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오후 1시쯤 충남 부여군 백제역사문화관의 탑들을 둘러보던 60대 일본인 부부가 "후시기다(신기하다)"를 연발했다. 남편 요시다 요(吉田羊·65)씨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뿌리인 백제 불교문화를 느끼고 싶어서 왔다"며 "일본에도 백제시대 탑과 비슷한 탑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날 만난 40대 일본인 여성 관광객은 "백제문화에 관심이 많아 혼자 왔다"며 "오늘은 부여를 둘러보고 내일은 공주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백제역사문화관에는 올 1~7월 일본인 관광객 316명이 방문했다. 작년 같은 기간 61명의 5배가 넘는다. 문화관 앞에는 백제시대 궁궐·유적을 재현한 리조트가 개장을 앞두고 있다.

  • ▲ 요즘 일본 관광객들은 충남 부여의 백제시대 연못 궁남지(사진 아래) 같은 유적지와 숨은 명소를 즐겨 찾고 있다. /이태경 기자 <a href=ecaro@chosun.com·이혜운 기자" title="▲ 요즘 일본 관광객들은 충남 부여의 백제시대 연못 궁남지(사진 아래) 같은 유적지와 숨은 명소를 즐겨 찾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이혜운 기자">
    ▲ 요즘 일본 관광객들은 충남 부여의 백제시대 연못 궁남지(사진 아래) 같은 유적지와 숨은 명소를 즐겨 찾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이혜운 기자

     
    부여의 백제 연못 궁남지(宮南池) 옆에서 관광객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한규(52)씨는 "작년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거의 안 보였는데, 올해는 하루 20명씩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궁남지는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에 백제 최초의 인공 정원이자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로 기록돼 있다.

    국내 최대 해외 손님인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단체 관광으로 와서 엔고를 이용한 '쇼핑'을 주로 했지만 요즘엔 가족이나 친구 단위의 소규모로 와서 유적지나 명소를 찾아다니는 관광객이 늘었다. 서울씨티투어 강춘희 주임은 "요즘 일본 관광객들은 비행기 티켓과 숙박권만 예약하고 전국을 누비며 숨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는 '백제문화권'인 충남 공주·부여 지역이다. 공주시의 경우 올 2분기(4~6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일본인 관광객 증가 영향으로 작년 같은 기간(5500명)의 2배 수준인 1만499명으로 늘었다. 공주의 인기 관광지는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이다. 부여군 관계자는 "일본인들이 백제의 마지막 왕궁터인 '부소산성'과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이자 일본 고대 사찰의 효시가 된 '정림사지' 등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 권병전 일본팀장은 "최근 주몽이나 이산 같은 역사 드라마가 일본 중·장년층에 많이 어필해 한국 역사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백제는 일본 문화의 원류라는 점 때문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객이 적어 존폐 논란까지 있었던 청주공항도 일본인 관광객 덕에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17일까지 일본인 관광객 654명이 오사카에서 출발한 전세기를 타고 청주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대한항공은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오사카~청주 노선을 9월 1일부터 주 4회 정기 노선으로 바꾸기로 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9~10월 충남 공주·부여·논산에서 열리는 '2010 세계 대(大)백제전' 기간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오사카~청주', '후쿠오카~청주' 노선을 확대 운항할 예정이다.

    이에 비해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아 '일본인의 거리'로 불렸던 서울 중구 명동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유명 화장품 매장 직원 장경순(28)씨는 "작년엔 일본인 관광객만 하루 700명 이상 왔는데 요즘엔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했다. 양손에 가득 물건을 사가는 손님은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명동 인근 롯데면세점은 "일본인 관광객이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며, "일본인들이 올려준 매출이 작년 상반기엔 2000억원이었는데, 올 상반기는 1300억원 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