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ST LUXOR 영원한 안식처 룩소르 서안

    죽은 파라오의 집 장제전
    나일 강 서안 곳곳에 산재해 있는 죽은 파라오의 집들

  • 아름다운 신전 기둥 (람세스 3세 장제전 기둥홀).
    ▲ 아름다운 신전 기둥 (람세스 3세 장제전 기둥홀).

    천년 왕도 테베의 네크로폴리스였던 룩소르의 나일 강 서안에는 죽은 파라오의 집인 장제전葬祭殿과 영원한 안식처인 암굴무덤들이 있다. 나일 강 동안에서 그곳에 가려면 옛날에는 배로
    나일 강을 건너가야 했다. 지금은 육교가 생겨 차로 쉽게 건너갈 수 있으나 아직도 옛날처럼 배로 강을 건너가는 관광객도 많다.
  • 입을 여는 의식. 죽은 자의 입을 열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 입을 여는 의식. 죽은 자의 입을 열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파라오가 죽으면 그 유해를 성스러운 배에 싣고 나일 강 서안에 있는 하안신전河岸神殿으로 옮기고 유해를 깨끗이 하는 의식을 거행한 다음에 미라를 만들었다. 미라가 된 파라오의 유해는 참배 길을 따라 장제전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최고신관이 죽은 파라오가 내세로 가는데 필요한 부활의식을 거행했다.
    부활의식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장제전의 안뜰에서 표범의 모피를 몸에 두른 최고신관이 주문을 외우면서 거행하는 입을 여는 의식Opening of Mouth ceremony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가 된 파라오의 입을 열어주면 영혼이 들어가 생명이 다시 살아나 죽은 파라오가 내세에서 먹고 말하고 보고 듣고 숨 쉴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이 의식을 하는 동안에 죽은 파라오의 후계자는 파라오의 즉위 의식을 동시에 거행했다. 이 의식이 끝나면 파라오의 미라는 무덤으로 옮겨져 관 속에 넣고 부장품과 함께 지하에 마련된 널방에 안치되었다. 마지막으로 철퇴의식을 거행한 다음에 무덤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미라는 포르투갈어의 「미라mirra」에서 유래되었다.
    영어의 「머미mummy」는 이집트의 미라를 처음 본 페르시아인들이 미라에 칠한 송진이 검게 부식된 것을 보고 페르시아어로 「무미아moummia:역청」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우선 소금의 일종인 '나트론Natron:천연탄산소다'를 사용하여 유해의 물기를 제거했다. 그 다음에 심장만 남겨두고 간, 허파, 위장, 창자 등 내장을 꺼내어 특별히 제작된 네 개의 캐노푸스 단지canopic jars에 담아서 별도로 보관했다. 그리고나서 온 몸에 식물성 방부제를 바르고 아마포亞麻布로 몸을 감싼 다음에 그 위에 향수와 송진을 부었다. 미라를 만드는데 70일 걸렸다. 특히 머리는 생명의 중심으로 여겼기 때문에 마스크를 씌워 보존했다.

    장제전은 무덤에 부속된 죽은 파라오의 집이었다.
    장제전에서 장례식과 함께 파라오가 내세에서 재생·부활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을 올렸다.
    그리고 장제전은 죽은 후에 신격화된 파라오가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장제전에는 죽은 파라오의 「카」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안치하고 벽은 죽은 파라오의 공적을 신에게 알리기 위한 돋새김으로 장식했다.

    고왕국과 중왕국시대에는 기자의 피라미드나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듯이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장제전을 함께 만들어 피라미드 복합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신왕국시대에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라오의 무덤과 떨어져서 장제전을 만들었다.

    파라오의 무덤은 나일 강에서 떨어진 사막의 깊숙한 바위 골짜기에 만들었다. 그리고 장제전은 무덤의 동쪽, 무덤과 나일 강 사이의 녹지대에 신전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장제전을 죽은 파라오의 재생·부활을 기원하는 장소로만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제18왕조의 하트셉수트 여왕은 장제전을 여왕의 공적을 홍보하는 기념신전으로 사용했고 람세스 2세는 장제전을 추운 겨울을 피해 거주하는 이궁離宮으로 사용했다.

    현재 룩소르의 서안에 모두 서른여섯 개의 장제전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 멤논 거상만 남아 있는 아멘호테프 3세42)의 장제전, 쿠르나 장인마을 부근의 세티 1세 장제전, 데이르 엘-바하리의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그리고 맨 남쪽에 자리한 메디네트·하부의 람세스 3세의 장제전이 비교적 보존이 잘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멤논 거상. 새벽마다 소리내어 우는 거상으로 불리었슴.(아멘호테프 3세 장제전).
    ▲ 멤논 거상. 새벽마다 소리내어 우는 거상으로 불리었슴.(아멘호테프 3세 장제전).
    멤논 거상(Colossi of Memnon)

    나일 강 서안으로 육교를 건넌 다음에 북으로 왕들의 계곡을 향해 올라가면 맨 먼저 두 체의 거상을 만난다. 콤 엘-헤이탄Kom el-Hei tan의 허허 벌판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큰 돌 조각이 멤논 거상이다. 3천 4백여 년 전에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장제전 입구에 세운 것이다. 이 장제전은 너무 나일 강 가까이 지었기 때문에 홍수로 파괴되어 없어지고 장제전 앞에 세웠던 아멘호테프 3세가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의 두 체의 거상만 남아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아시리아와 팔레스티나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고대 이집트의 기틀을 확고하게 만든 위대한 파라오였으며 람세스 2세에 못지않게 많은 기념건축물을 세웠다.

    기원 전 1세기부터 많은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이집트를 관광했다. 그들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것이 기자의 세 피라미드와 이 멤논 거상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 거상을 보고 호메로스의 영웅 서사시 〈일리아드〉의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기스토스Aegisthus에게 살해된 대 영웅 아가멤논Agamemnon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아멘호테프 3세의 거상을 「멤논 거상」이라고 이름을 불인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기원 전 27년 무렵, 큰 지진이 있었는데 그 뒤로 해가 뜰 때가 되면 거상이 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된 멤논이 매일 아침 그의 어머니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를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라고 여겨 「우는 거상」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 거상의 밑 부분에 로마인들과 그리스인 관광객들이 남긴 낙서가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 「해가 뜨고 나서 1시간 후에 멤논 거상의 우는 소리를 두 번 들었다」고 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왕비가 남긴 낙서도 있다. 그들은 거상을 보는 것 보다는 거상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왔다고 한다.

    한 개의 큰 규암을 깎아 만든 높이가 16.6m에 무게 1,000t이 되는 이 거상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통치자 중의 통치자Ruler of Rulers」라고 불렀다. 북쪽 거상의 다리에 아멘호테프 3세의 어머니 무템위야Mutemwiya, 남쪽 거상의 다리에는 왕비 티위Tiy와 딸이 조각되어 있다. 거상의 기조에 상하 두 이집트를 상징하는 로터스와 파피루스를 나일 신 하피가 묶는 의식을 담은 세마타위Samtaui라고 불리는 돋새김이 새겨져있다.
    199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가 이 거상을 보수하고 나서는 울음이 그쳤다.
  • 신전 지킴이 (하트셉수트 장제전).
    ▲ 신전 지킴이 (하트셉수트 장제전).
    람세스 2세 장제전 (Ramesses II Mortuary Temple)

    멤논 거상에서 북으로 왕들의 계곡을 향해 가면 도중에 람세스 3세의 장제전, 쿠르나 장인 마을, 귀족들의 무덤, 세티 1세의 장제전이 있다. 이어서 테베 네크로폴리스의 중심인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에는 람세스 2세의 장제전葬祭殿 라메세움Ramseum이 있다.

    이 장제전은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20년 걸려 완성하였다. 동서 260m, 남북 170m의 넓은 부지에 바깥벽, 두 개의 탑문, 두 개의 안마당, 한 개의 기둥 홀이 있는 큰 장제전이다. 고대 이집트의 대부분의 신전이나 장제전들이 탑문을 진흙 벽돌로 만들었으나 이 장제전만은 돌로 만들었다.

    원래 둘째 탑문 앞에 람세스 2세의 오시리스 기둥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옆에 오지만디아스zymandias라고 불리는 람세스 2세의 좌상이 있었다. 그 높이가 6층 건물에 해당하며 귀의 길이가 1m가 넘는 거대한 조각상이었다. 지금은 파괴되어 거상의 각 부분이 장제전의 곳곳에 흩어져 땅에 뒹굴고 있다.
    허물어진 첫째 탑문 벽과 둘째 탑문 벽에는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를 굴복시키는 모습의 돋새김이 장식되어 있다. 첫째 안마당의 기둥 홀의 입구에는 오시리스의 몸에 람세스 2세의 얼굴을 새긴 오시리스 네모기둥이 서 있고 그 앞에 파라오의 거대한 머리가 땅에 뒹굴고 있다.

    48개의 아름다운 파피루스 기둥이 서 있는 기둥 홀에는 어두운 방에 높은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와 천지창조때의 원초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큰 기둥 홀의 동쪽 벽에는 카데시 전투에서의 람세스 2세의 전투 모습, 안쪽 벽에는 매년 테베의 나일 강 서안에서 열리는 「계곡의 아름다운 축제」 모습이 담겨 있다. 8개의 둥근 기둥이 서 있는 작은 기둥 홀의 천정에는 밤하늘을 36개의 별로 나누어 묘사한 천체도가 있다.
    람세스 2세는 말기에 델타지역의 페르·라메수로 왕도를 옮겼다. 그러나 그곳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 비가 오고 춥기 때문에 이 장제전에 이궁離宮을 짓고 그곳에서 겨울을 보냈다. 이 장제전에 있었던 람세스 2세의 거대한 흉상은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성처럼 거대한 람세스 3세 장제전의 탑문.
    ▲ 성처럼 거대한 람세스 3세 장제전의 탑문.
    람세스 3세 장제전 (Ramesses III Mortuary Tample )

    람세스 2세 장제전의 남서로 조금 떨어져 있는 메디나 하브Medina Habu, 이곳에 보존 상태가 좋고 매우 아름다운 제20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3세<B.C.1183~1152>의 장제전이 있다.
    장제전과 왕궁이 함께 있는 특수한 구조를 이룬 이 장제전은 탑문 - 안마당 - 기둥 홀 - 성소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왕국시대의 전형적 구조의 장제전으로 전체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성처럼 보인다.
    높이 22m의 거대한 첫째 탑문의 벽은 람세스 3세가 태양신 아멘-라의 앞에서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 적의 포로들을 죽이는 모습 등 4개의 큰 돋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탑문의 뒷벽에 새겨져 있는 들소를 사냥하는 모습의 돋새김이 유명하다.

    첫째 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남북 양쪽에 큰 기둥이 즐비하게 서 있는 첫째 안마당이 나온다.
    안마당을 둘러싼 벽에는 람세스 3세가 「해양의 민족」을 격퇴하는 모습이 돋음 새김되어 있다. 둘째 탑문을 지나 사방이 큰 기둥복도로 둘러싸여 있는 둘째 안마당의 동쪽과 서쪽 복도는 오시리스 기둥으로, 남쪽과 북쪽 복도는 파피루스 기둥으로 꾸며져 있다. 기둥과 벽에는 전투 장면, 오시리스 신과 풍요의 신 민Min의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의 돋새김으로 가득 차있다. 둘째 안마당의 안쪽에 테베의 세 신을 모신 성소가 있다. 해마다 이 장제전에서 「10일 축제」가 열렸는데 카르나크 대신전의 아멘 신이 나일 강을 건너 와서 참가했다.
  • 오시리스 기둥 (하트셉수트 장제전).
    ▲ 오시리스 기둥 (하트셉수트 장제전).
    하트셉수트 장제전 (Mortuary Temple of Hatshepsut)

    람세스 3세 장제전에서 북으로 조금 떨어진 사막에 있는 데이르 엘-바하리Deir el-Bahari, 붉게 타오르는 듯 한 단애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이곳에 신왕국 제18왕조의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
    B.C.1503~1482>의 장제전이 화려하게 서 있다. 그 곁에 폐허가 된 중왕국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B.C.2046~1995>의 장제전 터가 있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메스 1세<Thutmose I: B.C.1504~1492>의 장녀이며 이복 오빠인 투트메스 2세의 왕비였다. 투트메스 2세가 죽자 하트셉수트는 아직 나이 어린 후궁의 아들 투트메스 3세의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여왕이 되었다. 여왕은 파라오 모습으로 남장을 하고 턱수염까지 달고 파라오처럼 나라를 다스렸다.
    여왕은 파라오가 된 것을 정당화 하고 과시하기 위해 많은 기념건축물을 세웠으며 광산의 확보와 교역 확장을 위해 영토를 시나이 반도와 푼트Punt: 지금의 수단 부근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여왕이 죽은 뒤 투트메스 3세는 여왕이 세운 기념물을 모두 파괴해 버리고 모든 기념물에서 여왕의 이름을 삭제해버렸다.

    15년 걸려 만든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3층으로 된 거대한 테라스를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이룬다. 테라스의 중앙에 있는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성소에 이른다. 테라스 안쪽 벽은 채색벽화로, 기둥은 아름다운 돋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 하트셉수트 장제전 (불타오르는 듯한 절벽에 둘러싸인 장제전. 절벽 너머에 '왕들의 계곡'이 있다.
    ▲ 하트셉수트 장제전 (불타오르는 듯한 절벽에 둘러싸인 장제전. 절벽 너머에 '왕들의 계곡'이 있다.

    1층 테라스의 복도에는 22개의 여왕의 얼굴이 새겨진 오시리스 기둥이 즐비하게 서 있다. 복도 벽은 오벨리스크의 건립 모습, 여왕의 탄생 모습, 그리고 여왕의 위업을 담은 돋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2층 테라스의 복도에는 15개의 둥근 기둥과 44개의 네모기둥으로 된 복도가 있다. 복도 벽은 여왕의 생애를 담은 돋새김, 여왕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여 신 아멘의 딸로 태어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탄생의 모습, 그리고 전설의 나라 푼트 원정의 모습이 돋음 새김되어 있다.
    2층 테라스의 남쪽 끝에 하트호르 여신의 작은 신전이 있다. 이 신전에는 매우 특징적인 하트호르 기둥이 서 있는 안마당과 12개의 기둥이 서 있는 기둥 홀이 있고 그 안에 성소가 있다. 북쪽 끝에는 신 아누비스의 작은 신전이 있다.
    3층 테라스의 복도에는 22개의 네모기둥이 서 있는데 기둥의 일부가 오시리스 기둥이다. 복도 앞 안마당의 북쪽에 태양신 라 호르아크티의 성소, 남쪽에 투트메스 1세의 성소, 하트셉수트 여왕의 성소, 태양신 아멘-라의 암굴 성소가 있다.

    이 장제전은 7세기 무렵부터 콥트교의 수도원으로 사용되었고 15~16세기 무렵에는 교회로 사용되었는데 그 흔적이 기둥이나 벽에 남아 있다. 장제전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 너머에 왕들의 계곡이 있으며 하트셉수트의 무덤도 그곳에 있다.

    글-사진: 이태원 전 한진 사장

    기파랑(02-763-8996)의 <이집트의 유혹>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