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북한식 ‘진보적 인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증명할 필요없이 자명(自明)한 진리로 인정되는 원리를 공리(公理)라고 한다. 일반적인 용어로도 공리는 아무 의심없이 모든 사람에게 두루 통하는 진리나 도리를 일컫는다. “동일한 것에서 같은 것을 빼면 나머지들은 같다(A와 B가 동일하면 A에서 C를 뺀 것과 B에서 C를 뺀 것은 같다)”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등이 공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런 공리마저도 부정하는 경우를 최근 흔히 접하게 된다. 구차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확인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자명한 사실·진실·순리인데도 부정하고, 이를 거꾸로 뒤집은 궤변을 공리라고 억지를 부리는 식이다.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은 그 대표 격이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상의 공리를 ‘밥을 굶으면 배가 부르다’는 궤변으로 둔갑시키고도 그것이 공리라고 우기는 일이 다반사다. ‘희다’는 표현을 ‘검다’는 의미로 들어야 사실에 부합하는 셈이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지난 20일 ‘조선식 사회주의는 진보적 인류의 희망의 등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세계 각국의 친북단체가 북한 체제를 찬양한 내용을 소개한 것도 그렇다.

    만민평등이 실현된 나라로 북한을 우러르고 있다는 등 황당한 북한 체제 찬양에 대해 노동신문은 “오늘날 진보적 인류는 제국주의 세력의 반(反)사회주의 광풍에도 끄떡없이 승리적으로 전진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해 찬탄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강변했다.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친북단체 구성원은 ‘진보적 인류’이며, 그들이 공인하는 바와 같이 북한 체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집단을 진보적 인류로 둔갑시키고, 극히 일부를 전체라고 우기며,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전락했을 정도로 피폐해진 경제 상황을 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反)공리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참혹한 인권 유린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한몸에 받고 있는데도 북한 체제에 대해 찬탄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인이라는 표현 역시 국제사회의 지탄이나 국제 고립으로 완전히 뒤집어 이해해야 사실에 들어맞는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사흘 뒤인 7월8일 노동신문이 “사회주의는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승리하고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전하며 “사회주의가 여명이고 뜨는 해라면 자본주의는 암흑이고 서산낙일”이라고 해괴한 주장을 편 것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적’은 ‘비인간적’으로, ‘뜨는 해’는 ‘지는 해’로 바꿔 읽어야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로 인해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죽었고 지금도 대다수가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핵실험 도발 등으로 북한의 국제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 사회주의 실험이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 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그런 체제는 누구에게나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의 평등사회 아닌 극소수 권력층의 호화 생활과 대다수 주민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극단적 차별사회를 초래한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진실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찾아, 그 이전에 죽지 않고 연명이라도 하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북한 주민이 여전히 줄을 잇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그렇다. 굳이 더 입증할 필요없이 현실 그 자체로 사실과 진실인 것이다.

    그처럼 자명한 진실조차 부정하거나 뒤집어 주장하는 장본인은 물론 그런 체제를 찬양하거나 감싸는 사람의 언행도 결코 정상적인 사고체계에 따른 것일 수 없다. 그런 사람이나 집단이 진보라고 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검은 색을 희다고 우기며 공리까지 부정하는 북한식 ‘진보적 인류’가 대한민국에도 적지 않은 사실은 건전한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괴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