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설립자 이승만의 명예 회복… 하와이 시절 한인학교 때부터 인연"仁荷大라는 학교 이름 仁川과 荷蛙伊(하와이)서 따와
  • 인하대학교가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 27년 만에 다시 세우기로 했다.

    인하대 이본수 총장은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립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학생과 교수 등 내부 구성원의 공감대를 얻는 작업에 착수해 동상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은 1979년 2월 인하대 인경호(湖) 인근에 세워졌다가 4년 만인 1983년 10월 일부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철거됐다. 동상은 현재 학교 측에서 원형대로 복원해 보관하고 있다.

    이본수 총장은 "동상이 끌어내려질 당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대통령의) '교육자'로서의 선구자적 측면과 혜안(慧眼)을 학교 구성원들이 빨리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동창회 이응칠(62) 회장은 "이화여대나 고려대 등 다른 대학들도 설립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동상을 세우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울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하와이 한인동지회에서 보낸 성금 5만달러로 인경호 옆에 높이 3.4m로 세워졌었다. 당시 3m짜리 화강암 석대의 추념문에는 "하와이 이민의 한 많은 눈물을 받아 본교 창립에 크게 이바지한 초대 대통령"이라고 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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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년 10월 인하대 개교식 때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이 학교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인하대 총동창회 제공

    인하대와 이 전 대통령 인연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하대 총동창회 50년사'에 따르면, 1903년 하와이에 사탕수수 재배 노동자로 떠난 100여명은 1913년 자녀교육을 위해 하와이에 한인 기숙학교를 설립했다. 이들 이민자의 90%는 인천 출신이었다. 그때 하와이 교포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교장으로 초빙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학교에서 교육사업을 펼치다 1918년 한인기독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1919년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됐고 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한인기독학원 학생 수는 계속 감소해 1947년 폐교됐다.

    그러자 교포들은 1950년 "한인기독학원 판매대금을 조국의 대학 설립기금으로 보내고 싶다"는 뜻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 국책사업으로 공과대학을 설립해 기술자를 양성할 계획을 갖고 있던 이 전 대통령은 1952년 12월 피란지 부산에서 김법린 문교부 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천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와 같은 최고 수준의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

    인천은 다수 하와이 교포들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공대 설립의 장점이 많았다. 이에 문교부는 1953년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 서울대·연희대(현 연세대) 총장 등 인사 47명으로 학교 설립위원회를 만들었다. 한인기독학원(9만7124㎡) 매각대금 15만달러, 정부 국고보조금 6000만환, 국내 기업인 등의 민간기부금 2774만환과 국민성금 등으로 2억5000만환(당시 약 430만~440만달러)을 마련했다. 인천시는 부지 41만3223㎡를 무상 제공했고, 1954년 드디어 '인하공과대학'이 개교했다. '인하'라는 이름도 인천(仁川)과 하와이(荷蛙伊) 앞글자에서 따왔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하야(下野)할 때까지 매년 인하대 입학식과 졸업식을 찾았다.

    이 전 대통령 하야 뒤엔 학교 재단이 와해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당시 한진상사주식회사(현 한진그룹) 조중훈 이사에게 "(조 이사가) 인천이 고향이니 재단을 맡아달라"고 해 재단이 다시 설립됐고 1970년대 초 종합대학으로 승격됐다. (인천=이신영 기자, 조선일보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