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규민 대기자가 쓴 칼럼 '한국은 지금 방향감각 마비의 시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상륙작전’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검역 과정에서 거듭 발목을 잡힌 것이다.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했는데 뼛조각 몇 개가 발견된 게 발단이었다. 첨단 X선 기계도 못 찾아낸, 성냥개비보다도 훨씬 작고 가느다란 뼛조각을 우리 검역 당국이 보물찾기하듯 육안 검사로 찾아낸 것이다. 대단하다. 이어 정규 검사 항목에도 없는 추가 검사로 허용기준치를 살짝 초과한 발암물질까지 찾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렇게 철저한 정부가 있으니 우리 국민은 최소한 먹을거리만큼은 안심해도 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국민 건강을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정부라면 그동안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국민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농수산물을 이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처럼 꼼꼼하게 점검하고 관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집단 식중독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는 이 나라의 식품안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국민이 더 잘 안다. 쇠고기를 이 잡듯 파헤친 정부가 건강이나 위생보다 다른 쪽에 속셈을 갖고 그런 것이라면 훗날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중국에 너그럽고 미국에 엄격하고

    지난해 ‘기생충 김치’ 파동 이후 1년도 안 돼 중국산 김치는 국내 시장을 30%나 점령할 정도로 수입이 폭증했지만 그동안 우리 검역 당국이 얼마나 정밀한 위생 검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치명적 중금속 납덩이를 배 속에 넣고 들어온 생선을 포함해 중국산 불량 수산물들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지만 당국이 그중 몇 %나 적발해 냈는지도 궁금하다. 중국 김치 때문에 종자 값도 못 건진 배추 농가들이 탄식하며 밭을 갈아엎고, 항생제에 전 중국산 생선 때문에 국민이 건강을 상하고 수많은 어민이 생계를 잃었지만 농어민이나 시민단체 누구도 불량식품의 수입을 허가한 정부, 또는 그걸 수출한 중국을 성토하는 집단행동은 하지 않았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다고 했을 때 전국적으로 불같이 일어났던 반미 시위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번에 발암물질을 찾아낸 검역 당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예민한 국민 의식을 고려해 철저히 조사했다’는데 왜 국민 의식은 중국산에 관대하면서 미국산에만 유난히 예민한 것인가. 중국산 김치를 수입하지 말자거나 부적격한 미국산 쇠고기를 무조건 들여오자는 말이 아니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이중적 시각, 모순된 행동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긴 주체는 집권세력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 그들은 혹시 “(중국의)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형님 백만 믿겠습니다”라며 미국에 대들어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우리 역사에서 중국은 절대로 좋은 이웃이 아니었다. 이 나라 정세에 따라 한반도는 환란과 치욕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다. 오랜 기간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주권 없이 살아야 했으며 청나라의 침략으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고 우리 왕이 그들의 신하가 되는 굴욕적 군신관계가 맺어지기도 했다. 가까이 6·25전쟁 때는 중공군이 우리 군인과 양민 수십만 명을 죽였는데 그때의 중국 지도자를 지금 우리 국가원수는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태연히 말한다. 모화사상(慕華思想·중국을 흠모하는 사상)에 빠졌던 정신적 미숙아 모습의 조선시대 어느 왕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세상이 이쯤 변하다 보니 서울 주재 중국 외교관들은 음주 단속하는 우리 경찰의 신분 확인 요구조차 당당히 거부한다. 외교관 면책특권을 둘러대지만 중국에서 공안들은 치외법권 지역인 한국 공관에 난입해 탈북자들을 끌어간다. 만일 미국 외교관이 서울에서 음주 측정을 거부하고 워싱턴 주재 우리 대사관에 미 경찰이 무단 침입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당장 그날 밤 세종로 사거리는 촛불로 뒤덮였을 것이다.

    2중 잣대, 논리로는 설명 안 돼

    집권세력과 일부 국민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이중적 행동을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매개 변수를 도입하면 방정식은 쉽게 풀린다. 즉, 북한과 친한 나라는 우리에게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괜찮고, 북한과 적대적인 나라의 것이라면 뭐든지 거부하고 싶은 것이 국내 친북세력의 성향이다. (중국산) 김치와 (미국산) 쇠고기는 이 시대 바로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상징이다. 집단적 방향감각의 마비는 참으로 무서운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