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입는 기저귀에 '형광 물질'이 묻었다면‥'형광증백제', 유해 논란 불구 세제 등에 광범위 사용
  • 경기도 일산에 사는 가정주부 진OO씨는 요즘 고민이다. 둘째 딸 인혜의 아토피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 피부 염증이 끊이지 않고 발생, 가려움을 호소하는 인혜를 위해 진씨는 인스턴트 식품을 가려 먹이고 틈만 나면 자주 씻기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보인다. 진씨는 인혜가 입는 옷은 늘 삶아서 세탁하고 인혜의 피부가 직접 닿는 하얀 속옷은 더욱 위생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런데 진씨는 최근 방송국의 도움을 받아 자외선을 방출하는 '블랙라이트'로 인혜의 속옷을 비춰본 결과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껏 가장 깨끗할 거라 생각됐던 하얀 수건과 옷가지 등에서 온통 푸른 빛이 감도는 형광증백제가 발견된 것이다. 인혜의 피부가 매일 접촉하는 속옷에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알려진 형광물질이 포함됐다는 사실에 진씨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 어둠 속에서 블랙라이트(자외선 램프)를 비췄을 때 밝은 형광빛을 띠고 있는 각종 제품들. 좌측 상단 시계 방향으로 ▲갓난 아기가 입고 있는 옷과 담요 ▲두루마리 휴지 ▲흰 티셔츠 ▲화장용 티슈 ▲아동용 도서(가운데).  ⓒ EBS 제공
    ▲ 어둠 속에서 블랙라이트(자외선 램프)를 비췄을 때 밝은 형광빛을 띠고 있는 각종 제품들. 좌측 상단 시계 방향으로 ▲갓난 아기가 입고 있는 옷과 담요 ▲두루마리 휴지 ▲흰 티셔츠 ▲화장용 티슈 ▲아동용 도서(가운데). ⓒ EBS 제공

    ◆형광증백제 접촉시 피부와 눈에 자극

    형광증백제(fluorescence brightening agent, 螢光增白劑)란 자외선 대역의 빛을 흡수, 푸른 빛의 형광을 내는 물질로 섬유 등에 사용할 경우 육안으로 희게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형광표백제로도 불리는 형광증백제는 제품을 하얗게 보여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해 각종 의류나 종이, 펄프 등에 첨가제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형광증백제가 사람이나 동물에게 알레르기나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 물질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동물실험 결과 형광증백제는 피부와 눈에 일종의 자극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부 학자들의 경우 형광증백제에 발암성의 위험이 있다는 동물실험결과를 예를 들며 "형광염료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최용범 교수는 "형광증백제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 학자들간에도 설왕설래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형광물질이 포함된 화장지 등을 사용할 경우 알레르기 접촉성 피부염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동국대 식품공학과 신효선 명예교수는 "천연형광물질이 아닌 인공형광물질을 식품포장지 등에 첨가하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게 국내외 학계에 일반화 돼 있다"고 밝혔고, 유태종 전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 역시 "형광증백제에 발암 유발 성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냅킨 등에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힌 바 있다.

    한 한방전문가는 "아토피 환자는 특별히 증상을 심화시킬 수 있는 물질과 접촉을 삼가해야 하는데 형광물질이 포함된 화장지나 기저귀 등을 함부로 사용할 경우 아토피 질환이 심해질 수도 있으므로 장기간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형광증백제가 없는 다른 제품으로 바꿔 써 볼 것"을 권유했다.

  • ▲ 블랙라이트를 비추기 전 찍은 합성세제 사진(좌측)과 블랙라이트를 키고 촬영한 세제 사진(우측).  ⓒ EBS 제공
    ▲ 블랙라이트를 비추기 전 찍은 합성세제 사진(좌측)과 블랙라이트를 키고 촬영한 세제 사진(우측). ⓒ EBS 제공

    ◆기저귀나 일부 화장용 티슈에서도 발견

    이렇듯 수년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형광증백제에 대한 유해성 주장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도 이 물질은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EBS TV '하나뿐인 지구 - 백색의 유혹, 형광증백제' 편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일부 두루마리 화장지와 수건, 기저귀, 백색 티셔츠, 화장용 티슈, A4 용지, 면봉, 세제 등 다양한 제품에서 형광증백제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은 형광증백제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불거진 뒤 현행 식품위생법과 약사법 등을 통해 종이컵, 냅킨, 화장지, 일회용 기저귀, 식기, 생리용품, 화장지, 탈지면, 물티슈, 마스크 등 사람의 피부에 직접 닿을 수 있는 제품들에 대해 형광증백제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종이 생산량 중 20%만 천연펄프로 만들고 나머지 80%는 폐지 재활용으로 만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형광증백제가 포함된 종이류와 휴지의 시중 유통은 불가피한 형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화장실에서 주로 사용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폐지를 원료로 하는 재생펄프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천연 펄프에 비해 색깔이 누런 빛을 띠는 휴지의 경우 제품 경쟁력을 위해 형광증백제가 첨가되고 있다고.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이 지난해 화장지를 포함한 생필품 36개 제품을 상대로 실시한 '형광증백제 검출 조사'에서 화장실용 화장지 7개 중 4개 제품에서 형광증백제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자혜 소시모 사무총장은 "두루마리 화장지에 형광증백제가 포함돼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 아직도 일부 식당에선 티슈 대신 값이 싼 두루마리 화장지를 식탁 위에 비치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 화장지는 화장실에서만 사용하면 좋습니다'란 문구를 두루마리 화장지 포장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 ▲ 블랙라이트를 비추기 전 찍은 합성세제 사진(좌측)과 블랙라이트를 키고 촬영한 세제 사진(우측).  ⓒ EBS 제공

    ◆폐지로 만든 재생 휴지, 형광물질 검출 불가피

    이에 대해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폐지를 이용해 종이류를 생산할 경우 제조 과정에서 형광증백제를 인위적으로 넣지 않더라도 원재료인 폐지에 형광물질이 이미 첨가돼 있는 경우가 많아 최종 완제품에서 형광증백제가 검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현재는 종이류를 새로 제작할 때 형광증백제를 첨가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휴지 뿐만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섬유 등 특수 재질로 된 도서를 제외한 종이 재질 제품 98종 중 67종(75.3%)에서 형광증백제가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환경자원분석센터 조사 결과에선 아동도서 10권 중 8권에서 형광증백제 성분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이 '새책증후군'이라 불리는 피부염이나 아토피에 시달리는 이유가 종이에 사용된 형광증백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EBS 제작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형광물질이 포함된)폐지 제품이 아닌 천연 펄프만으로 종이를 만들 경우 연간 2560억원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현실적으로 종이 제품에서 형광증백제 성분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사용자의 세심한 주의 외에는 형광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일 방법이 없다는 셈이다. 이와 관련 '백색의 유혹, 형광증백제' 편에 출연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새 책을 만지면 몸이 가렵고 어지럽다"는 어린 학생들의 반응을 소개한 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약한 체질의 아동이 공부하는 교육 책자의 경우, 종이 성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 형광물질이 발라진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한 손가락에 해당 물질이 고스란히 묻어난 모습.  ⓒ EBS 제공
    ▲ 형광물질이 발라진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한 손가락에 해당 물질이 고스란히 묻어난 모습. ⓒ EBS 제공

    ◆"하얀 것이 깨끗하다"는 고정관념 버려야

    한편 EBS 방송에 따르면 형광물질이 묻은 흰 행주를 형광성분이 없는 다른 행주와 함께 삶을 경우 형광증백제가 고스란히 옮겨가는 것으로 나타났고, 형광증백제가 발라진 종이책을 만진 손에서도 형광물질이 묻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형광증백제의 높은 '전이성'과 더불어 해당 제품을 접촉할 시 인체에 그대로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김자혜 소시모 사무총장은 "우리 민족이 흰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기업들이 굳이 필요없는 형광증백제를 더 많이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소비자의 의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며 기업들도 하얀 것이 깨끗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원 화학섬유팀 최환 팀장 역시 "천편일률적인 규제보다 구매자의 능동적인 소비 행태가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이라고 밝혔다. 최 팀장은 형광증백제 유해 논란은 해외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돼 온 문제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작용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주요 선진국에서조차 이를 막는 뚜렷한 방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천연펄프가 아닌 재활용 종이를 원료로 한 재생 제품의 생산이나 소비를 위축시켜 원가 상승을 초래하기보다, 소비자가 알아서 용도에 맞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지를 제대로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조언한 형광증백제 사용 제품을 피하는 방법.

    1. 지나치게 새하얀 색은 피한다.

    2. 100% 천연 펄프 제품, 혹은 '무형광'이란 표시와 더불어 누런색을 띠는 제품을 구매한다.

    3. 얼굴이나 손을 닦을시 두루마리 휴지 사용을 지양하고 반드시 화장용 티슈를 사용한다.

    4. 불을 끄고 자외선 램프(블랙라이트)를 비췄을때 형광색을 띠면서 밝게 빛나거나, 요오드를 섞은 물에 화장지를 넣어본 후 색깔이 까맣게 변하면 형광증백제 성분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