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일전쟁 직후 일제가 고종 황제를 일본으로 납치하려 했다는 내용이 독일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정상수 명지대교수는 "일본이 고종을 일본으로 옮기려고 시도했다"는 내용의 독일 외교문서 사본 2건을 12일 공개했다.
    이들 문서는 1905년 2월14일과 6월2일 당시 서울 주재 독일공사관 잘데른(Saldern)이 독일 본국으로 보낸 전보(Telegramm)들로, 정 교수가 2008년 독일 외무부 정치문서 보관함에서 발견해 복사해둔 것이다.
    1905년 2월에 작성된 첫 번째 문서는 "일본인들이 고종을 일본으로 옮기려 했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고종이 거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는 기밀문서로 다뤄져 독일 황제가 읽었다는 뜻인 'SM(Seine Majesta"t)' 표시가 있으며 여백에는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필적으로 보이는 연필 메모도 있다.
    정 교수는 "연필 메모 부분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납치 시도가 성공할 리가 없다는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6월에 작성된 두 번째 문서는 2월 문서의 내용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모건(Morgan) 당시 서울 주재 미국 공사에게서 들은 내용을 담았다.
    역시 비밀문서인 이 자료에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보호국화하고 고종을 폐위시켜 일본으로 납치하고자 영국에 문의해 동의를 받았다. 일본은 같은 내용을 미국에도 문의했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은 보호국화 부분에 대한 결정은 유보했고 고종의 폐위와 납치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와 첫 번째 문서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일본이 고종을 한일강제병합의 걸림돌로 파악했으며 자국으로 납치하려는 시도가 단발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고종이 머물렀던 중명전(重名殿)이 미국 공사관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교수는 "당시 독일이 이 문서를 근거로 미국 측에 다시 관련 내용 확인을 요청한 결과, 미국으로부터 (잘데른의 보고서와 달리) 한반도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미국의 입장은 같은 해 7월 일본과 미국이 각각 한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을 요지로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이 자료에 대해 "행위 주체가 일본인으로만 기록돼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가 불명확하다"며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후일 통감부 초대 통감이 되는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하고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당시 육군대장,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당시 일본공사가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국내 자료와 일본ㆍ미국 자료가 발견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