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전공)가 쓴 <‘PSI참여=무력충돌’은 국민 기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는 지난 13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PSI에 참가하면 남북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참가하지 않고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718호의 이행에는 지장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PSI는 미국 주도의 ‘유지연합(有志聯合·coalition of the willing)’이기 때문에 이에 참가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안보리 결의는 유엔 회원국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헌장 제25조) 이 법적 의무는 다른 국제조약상의 의무에 우선하는 것으로 돼 있다.(제103조) 따라서 PSI에 참가하지 않고도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에 지장이 없다면 굳이 여기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PSI에 참가하지 않고도 안보리 결의 이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는 남북해운합의서 및 관세법의 적용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004년 5월28일의 남북해운합의서는 북한 선박이 우리 해역의 지정된 항로를 항행할 때, 해서는 안될 행위 10가지를 열거하고 있다(부속합의서 제2조6). 그러나 안보리 결의에 의해 수출입 또는 수송이 금지된 품목으로서 여기에 포함된 것은 ‘무기 또는 무기부품 수송’이라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이것은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 그 밖의 품목에 대해서는 이 문건으로 규율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합의서 문건은 운항중인 선박이 금지된 행위를 했을 때 연안국은 당해 선박을 정선시켜 승선·검색을 하고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제2조8). 그러나 위반사실이 확인됐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당해 선박에 “주의환기 및 시정조치와 관할수역 밖으로 나가도록” 하는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제2조9). 이것은 정녕 안보리 결의가 요구하는 바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보리 결의 이행에 관세법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 선박이 우리 항구에 들어왔을 때 관세법을 적용해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널리 기항지국 통제(寄港地國 統制·port state control)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 기항지국 통제가 완벽하게 집행되기만 한다면 안보리 결의 이행에 일조가 될 수 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의지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올해 들어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통과하면서 해양경찰의 통신 검색에 불응한 사례가 22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합의서 문건에 규정된 조치가 취해진 적은 한번도 없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볼 때 관세법의 적용을 통한 안보리 결의의 이행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PSI에 참가하면 남북간에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는가. 이 주장은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나포한다면 이를 북한에 대한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북한의 으름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PSI가 국제법 및 국내법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PSI 활동의 합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최대 선박등록국인 6개국과 ‘승선협정(乘船協定)’을 체결하고 있으며 해상 불법행위 진압 협약을 개정,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종사하는 선박을 정선하고 이에 승선·수색해 나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것은 PSI 활동이 적법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활동을 하게 되면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위 정부 관계자가 이것을 몰랐다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고 알았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