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영 막사에서 군가보다도 많이 불렸던 ‘전선야곡’의 원로가수 신세영(본명 정정수)씨가 22일 낮 1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26년 1925년 광산업을 하는 부친 정자경과 포목점을 운영했던 모친 김옥경 사이 3남매 중 외아들부산 동래에서 출생한 신씨는 전쟁 가요 '전선야곡'의 가수이자, 나훈아가 불러 유명한 '청춘을 돌려다오'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신세영’이라는 예명은 당시 유명가수들이었던 申카나리아의 ‘申’, 장世정의 ‘世’, 이난影의
    ‘影’자를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 ▲ 신세영씨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 신세영씨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운동신경이 뛰어나 복싱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콩쿠르에 참여하면서부터 점차 노래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백년설, 이인권 대가들을 만나 가수의 꿈을 1945년 초, 해방을 불과 얼마 앞둔 시점에 그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된다.
    만주 봉천을 거쳐 항구 전선에 투입되는데 이때 그는 ‘B 29’의 폭격을 받아 대부분의 전우들을 잃고 그도 역시도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이송,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본 패망 소식을 듣는다.
    신씨는 해방 후 1948년 대구 오리엔트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곡 ‘로맨스 항로’를 발표한 데 이어 ‘병원선’, ‘무영탑 사랑’, ‘이백리 푸른 달밤’, ‘십자성’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의 대표곡 ‘전선야곡’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취입한 노래다. 노래를 취입한  그날 어머니가 운명하셨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신씨는 항시 울음을 참아야 했다고 전한다.
    ‘전선에서 그리는 고향 어머니’에 대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이 ‘전선야곡’은 대표적인 전쟁가요로 그 무렵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노랫말 중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부분은 전시에 부르는 이나 듣는 이 모두 눈물을 흘려야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씨는 작곡 활동도 시작, ‘청춘을 돌려다오’ 외에 ‘정처 없는 방랑자’(최무룡), ‘화전민’(배호)’, ‘비에 젖은 로맨스’(안다성) 등을 작곡했다.
    가족은 부인 박목련 여사와 슬하에 2남 2녀가 있다. 장남 정태진씨는 한때 ‘태일’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지난 2004년 비자를 반납하고 귀국, 기수협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