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세계의 눈'란에 경제학자인 폴 새뮤얼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나는 가장 큰 패인이 비참하고도 불필요한 이라크전쟁이었다고 본다. 이런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시 대통령 및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 등의 참모가 나온다.

    이름을 거론하면 길어지니 대표적 사례 하나만 보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의 잘못된 경영을 막고 처벌하는 일이 임무다.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간부들의 약탈로부터 투자자 및 주주들을 보호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첫 SEC 위원장으로 대형 회계법인들에서 일했던 하비 피트 변호사를 임명했다.

    그의 취임 일성은 “SEC를 더 친절하고 부드럽게 운영하겠다”였다. 이 말을 로비스트와 회계사, CEO들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세금 납부의 허점을 이용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야. 손실을 덮어 둬도 아무 위험 부담이 따르지 않는 유한보험에 가입하자. 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전례 없는 규모의 이익을 엄청난 비공개 옵션과 퇴직금, 보너스 형태로 CEO에게 몰아 주자.’

    기업 경영자들은 피트 위원장 말을 제대로 간파해 사복을 채우고 사기와 기만으로 이익을 부풀렸으며 본인뿐 아니라 이사들에게도 옵션을 안겨 주었다. 이런 금권 자본주의는 2010년까지도 갈 수 있었다. 낙태와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쟁은 공화당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두 가지 현실을 논외로 한다면 말이다.

    첫 번째는 이라크 변수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군해도 혹은 더 많은 군대를 보내거나 ‘현 노선 고수’를 외쳐도 대혼란과 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게릴라전은 많은 미국인이 지불하려 하지 않는 대가를 요구한다. 선거 당일 유권자들이 워싱턴을 꾸짖은 대목이다.

    두 번째는 민주당이 차지한 중도 성향의 의회가 세계화의 희생자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강한 정치적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중간선거는 미국을 자유 지상주의와 복음주의에서 떼어내 중간으로 옮겨 놓았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이라크 철군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해야 할 새로운 경제 정책은 무엇일까.

    부시 대통령의 배당세 및 장기자본 이득세 감면 정책을 통해 빈곤 및 저소득 가계가 직접적으로 얻는 혜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정책이 백만장자나 억만장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일 먼저 없애야 할 감면 항목은? 나는 모든 상속세의 영구 폐기 항목을 꼽겠다. 상속세 폐기만큼 미국을 폐쇄적 계급 사회로 만든 것은 없을 터이다. 부시 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미국을 두 개의 사회로 나눠 놓았다.

    세계화는 불공평하게도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주일학교에서 하듯이 승자가 패자에게 10%씩 주면 모든 이가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세계화 및 평등과 불평등의 장단점을 둘러싼 초당적 논쟁으로 실질적인 합의가 도출되길 기대한다면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일이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내 생각에 이번 선거에는 ‘이제 자유 지상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논쟁을 지배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견제와 균형, 타협이 되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미국 국민이 자신들과 맺은 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