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구도시 나가사키 주변엔 크고 작은 섬이 많습니다.

    군함을 닮았다는 군칸지마(軍艦島)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나가사키항(長崎港)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이 외딴섬은 하시마(端島)라는 제 이름이 있지만
    군함을 닮은 생김새 탓에 ‘군칸지마’라는 불립니다.

    1890년부터 미쓰비시(三菱)가 품질이 좋은 강점탄을 채취하는 광산으로 개발해
    한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이 섬은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개혁 여파로 1974년 1월15일 폐광, 무인도가 된 이 섬은 지난해 4월부터
    관광지로 새로 꾸며졌습니다.
    지난 4월 나가사키에 갔을 때 아이며 유미짱과 들렀습니다.
    폐허가 된 건물과 콘크리트 더미를 보며 산업화의 폐기물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일본인들의 발상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선 이곳에도 일제시대 징용당한 선조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 숙연해지는 곳입니다.

    휴일이어서 쉬는 유미짱이며 아이와 오늘은 이오지마 온천을 갑니다.
    이오지마(伊王島)는 나가사키항에서 15분이면 닿는 가까운 휴양지입니다.
    온천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섬 전체가 고급스런 휴양시설로 꾸며졌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곳 온천의 마케팅입니다.
    나가사키항과 이오지마를 오가는 왕복 배 값이 1400엔입니다.
    그런데 온천을 이용하는 980엔 티켓을 사면 티켓 한 장으로 배로 왕복에 온천욕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미친 짓’이지만 온천에 와서 손님들이 쓰고 가는 돈을 생각하면
    훨씬 남는 장사가 될 것이란 셈이 나옵니다.

    일본엔 참 온천이 많습니다. 곳곳에 온천입니다.
    당연히 목욕 문화가 남다릅니다.
    일본에서 가정에 독립한 욕실을 가진 것은 2차 대전 이후라고 합니다.
    물론 일부 상류층들은 개인 욕실을 가졌지만 일반인들은 대부분 센토(錢湯)이라는
    대중목욕탕을 다녔습니다.
    타이완과 일본의 혼혈인 일본 문화 연구가 모로 미야(茂呂美耶)에 따르면
    이 ‘센토’가 첫 출현한 것은 17세기 초 에도(지금의 도쿄)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 센토는 아침 일찍 물을 끓여 오후 4시엔 영업을 마쳤다는데
    유나(湯女)인 여성이 등을 밀어주는 서비스를 했다고 합니다.
    이 유나는 센토가 영업을 하는 시간엔 욕탕에서 고객의 등을 밀고
    이후엔 고객들의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곤 했습니다.

    철저한 계급사회이던 막부시대 일본에서 이 센토와 유나는 서민들에게
    모처럼 평등을 실감케 해주는 장소였습니다.
    따스한 물에 몸을 불리고 미녀가 등을 밀어주며 시중을 해주니
    아마 쇼군(將軍)이나 다이묘(大名)가 부럽지 않았을 겁니다.

  • ▲ 에도시대의 목욕 모습을 담은 풍속화ⓒ자료사진
    ▲ 에도시대의 목욕 모습을 담은 풍속화ⓒ자료사진

    흔히 일본 목욕문화를 얘기할 때 일본은 남녀 혼탕이냐고 묻습니다.
    센토가 남녀 혼탕으로 출발한 것은 맞지만 뒤에 막부가 혼탕을 금한 탓에
    이제 일본에서 남녀 혼탕은 없습니다.

    조금 한국과 다른 것은 종업원들입니다.
    대부분 ‘아줌마’들인데 남탕에 아주 자연스럽게 출입을 합니다.
    언젠가 센토에서 목욕을 마치고 막 옷장을 여는데 ‘아줌마’가 수건을 한 다발
    들고 들어왔습니다.
    ‘헉!’, 말 그대로 ‘헉’이었습니다.
    들고 있는 옷장 열쇠 말고는 맨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황하는 모습이 되레 이상하다는 듯 ‘아줌마’는 저를 위 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저를 스쳐지나 볼 일을 보러 갔습니다.

    잠시 후엔 한 남자가 욕탕에서 나오더니 큰 소리로 카운터 쪽에 ‘아줌마’를 불렀습니다.
    탕의 수도꼭지가 이상하다는 얘기였는데 예의 그 ‘아줌마’가 다시 들어오더니
    당당하게, 아주 당당하게 탕 안으로 들어가서 손님들과 인사까지 나누며
    수도꼭지를 ‘손 봐 주고’ 나왔습니다.
    한국의 남자 화장실에서 마대걸레로 볼 일 보는 남자의 신발을 툭툭 치는
    한국의 미화원 아줌마들은 정말 ‘양반’입니다.

    일본 특파원을 지낸 조양욱 선배는 제 이런 얘기를 듣더니 자신이 도쿄에서 단골로 다니던
    ‘센토’의 계산대 얘기를 해줬습니다.
    계산대가 남탕과 여탕의 가운데 있고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답니다.
    남자 주인이나 여자 주인이 교대로 앉아서 양쪽을 ‘살피며’ 서비스를 했는데
    어느 날엔 열 몇 살짜리 딸이 가운데 앉아 부지런히 남탕과 여탕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조 선배는 나중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기야 뭐...다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인데 뭐 어때?”

    일본의 목욕탕이 국제분쟁(?)을
    일으킬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1951년 도쿄 히가시긴자(東銀座)에 ‘도쿄온센’(東京溫泉)이라는
    대형 목욕탕이 문을 열며 일본에서 도루코탕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도루코(トルコ)는 ‘터키’의 일본식 표기입니다.
    도루코탕은 ‘야한 영업’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983년 프랑스 배우 알랑 들롱이 도쿄 요시와라(吉原)에서 직접 체험하고 극찬을 하자
    일본의 도루코탕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터키 유학생이 조국의 이름이 일본에선 ‘퇴폐’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것에
    반발해 일본 정부에 간곡한 청원을 냅니다.
    그래서 도루코탕은 ‘소푸란도’(Soap Land)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오지마의 노천온천은 바다와 마주해 좋습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앉아 바다를 보면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맑게 파고 듭니다.
    온탕에 앉아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야, 정말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