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겨울은 바쁘게 사는 일상의 사람들을 조용한 성찰의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세월의 저녁 시간과 겹치는 계절이고, 갑자기 엄습한 추위가 바깥을 돌아다니던 마음을 몸 깊숙이 불러들인 탓이기도 하다. 잎 떨어낸 나무를 바라보면 그렇듯, 가을 내내 스산해진 마음은 어느덧 폐부 깊이 들어와 어떻게 살았느냐고 넌지시 묻는다. 2006년의 급류를 어떻게 건너왔는가라는 고즈넉한 물음이 세모(歲暮)라는 말이 주는 저물녘의 정감 때문에 싫지는 않다. 그러나 퍼뜩 정신을 차려보면, 2006년의 한국 사회와 시민들을 괴롭혀 온 온갖 종류의 탁류가 신년의 막연한 희망의 공간을 또다시 가로지를까 두려움이 앞서는 게 요즘 세모의 정서다.

    그래서인지, 풍요함을 치장하려 더러 걸어둔 크리스마스 트리가 저 혼자 명멸하는 '2006년 겨울'의 밤거리에서 약간의 호기를 부려 봐도 '세계의 모범생' 한국이 위태로운 촛불처럼 사그라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심정이다. 이 시대의 '정의가'를 백번 되뇌어도 발바닥에서 올라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이 오한의 기원은 무엇인가. 4년 전 오늘, 서민권력의 탄생을 축하하던 '민중의 함성'이 몇 번의 세모를 거치면서 '민중의 탄성(歎聲)'으로 바뀌었음은 누구나 다 수긍한다. 역사의 이름으로 포장한 어설픈 몸짓과, 거룩한 이념의 배경에 어른거리던 권력 욕망을 간과했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그래서 그 오한은 민중권력의 실패를 목도해야 하는 오늘 서민의 마음이 민중권력의 탄생을 갈구했던 옛 독재 시대의 애원보다 더 춥고 음산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듯도 하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1964년 겨울'에는 은밀하나마 미래를 탐색했었다. 꺼져가는 4.19혁명의 잔상 속에서 생면부지의 청년과 시민들은 권력이 동원하고 징발된 '나의 것'을 서로 얘기했었다. 네온이 작열하는 현란한 술집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누추한 선술집이어도 상관없었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속의 주인공들은 혁명정권이 선물했을 법한 어떤 것들에 대해 무작정 소통했다. 그 소통이 가능했던 것은 부재, 즉 원하던 것의 결핍 때문이었다. 결핍의 공유는 소통을 만들고, 소통은 의기투합, 요즘 말로 연대감을 낳는다. 궁핍했던 그 시대는 서로의 결핍을 확인하는 것으로 희망의 촛불을 켰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160배나 늘어나고 '연대의 철학'에서 태어난 정권이 천방지축 뛰어다닌 이 시대에는 왠지 희망을 감지할 수 없다.

    그래서 '2006년 겨울'은 춥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그 옛날 독재권력이 '나의 것'을 징발해 갔다면, 오늘의 민중권력은 온기와 쾌활함을 거둬 갔다. 그것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간에 춤도 노래도 없고, 미래를 향한 부드러운 다짐도 사라진 나라의 세모가 흥겨울 리 만무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준엄한 이론으로 무장한 '논리의 전사들'이 아니었다. 생활 터전을, 경제를 쑥밭으로 만들어도 '체계혁신'에만 집착하는 완고한 혁명주의자들도, 자기 말에 취하는 달변가도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이 겨울의 우울은 얘기를 나눌수록 서로에게 적이 되는 이 시대의 소통 양식 때문이고, 무기력증은 의욕의 순결성을 검열하는 순교주의적 통치 양식 때문이다. 그 편파성과 폐해는 사회 각계에서 누차 지적되었건만, 그럴수록 더욱 강도를 높이는 집권 세력의 놀라운 복원력에 대해 낭패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들은 이런 허망한 공방전으로 지난 4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다면 이 겨울엔 통신이 두절된 격리된 공간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지 모른다. 누군가 또다시 나타나 시대와 역사의 이름으로 포장한 이념상품을 바겐세일할 태세이고, 그럴듯한 이념의 푯대에 잠시 반짝일 약속을 또 걸어둘 것이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친 말들의 소란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일, 현란한 논리에서 자신을 격리시키는 일, 그것이 이 우울한 세모에 할 일인 듯하다. 마치 '1964년 겨울'의 청년들이 새벽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뿔뿔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