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남북정상회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7년은 대통령을 새로 뽑는 해입니다. 그래선지 요즘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대통령 선거를 화제로 떠올립니다. 이야기 패턴은 어딜 가나 비슷합니다. 특히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여론조사에서 불리함을 의식하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섞인 추측입니다.

    사실 여론조사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너무 낮게 나옵니다. 격차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 과도한 차이가 더 문제입니다. 어느 한쪽은 너무 높은 지지도 때문에 좋아해야 할까 경계해야 할까 헷갈리는 상황이고, 다른 한 쪽은 아예 자포자기 심리로 빠져들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포자기야말로 정상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두려움의 원인치고는 꽤나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은 마침내 ‘노 대통령이나 집권 열린우리당이 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열세를 뒤집어엎기 위해서라도 뭔가 특단의 조치를 감행하려 들 것이다’는 추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 모임마다 이것저것 대안이 떠오르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 가장 가능성있게 지적되는 게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년 봄이나 여름쯤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노 대통령조차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뉴질랜드를 방문중이던 지난 8일에도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2000년에 한 (답방) 약속을 이행하라고 여러번 정부는 촉구해 왔고, 또 그밖에도 언제든지 방문한다면 환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만이 아닙니다. 김정일 스스로 정상회담 카드를 흔들 수도 있습니다. 핵개발로 완전한 고립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현 정권이야말로 사실상 유일한 생명줄입니다. 현 정부의 북한 지원규모가 김대중 정부 때의 2.2배에 이르는 데다 핵보유에 상관없이 2007년 대북지원예산마저 늘려잡겠다는 판이라니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김정일 정권이 왜 포기하려 들겠습니까.

    그래서 대선이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최종 판단될 경우 김정일 스스로 나서서 남북이 곧 통일이라도 될 듯 화해 제스처를 쓰는 것이죠. 이와 때 맞춰 남쪽 현 정부와 이상한 이름의 시민단체들 아니면 특정 방송이 힘을 합쳐 온갖 유토피아를 선전하거나 촛불시위 등을 벌이면서 진보 진영 유권자들의 몰표를 유도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추론들이 거론될 때마다 주변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는 점입니다. 뻔하지 않습니까. ‘아 또 당해야 하는가’라는 식의 표정이죠.

    하지만 우울해할 필요도 없고 당할 거라는 식의 좌절감에 빠져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침내 한반도에서 정의(正義)를 구현할 때가 왔다고 해야 마땅합니다.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를 못하십니까.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야말로 여태껏 그의 반민족적 처사와 온갖 형사범죄를 목격하면서도 죄를 물을 수 없었던 자를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우선 그는 우리의 반쪽인 2200만 북한 인민을 굶주림과 참혹한 인권유린으로 몰고간 국사범입니다. 더불어 그는 아웅산 테러사건이나 KAL기 폭파사건의 주모자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반드시 해명돼야 할 미제사건들입니다. 그를 붙잡는 김에 그동안 북쪽으로 흘러 들어간 갖가지 귀한 정보나 심지어 비자금들의 정체도 확인해야겠죠. 남쪽 반역자들을 색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김정일과 이라크의 후세인 가운데 누가 더 죄질이 나쁜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후세인은 사형이 선고됐는데 김정일만 유유히 한국 사회를 거닐도록 놔둘 수는 없는 것이죠. 그건 노 대통령 말대로 ‘직무유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