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오의 안식처-왕들의 계곡
    18세에 의문사를 당한 투탕카멘의 호화찬란한 유물이 발굴된 곳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에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재생·부활하여 내세에서 영생한다고 믿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죽은 뒤에 내세에서 살 집이 필요했다. 이것이 무덤이었다.
    그들은 무덤을 「영원한 집」이라고 불렀다. 생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민 무덤안에 각종 가구와 샤브티Shabti라고 불리는 내세에서 죽은 사람 대신에 노동을 해줄 사람의 조각을 돌이나 청동으로 만들어 함께 묻었다.

  • ▲ 투탕카멘의 캐토프스.
    ▲ 투탕카멘의 캐토프스.

    룩소르 나일 강 서안에 있는 높이 450m의 알-쿠른Al-Qurn산은 그 꼭대기가 천연의 피라미드처럼 생겼다.
    신왕국시대에 그 메마른 바위산의 깊숙한 계곡에 바위를 뚫고 파라오, 왕비, 귀족들의 암굴무덤을 만들었다. 왕조시대에 무덤의 도굴이 매우 심했다. 그래서 고왕국과 중왕국시대에는 파라오의 무덤은 피라미드처럼 눈에
    띄기 쉽게 그리고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도굴을 방지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무덤들은 예외 없이 모두 도굴되었고 심지어 미라까지도 없어졌다.

    피라미드는 죽은 파라오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신왕국시대에 들어와서는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산의 깊숙한 메마른 계곡에 바위를 뚫고 그 속에 무덤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암굴무덤 역시 투탕카멘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굴되었다.

    현재 이 일대의 바위산 계곡의 곳곳에 삼천년 이상 된 신왕국시대의 암굴무덤 약 800기가 모여 있다.
    이곳 암굴무덤의 기본구조는 입구 - 계단 - 통로 - 부속 방 - 널방으로 되어 있다. 다만 암굴무덤의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다르다. 파라오의 통치기간이 길수록 무덤의 규모가 크고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암굴무덤 내의 벽은 『사자의 책Book of the Dead』을 비롯하여 각종 장제문서에서 발췌한 주문들을 극채색의 그림이나 히에로글리프로 장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부분이 죽은 자가 명계의 지배자인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내세에서 재생·부활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암굴무덤 유적으로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 귀족들의 계곡, 직인들의 마을이 있다.

  • ▲ 투탕카멘의 황금관. 명계의 지배자 오시리스를 모방한 인형관. 3중으로 된 관 중 가장 안쪽의 셋째관.
    ▲ 투탕카멘의 황금관. 명계의 지배자 오시리스를 모방한 인형관. 3중으로 된 관 중 가장 안쪽의 셋째관.
    왕들의 계곡 (Valley of the Kings)

    알 쿠른 산 아래 깊숙이 뻗어 있는 삭막한 모래 계곡에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이 자리한다.
    계곡입구에서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긴 카트를 타고 바위산 기슭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곳곳에 암굴무덤들이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무덤처럼 보이지 않는다.

    파라오의 무덤들 중에서 열 개정도의 무덤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한 장의 입장권으로 세 무덤을 볼 수 있으나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만은 별도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왕들의 계곡은 타-세케아아트Ta-sekheaat라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불렀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어로 「서쪽의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뜻이다. 아랍어로는 「파라오들의 문」이라는 뜻으로 비벤 엘-무루크Biban el Muluk라고 불렀다. 이 메마른 사막의 바위 계곡에 신왕국시대의 제18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의 파라오의 암굴무덤들이 모여 있다. 모두 64기의 무덤들이 동서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24기가 파라오의 무덤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투트메스 3세의 무덤이며 가장 큰 것이 세티 1세의 무덤이다.
    가장 작으면서 가장 유명한 것이 1922년에 62번째로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이곳에 파라오의 암굴무덤을 처음 만든 것은 제18왕조의 투트메스 1세<B.C.1504~1492>였다.
    피라미드를 연상할 수 있는 알 쿠른 산의 기슭에 암굴을 파서 무덤을 만든 것을 보면 신왕국의 파라오들도 역시 피라미드에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곳 암굴무덤도 모두 도굴되었기 때문에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B.C.1103~1099> 이후에는 이곳에 파라오의 무덤을 더 만들지 않았다.
  • ▲ 투탕카멘의 황금관. 명계의 지배자 오시리스를 모방한 인형관. 3중으로 된 관 중 가장 안쪽의 셋째관.
    왕들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이 1922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발견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로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발견 당시 무덤은 유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그의 미라와 함께 3천 5백여 점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유물을 기록하고 손상되지 않게 꺼내는데 8년이 걸렸다.

    투탕카멘<Tutankhamen: B.C.1366~1327>은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로 기원전 1325년 무렵, 9살에 파라오가 된 그는 9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가 18살에 죽은 단명의 소년 파라오였다.
    처음에는 유일신 아텐 신앙을 상징하여 그의 이름을 투탕카텐이라고 했다. 후에 그는 신 아멘을 다시 국가최고신으로 섬기면서 아멘 신앙을 상징하는 투탕카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어린 투탕카멘은 장군 아이<Ay: B.C.1327~1323>와 재상 호렘헤브<Horemheb: B.C.1323~1295>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열여덟 살 때 의문의 죽음을 당한 투탕카멘은 왕들의 계곡에 묻힌 뒤, 3천 3백여 년 동안 잊혀 있었다. 그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금박으로 장식된 높이 165㎝의 두 입상이 권봉과 지팡이를 들고 널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 ▲ 셀케트 여신. 투탕카멘의 캐노푸스를 장식하고 있는 여신.(이집트박물관)
    ▲ 셀케트 여신. 투탕카멘의 캐노푸스를 장식하고 있는 여신.(이집트박물관)
    구석진 방에는 투탕카멘의 내장을 담은 황금으로 도금된 상자가 있었다. 이 상자의 사면에 투탕카멘의 간장을 지키는 여신 이시스, 폐를 지키는 여신 네프티스, 위를 지키는 신 네이트, 장을 지키는 신 셀케트가 새겨져 있었다. 상자 안에 내장을 각각 담은 4개의 캐노푸스가 있었고 심장은 미라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라오의 미라는 4중으로 된 금박의 나무 상자 속에 3중으로 된 파라오의 모습을 따서 만든 인형관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맨 안에 있던 인형관은 순금으로 만들었으며 그 속에 황금 가면을 쓴 투탕카멘의 미라가 누워 있었다. 미라는 여섯 쌍의 보석 귀걸이, 세 겹의 황금 목걸이, 열한 개의 팔찌, 열다섯 개의 반지, 여덟 개의 발목걸이 그리고 순금으로 만든 발가락 덮개로 단장하고 있었다.

    전실은 사자와 소 모양의 침대, 황금 의자, 전차, 그림이 들어 있는 나무상자, 각종 장신구, 나무로 만든 파라오의 조각 등 내세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부장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실에는 의자, 책상 따위 세간들과 의복, 지팡이, 무기, 술병 등이 있었다. 그의 무덤은 동물 모습을 한 신상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람의 모습을 한 신들이 관을 지키고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의 2층 특별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왕들의 계곡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빈 관과 아름다운 벽화들만 남아 있고 지하에 그의 미라가 석관에 안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은 모두 도굴 당했으며 더욱이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인들이 약탈해 갔다. 그러나 투탕카멘의 무덤만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이 그 입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굴을 면할 수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과 관련해서 그의 무덤을 파 해친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모두 일찍 죽었다는 「투탕카멘의 저주 설」이 전해오고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과 나란히 람세스 6세<B.C.1142~1134>의 무덤이 있다. 그는 람세스 3세의 아들로 형 람세스 5세를 몰아내고 파라오가 되었으나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직선 구조를 이루고 있는 그의 무덤은 매우 종교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덤 통로의 벽화와 널방의 천정 그림이 모두 『문의 책』, 『동굴의 책』, 『낮의 책』, 『밤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무덤 전체가 죽은 자의 세계에 관한 종교문서로 꾸며져 있다.

    왕들의 계곡의 가장 깊은 곳에 투트메스 3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투트메스 3세는 제18왕조의 파라오로서 어린 나이에 파라오가 되었으나 실제로 통치한 것은 그의 숙모인 하트셉수트 여왕이 죽은 뒤부터였다. 투트메스 3세는 멀리 중동까지 원정하여 영토를 확장하여 대제국을 세웠으며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무덤의 입구를 지나 16계단을 내려가 오른 쪽으로 돌면 전실과 널방이 나온다. 전실은 태양신을 만들어 낸다는 765명의 신들이 있다. 널방에는 누트 여신상이 조각된 붉은 규암으로 만든 석관이 놓여있다. 벽에는 장제문서 『암·두아트의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새겨놓았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은 크고 구조가 매우 복잡하나 매우 아름답다. 무덤 입구를 지나 파라오의 모습이 장식된 6개의 기둥이 서 있는 기둥 홀의 안쪽에 규암으로 만든 석관이 놓여 있는 널방이 있다. 이 석관에서 발견된 파라오의 미라는 현재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람세스 2세의 아버지 세티 1세의 무덤은 길이가 120m로 왕들의 계곡의 무덤들 중에서 가장 크다.
    그는 이집트의 영토 확장과 아마르나시대에 폐쇄된 신전을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무덤 입구에서 통로를 내려가면 기둥 홀 - 전실 - 널방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널방은 신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파라오, 입을 여는 의식 따위를 담은 벽화로 꾸며져 있다. 널방에 길이 3m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널방의 천장은 천체도로 장식되어 있다. 천체도의 성좌를 모두 동물로 표시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세티 1세의 미라는 현재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 ▲ 네페르타리와 이시스 여신.(왕비의 계곡- 룩소르 서안)
    ▲ 네페르타리와 이시스 여신.(왕비의 계곡- 룩소르 서안)

    왕비들의 계곡 (Valley of the Queens)

    왕들의 계곡에서 남동으로 1.5㎞ 떨어진 사막지대에 왕비들의 계곡Valley of the Queens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곳을 타 세트 네페르라고 불렀다. 고대 이집트어로 「아름다운 장소」라는 뜻이다.
    원래 이곳은 신왕국시대의 왕자, 공주, 왕녀 등 왕족들의 무덤이었다.
    왕비들의 무덤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계곡의 동굴이 무덤의 수호 여신 하트호르의 배와 자궁을 닮았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죽은 자를 부활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덤들은 대부분이 제18~20왕조시대의 왕족들의 무덤으로 현재 확인된 무덤만 해도 98기나 된다.
    그 중 람세스 3세의 아들 아멘헤르케프세프Amenherkhepshef 왕자와 티티 왕비의 무덤을 포함하여 다섯 개의 무덤만 공개하고 있다.

    왕비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의 무덤이다.
    이 무덤 안에 있는 채색 벽화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람세스 3세의 왕자의 무덤이 유명하다. 왕비들의 계곡의 무덤은 왕들의 계곡의 무덤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다. 무덤을 장식하고 있는 채색벽화는 대부분이 재생·부활·영생을 위한 장제문서 『사자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네페르타리 왕비는 람세스 2세가 「태양은 왕비를 위해 있다」고 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재 이집트인들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아크엔아텐의 왕비 네페르티티,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 그리고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를 꼽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네페르타리를 「가장 아름다운 자」라는 뜻으로 네페르타리 메리엔-무트Nefertari Merien-Mut라고 불렀다. 내세에서도 아름다운 왕비와의 사랑이 계속되기를 기원했던 람세스 2세는 왕비의 무덤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네페르타리 무덤은 입구 - 통로 - 널방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무덤의 내부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천장은 천체도, 벽은 『사자의 책』 에서 발췌한 그림들, 미라가 된 왕비의 유해를 여신들이 지키는 모습, 안전을 지켜주는 부적, 호루스의 눈을 나타낸 웨자트Wedjat로 장식되어 있다. 황금의 방이라고 불리는 널방은 벽화로 차 있다. 벽화는 모두 「사자의 책」에서 발췌한 것으로 죽은 왕비가 마법의 힘에 의해 부활하여 영생을 한다는 내용들이다.

    룩소르의 나일 강 서안에는 파라오의 무덤 외에 귀족들의 무덤Tombs of the Nobles이 있고 그밖에 일반 백성들의 무덤 약 400기가 남아 있다. 이들 무덤들은 즐거운 연회 모습, 사냥 모습, 농사짓는 모습, 그밖에 제례, 오락 등 당시의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서민적인 내용을 담은 채색 돋새김과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대표적 무덤으로 「우는 여인」으로 유명한 라모제Ramose의 무덤, 최고 수준의 돋새김과 천장의 일부에 포도가 그려져 있는 센네페르Sennefer의 무덤, 그밖에 많은 벽화가 있는 나크트Nakht와 멘나Menna의 무덤을 들 수 있다. 귀족의 무덤 근처에는 직인들의 마을 유적인 데이르 엘-메디나Deir el-Medina가 있다. 신왕국시대에 왕들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에 무덤을 만든 직인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서 살았던 집합주택의 유적이 남아있다.

    글-사진: 이태원 전 한진사장

    기파랑(02-763-8996)의 <이집트의 유혹>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