 이상 보수의 짐을 져낼 수 없는 정당임을 확실히 해 보였다. 다가오고 있는 통일상황을 내다 봤을 때 분당 보선이 한나라당을 보수에서 퇴역시킨 의미는 크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로, 가상적국에 대한 불안이나, 경제적 궁핍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등 여러 가지가 들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큰 요소가, 그자 별 것 아니더라고, 상대를 얕보게 되는 계기가 착각으로라도 생겼을 때이다.
    중국이 서양 열강에 경쟁적으로 반식민지로 잠식되는 것은, 청일전쟁에서 청의 실체가 드러나, 얕 보이고 나서이다.

    얕 보이면 전쟁 난다

    천안함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대통령은 북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했다. 그 각론으로 선언되었던 대북심리전 재개는 북의 엄포로 결국 주저 앉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군당국은 북의 해안포의 화력이 북방한계선(NLL)을 범했어도 눈 감으려 한 적이 있기도 했다.
    천안함의 변을 당하고도, 남쪽의 위기관리 대응체제가 이 정도니 북이 어떻게 유혹을 떨쳐 버릴 것인가. 연평도 포격사태는 천안함 이후의 대응체제가 불러왔다 해도 될 것이다.
    재발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 체제에서 가장 우선 적으로 보강해야 할 것은 총사령관의 의지 부분이다. 천안함 사태에서 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46영령의 희생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정신 속에 있는 유화성이 극복되고, 필요하다면 평화 확보의 수단으로 전쟁을 택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의지가 입증되었을 때 도발은 저지되는 것이다. 그 불퇴전의 각오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응징보복을 통해서만 적에게 알릴 수 있을 뿐이다. 명교수들 데려다가 작전지휘체계나 화력수준을 어찌한다고 총사령관의 의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대 전략과 국가전략에 고차원의 사유가 있다면 응징공격은 유보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총사령관의 보강된 의지가 차선의 방식으로라도 가시화되지 않는 한 위기의 재발 방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천안함 경우라면, 침몰원인 규명과정에서 적방에 연동하는 적의 정치공격의 대행자들이 다수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응징보복이 아니라면, 총사령관은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북의 의향에 연동하는 이들 내국 분자의 의지를 응징해 보임으로써 만이, 총사령관 스스로의 보강된 의지를 내외에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오바마 "정의가 실현되었다"

    10년만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여 수장하고 나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세계 앞에 선언했다. 천안함 폭침을 두고서는 실현되어야 할 정의가 없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답해야 할 것이다.

    대북 응징 보복이나 종북 연동분자 응징을 끝내 못한다면, 일어 날 사태 하나를 감히 예단해 보겠다.
    내년 후반에 북의 천안함 작전이 재판 될 것이다.
    북의 천안함 작전은 천안함 폭침에서 시작하여, 서울의 안방에 과학의 이름으로 흑색 프로파간다를 집어 넣고, 두 달 뒤의 선거공간까지 가서 ‘전쟁이냐 평화냐’로 평화에 중독된 유권대중을 착취한 작전이었다. 6.2지방선거의 야권승리로 결말이 났다.
    전쟁의 철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다.’는 철언을 남겼지만, 북의 천안함 작전은 클라우제비츠를 문자 그대로 실연해 보인 드물게 보는 하나의 전형이다.
    군의 조직이나 화력을 아무리 바꾸어도 총사령관의 의지, 각오의 변화가 가시화 되지 않는 한, 내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 맞추어, 천안함 사태는 내용을 달리하여 재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