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1년 후, 우리의 선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점은 어디일까. 육체적 성년은 혼인 가능 연령인 여성 16세, 남성 18세(민법 개정안은 남녀 모두 18세) 이상이다. 그러나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하려면 20세가 넘어야 한다. 술과 담배는 19세 이상이라야 살 수 있다(청소년보호법). 근로기준법과 병역법상 성년의 기준도 18세다. 정치적 성년은 투표권을 갖는 19세라 할 수 있다. 현행법상 성년의 기준은 통일돼 있지 않지만, 성인이 되면 규제와 속박에서 풀려난다는 점은 같다. 그 대신 청소년이어서 누렸던 사회적.법적 보호막도 함께 사라진다.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내년 이맘때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대통령 임기 만료일 전 70일(12월 17일) 이후 첫 수요일'이란 규정에 따라 12월 19일이 대선일이다. 꼭 1년이 남았다. 민주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1987년 이후 우리 손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네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렇지만 선택의 순간부터 찾아온 것은 후회였다. 취임하면서 90% 안팎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들 대통령은 임기 말로 갈수록 실망만 안겨 주었다. 성년이 되면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듯 우리 국민도 이제 대통령을 선택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됐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50년이 훌쩍 넘었고, 본격적인 민주정치 학습 기간도 20년이 됐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1년간 정계개편과 정당·후보들의 이합집산, 화려한 구호와 네거티브 캠페인이 난무하면서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것이다. 나무나 꽃에 눈이 팔리면 숲 전체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십상이다. 완벽한 대통령감은 없다. 상대적으로 대한민국호를 5년간 잘 이끌 리더십을 가진 후보를 찾아야 한다.

    미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인 프레드 그린슈타인은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을 핵심으로 꼽았다. 존슨은 중증의 정서적 결함 때문에, 닉슨은 내면에 숨어 있는 분노와 피해망상증 때문에 실패했다. 레이건과 루스벨트는 감성지능이 풍부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정서적 안정성을 쉽게 잃으면 대통령제는 매우 위험한 제도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그 폐해를 겪은 우리 국민에겐 실감나는 얘기다.

    후보 개인 못잖게 유심히 관찰해 봐야 할 곳은 캠프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흔히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정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선 막바지로 갈수록 정책에서 차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교육비와 집값, 북한 핵, 일자리, 양극화 등이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임을 누구나 안다. 어떤 대선 후보라도 이 문제를 풀어 나갈 정책을 내놓게 돼 있다. 설혹 좀 괜찮은 정책이 나왔다 하더라도 금방 다른 후보가 베낀다. 대부분의 정책이 비슷하게 된다. 그러니 세세한 정책보다는 큰 틀의 정책 방향 또는 정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알아본 뒤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게 낫다. 그걸 알려면 후보의 캠프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된다.

    대통령 당선자는 결코 그 캠프를 벗어나지 못한다. 캠프 구성원이 청와대의 수석과 비서관, 정부의 장·차관, 심지어 공기업의 사장과 감사를 차지한다. 당선자 혼자 집권하는 게 아니다. 당선자와 캠프가 공동 집권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권 인재 풀의 뼈대를 이룬다. 그들의 문화와 철학이 정권의 문화와 국정운영 철학이 된다.

    선택을 잘못한 자신의 손을 탓하는 일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 후보의 화려한 공약에 현혹되고 작은 잘못에 실망해서는 판단을 그르친다. 대선은 가수나 연예인에 대한 인기투표가 아니다. 숲을 보듯 후보 전체를 보고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각오를 했을 때 우리의 선택을 훼손할 수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