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사회에 마치 진실인 것처럼 떠도는 얘기가 있다.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엔 재앙이다”는 것이다. “전쟁하자는 거냐”와 함께 무조건적인 대북 유화론의 양대 축(軸)이다.

    이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지금 돌이켜 보면,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나라에 재앙이 아니라 햇볕정책에 재앙이 될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이 근거로 든 것은 독일 통일이었다. “서독보다 경제력이 약한 우리는 북한이 무너지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는 한반도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후 매년 GDP의 5%를 동독 지역에 쓰고 있고, 경제성장률 하락과 실업률 상승을 겪었다. 세금 증가에 따른 국민 불만이 커지고 동·서독간 계층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도 있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의 붕괴로 지게 된 부담의 몇 천억배도 넘을 이익을 얻었다. 숙명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던 정치적 실체의 소멸이 가져온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문화·역사적 효과는 가히 복음(福音)이었다. 동독의 국토와 인구가 가진 가치만 따져도 서독이 진 부담과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금 다시 독일 통일 이전으로 돌아가서 동독의 붕괴를 서독의 지원으로 막고 언제 올지 모를 통일의 기회를 저 멀리 미루자고 한다면 찬성할 서독의 지도자가 과연 있겠는가.

    우리 경제가 북한의 붕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한 경제 전문가는 “경제적 부담은 총액이 아니라 부담 속도의 문제”라며 “통일비용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5년에 부담하는 것과 10~20년에 걸쳐 부담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예산의 1%로도 붕괴된 북한의 상황 관리는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에 재앙’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비약의 정도도 더 심해졌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수차례 같은 언급을 했고, 그의 최측근은 “(북한이 붕괴하면) 하루는 신나겠지만 다음날부터 불행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 당선자 시절 방미 대표단 중 한 사람은 워싱턴에서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새 정부는 북한의 붕괴보다는 핵을 보유한 북한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이 대량 탈북에 의한 재앙이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은 “북한 난민 100만명이 서울에 들어오면 서울은 그날로 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대량 탈북은 큰 과제이긴 하겠지만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하는 것은 과장이다. 겹겹 철조망에다 지뢰밭인 DMZ를 건너서 대량 탈북이 이뤄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해상 탈북은 숫자에 한계가 있다. 100만 난민 운운은 ‘겁주기’일 뿐이다. 또 난민이 통제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붕괴되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순전히 자살의 방법으로 전쟁을 택한 경우는 없었다.

    ‘북 붕괴=한국 재앙’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당혹스럽겠지만 우리도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붕괴는 국가 생존 보장, 북한 주민에 대한 구원, 동북아 평화 등 숙원을 일거에 해결한다” “북한 붕괴를 통한 통일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 “북 붕괴가 재앙이라는 것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얘기”라고 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붕괴가 재앙이 아니라, 붕괴한 북한 땅에 중국이 들어오는 걸 못 막으면 그것이 재앙”이라고 했다.

    지금 북한 붕괴를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몰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물줄기는 언젠가 폭포를 만날 수밖에 없는 길로 흐르고 있다. 그 폭포를 재앙으로 만드느냐, 민족의 복음으로 만드느냐는 우리가 하기에 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