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 앞으로 손도끼와 황씨 얼굴에 붉은 페인트를 뿌린 사진이 든 소포가 배달됐다. 황씨는 지난달 강연에서 “북한문제는 김정일정권이 제거돼야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말했었다. 소포엔 그때 발언을 거론하며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고 쓴 협박문도 있었다고 한다. 황씨에게는 지난 13일에도 ‘민족 반역자를 응징하겠다’는 유인물이 배달됐고, 2004년엔 식칼이 꽂힌 황씨 사진이 날아든 적도 있다.

    한달 반 뒤면 황씨가 망명해온 지 꼭 10년이 된다. 황씨는 목숨을 걸고 가족과 헤어져 온 사람이다. 북한이나 북한 사주를 받는 세력의 협박에 흔들릴 사람은 아니다. 그보다 황씨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자유를 찾아온 남한 땅에서 정부 당국의 배척을 받아온 자신의 처지일 것이다. 그는 남한 생활 10년 중 상당 기간을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하고 싶은 말 못하는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해왔다. 탈북자 소식지를 만들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더니 국정원이 발간을 막은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황씨가 “나도 헌법상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성명까지 냈겠는가.

    2003년엔 한번밖에 외국에 나갈 수 없는 단수여권을 받아 겨우 성사된 미국 방문길에 기관원들이 따라가 누구를 만나 무슨 말을 하나 감시하고 다녔다. 미국 의원측이 황씨와의 면담자리에서 기관원들을 밀어내느라 몸싸움을 벌일 지경이었다. 황씨는 올해에도 미국 인권단체로부터 뮤지컬 ‘요덕스토리’ 공연 행사에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측 신변안전보장 각서를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황씨는 1997년 남한 품에 안기면서 “가짜 주체사상, 가짜 사회주의로 충만된 북의 진상을 폭로하겠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이 땅에선 김정일을 한마음으로 섬긴다는 ‘일심회’라는 주사파 간첩단이 활개를 치고, 그 간첩 혐의자 수사에 ‘민주’라는 이름을 단 단체 소속의 변호인 37명이 달라붙고, 공판정에선 검사를 향해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쓰레기’라는 상욕이 날아다니고, 그래도 판사는 훈계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황씨가 자기 회고록을 번역하는 일본 사람에게 ‘한국 상황에 실망해 여러번 자살을 생각했다’는 글을 써줬다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