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발칙한 사랑이야기
  • "나랑 연애할래요...날 사랑해줄거죠?"
    "나랑 자면 우뇌랑 좌뇌랑 바뀌는 체험을 할 걸"

    #1단계: 쓰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 드라마 작가 타니야마(이지하·배해선)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연애를 해보기로 한다. 그녀는 왕년의 걸작 '사랑의 호치키스'를 비롯해 사랑 드라마를 수도 없이 썼지만 정작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건어물녀'.

    자신의 연애 감정을 되살아나게 해줄 상대자로 원고 독촉을 위해 집필실을 방문한 방송국 신참 프로듀서인 무카이(도이성·전동석)를 찍고 다짜고짜 연애하자며 달려들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본의 내용이 무대에 펼쳐진다.

    #2단계: 스타 PD와 이제 겨우 드라마 대본 응모전에 출품한 순진하다 못해 맹탕같은 주부가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타니야마는 어쩌다 작품 하나 써본 순진무구한 현모양처로, 무카이는 순진한 타니야마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는 훈남 스타 PD로 변한다. 1단계에서 타니야마의 소심하고 나약한 매니저로 나왔던 테라다(김성기)는 타니야마의 마초 남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장강도 커플 '히토시' (김재만·김대원)와 '쿄코' (송유현)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꼬여간다.

    #3단계: 2단계의 타니야마가 쓰는 또 다른 작품의 내용. 2단계에서 순진한 현모양처였던 타니야마는 자신의 억눌렸던 욕망을 발산하며 연애를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작가로 나온다. 2단계에서 훈남 스타 PD였던 무카이는 다시 타니야마의 기에 눌리는 인물로 바뀐다. 1,2단계를 거치며 다시 1단계와 비슷한 상황이 된 3단계 구조.

  • 연극 연애희곡 ⓒEMK제공
    ▲ 연극 연애희곡 ⓒEMK제공

    연극 '연애희곡'은 세 번에 걸친 액자형 구조로 돼있다. 관객은 삼중구조를 통해 그들의 행동과 감정의 타당성을 공감하게 된다. 내용은 '현실-극본 속의 세상-극본 속의 극본 속 세상'을 빠른템포로 넘나든다. 

    이중플롯의 극중극 구조 탓에 옛날 나비가 돼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는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된다. 꿈을 통해 타인의 무의식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영화 '인셉션'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그러나 영화 '인셉션'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인격을 그대로 지닌 채 꿈을 매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비해 '연애희곡'의 경우 등장인물의 성격이 3단계를 넘나들며 도발적이다가 때론 수줍어하고 또는 격렬하게 바뀌는 등 끊임없이 변하면서 꿈이 아닌 작품 속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매 신 마다 숨가쁘게 변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깨알같은 대사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만든다.

    작품 속 이야기가 반복되고 뒤엉킬수록 현실과 가상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진실과 허구, 작품과 작품 속의 작품은 현실과 맞물려 하나가 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이 복잡한 세가지 이야기를 구분하기 위해 벽 색깔을 달리해 보여주는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 연극 연애희곡 장면 중 ⓒ연합뉴스
    ▲ 연극 연애희곡 장면 중 ⓒ연합뉴스

    '연애희곡'이란 제목만 보면 언뜻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작품은 한편의 드라마가 어떻게 완성되는가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플레이, 플레이! 섹스"라든지 "몸을 섞어보면 사랑이 보인다"는 식의 노골적인 성적 멘트 날리기도 하고, 극적 반전을 위해 강도와 작가가 사랑에 빠지는 신 등을 넣을 것을 요구하며 말 그대로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걸작적 멜로 드라마'를 완성해간다.

    '걸작 멜로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사랑을 강요한다'는 엉뚱한 발상에다 강도 히토시가 "사랑할래? 죽을래?"라며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협박을 하는 장면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설정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의 연속은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사랑에 관한 고찰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사랑 좀 해봐야겠어'라고 떼쓰는 여작가 타니야마의 "침대에서 시작하는 사랑도 있는거야", "일단 한번 해보자" 등 시종일관 도발적인 대사는 가벼운 성적 연극을 짐작케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간 감정의 본질에 대한 논의하고 있다.

    스타 작가지만 자신의 히트작들이 주부들이 설거지하면서 잊혀지게 되는 '거품 드라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거품'같은 허무함을 느끼며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이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 몰입하며 등장인물들을 속고 속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작품 후반부에 사랑을 하는 존재가 아닌, 사랑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인물이 돼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독백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연애희곡의 연애 담론은 여타의 비극적이거나 운명적인 로맨스가 아닌 거침없는 노골적 성 담화를 풀어놓으며 관객에게 유쾌하게 다가온다.

    무대 위에서 쉼없이 다른 인격을 표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특히 스타작가로서의 도도함과 수줍은 주부 역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타니야마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은 신뢰감 높은 중견배우 이지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

    또, 복잡한 구조 탓에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연극을 특유의 화법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살린 김성기의 연기력은 작품의 균형을 잘 살려줬다. 무장강도 역의 김대원 역시 관객들에게 쉴새없는 웃음을 선사해준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용춘공'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알린 신인배우 도이성은 작품에서 감정 기복이 가장 변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착실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연극은 뮤지컬 '모차르트!'와 '몬테크리스토'의 제작사 EMK뮤지컬 컴퍼니가 제작을 맡았으며 '트랜스(trance)'로 유명한 일본의 유명작가 '코카미 쇼오지(Kokami shoji)'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


    제작 EMK뮤지컬컴퍼니, 전석 4만원, ~2010년 10월 31일. 문의) 6391-6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