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의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늘 상처받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 이야기 그려
  • ▲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뉴데일리
    ▲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뉴데일리

    영화를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음 속 깊이 쌓아 두었던 아픔이 살그머니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부시게 맑은 가을 하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 위로 받은거구나.'

    너무도 쉽게 지쳤다. 언제나 나만 힘들고 외롭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내 등을 살살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괜찮아, 모두 똑같아.."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의 엔딩 컷 칸노 미호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려 '노바라 앓이'를 하던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 한 카페에서 영화 퍼너먼트 노바라의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을 만났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이 부러웠어요"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에 둘러싸인 시골 마을의 유일한 미용실 '퍼머넌트 노바라'에는 이런저런 연애 이야기와 말할수 없는 비밀이 가득 떠돈다. 하나같이 볼품없는 사랑을 하는 여성들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그래서 여성의 '정'이 가득하다.

    여성의 다양한 감성을 깊이 파고든 이 영화의 감독은 뜻밖에도 남성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든 감정이 여성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남성인 요시다 감독이 쉽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아내, 딸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둘만이 가진 유대감을 관찰하면서 저에게는 없는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됐죠. 또, 제가 남성이기에 여성의 감성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영화지만 남성이 본다면 여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화 속에 여성들은 하나같이 다 외롭다. 딸과 함께 사는 이혼녀 나오코, 바람 피우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사코, 연애를 쉬지 않는 토모 등. 늘 남자에게 상처받고 배신당하지만 이들은 어떤 연애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이 있어요, 그게 바로 영화 속 여성들이 강한 이유에요. 상처받지만 그것을 통해 더 성숙하는 거죠. 더 섬세한 그들의 감성이 부럽기도 해요. 딸이 있는데 많은 상처를 받는건 원하지 않지만 강한 여성으로 자라났으면 해요. 영화 속 여성들처럼."
    요시다 감독은 여성들이 가진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을 이야기하며 여성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도 여성을 닮고 싶다고 느꼈다는 감독. 그에 반해 남성들이 약한 존재로 표현한 것은 여성들의 강함을 좀 더 극대화 시키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 속 여성들이 강한 모습은 남성과 헤어질 때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마사코가 병원에서 남편에게 맞는 장면, 옛 연인이 토모를 패대기치며 떨쳐내는 장면 등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들은 여자를 내친다.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고 싶었어요.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면 보는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장면을 넣은 거죠." 요시다 감독은 영화가 너무 슬프거나 천천히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 약간 오바스러운 장면을 군데군데 넣어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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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간디를 닮았나요? "ⓒ뉴데일리

    '퍼머넌트 노바라'란 미용실이 자리한 영화 촬영지는 시고쿠의 고치현(高知縣),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 쌓여 있고 도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마을 분위기에 감독은 촬영 내내 즐거웠다고 털어놨다.

    "정말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립되는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거기다 맛있는 음식에 따스한 어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 촬영 분위기는 최고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영화에 출연시켜달라는 일도 많았다.
    "뽀글 파마를 하고 오면 출연시켜주겠다고 했더니 그 다음 날 동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똑같은 뽀글 파마를 하고 왔더라고요, 정말 순수하고 인간적이지 않나요?"
    고치현의 어촌 마을은 영화 속에서 훌륭한 배경으로 요시다 감독의 뛰어난 영상미를 절제와 비움이란 미학으로 보여준다.

    "제가 간디를 닮았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요시다 감독은 이 영화로 8년 만에 복귀한는 칸노 미호의 오랜 팬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와 함께 촬영하며 '역시 여배우'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가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운돼야 하는데 워낙 마을 분위기가 좋다 보니 배우들이 다 업된 상태였어요. 미호씨 역시 점점 발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미호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 조절에 힘썼죠, 또 촬영하면서 점점 말라가고 햇볕에 그을리다 보니 제가 '간디'를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런가? 하하."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너무 빨리 사랑을 잃어버렸던 주인공 나오코가 이혼을 통해 겪는 슬픔은 어린 시절 상실감과 연결돼 그녀를 환상 속에 머물게 한다. 영화의 끝 부분 '나 미쳤어?'란 나오코의 대사는 관객들의 마음에 안타까운 울림을 준다.
    "나오코에게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녀의 상처가 여물 때까지 그냥 가만히 보듬는 거에요. 천천히 그녀가 환상에 벗어나게끔 지켜봐 주는 거죠. 사실 영화 속 모든 여성들이 조금씩 미친 채 삶을 견뎌내는 거죠."
    영화 속 미용실 '퍼머넌트 노바라'는 나오코가 상처받은 마음을 불편한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감독은 '미용실'이 주는 묘한 안정감을 상처받은 여성이 치유되는 모습을 그렸다.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걸 알기에 영원한 사랑이 더 소중한거죠"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의 핵심 주제는 '사랑', 마지막 질문을 요시다 감독에게 물었다.

    "영원한 사랑을 믿으세요?"
    "영원한 사랑이라. 아마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건  모두 알 거에요, 하지만 그래서 '영원한 사랑'이란 말이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영원한 사랑'이 없기에 더 만들고 싶은 거죠. 예를 들어 송별회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떠난다는 걸 알기에 더 뜻깊게 느껴지잖아요. 비슷하게 생각하면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만큼 더 소중한 겁니다. 영원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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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사랑이 없음을 알기에 우린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거죠"ⓒ뉴데일리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요시다 감독. 

     "우리 모두 가슴속에 아름다운 장미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의 제목인 '퍼머넌트 노바라'(영원한 들장미)처럼요."

    요시다 감독이 가진 마음속 장미는 영화 속에서 활짝 피어난다. 그리고 우리 가슴에 그 따스한 향기가 전해진다. 감독은 삶이란 얼마나 긍정적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늘 상처받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을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 것인지...

    11월 4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